비슬(琵瑟)이란 지명이 붙은 산에는 이름난 사찰이 자리잡고 있다. 대동여지도에서도 대구 비슬산 아래 북암, 용주사, 남암 등의 많은 사찰이 그려져 있어 우리 고장 또한 예외가 아니다. 그 가운데 적멸보궁과 석조계단으로 유명한 용연사는 비슬산의 북쪽 기슭에 앉아 있다.
용연사는 천년 역사와 정취를 간직한 유서 깊은 고찰이다. 신라 신덕왕 1년(912)에 보양선사가 창건했고,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가 선조 36년(1603)에 사명대사가 제자들을 시켜 재건했다. 그 후 다시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영조 4년(1728)에 중건했는데, 당시 사찰 규모가 이삼백 칸에 이르렀으며 승려 숫자도 오백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용연사 가는 길에는 송해공원으로 조성된 옥연지와 잘 가꿔진 벚꽃길이 유명하다. 공원 끝자락의 반송초등학교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조금만 올라가면 고색창연한 일주문이 반긴다. 이를 지나 갈림길에서 왼쪽 길로 접어들면 석조계단이 위치한 적멸보궁이 나오고, 오른쪽 다리를 건너면 극락전으로 향하게 된다. 따라서 왼쪽 길을 따라 능선을 한 모퉁이 돌면 적멸보궁이고, 이보다 한 단 높은 곳에 석조계단(보물 제539호)이 자리잡고 있다.
계단(戒壇)이란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고 수계의식을 행하는 곳이다. 부처님이 항상 그곳에 있다는 상징성을 띠고 있다. 임진왜란 때 부처님 진신사리를 통도사에서 금강산으로 모셔가던 중 일부를 모셔와 용연사에 봉안했다고 한다. 용연사의 석조계단은 간결하고 장중한 석종형의 진신사리탑이다. 이곳 석조계단은 통도사 금강계단, 금산사 방등계단과 함께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3대 계단형 사리탑이다.
갈림길로 다시 내려와 사천왕문과 안양루를 통과하면 극락전 마당이다. 극락전은 좌우로 영산전과 삼성각을 거느리고 그 앞에 요사채가 양쪽으로 자리 잡고 있다. 다포계의 맞배지붕으로 내부 단청의 화려함이 18세기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후불탱화가 미타탱이 아니라 영산탱이고, 주존불 또한 문수·보현 두 보살을 좌우에 거느린 석가여래인 것으로 보아 극락전이 아니라 대웅전인 셈이다.
극락전은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1호로 지정된 문화재이다. 후불탱화, 삼장탱화, 단청과 벽화 등에 모두 세월의 무게가 서려 있다. 용연사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있어 극락전을 본당으로 모시고 있다. 극락전 앞마당에는 자그마한 삼층석탑이 있다. 용연사에서 가장 오래된 유물로 문화재자료 제28호로 지정된 석탑이다. 이외에 경내 뒤쪽에는 사명당이 있고, 그 사이를 흐르는 작은 계곡이 탐방객에게 쉼터를 제공한다.
대구엔 팔공산에만 유명 사찰이 있는게 아니다. 비슬산에는 영남 제일의 영험 기도처로 부처님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성지인 용연사가 있다. 이곳에 가면 조선시대부터 부처님 진신사리를 참배했던 석조계단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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