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재현장]도시철도 인프라, 100년 내다보고 만들자

사회부 김윤기 기자

사회부 김윤기 기자
사회부 김윤기 기자

2019년 광역지자체 간 협력 모범 사례 취재차 방문한 시카고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것 중 하나는 그곳의 오랜 도시철도 인프라였다.

1892년 운행을 시작했다는 미국 시카고의 도시철도는 뉴욕에 이어 미국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도시철도 시스템이었다. 특히 구도심 지역 8개 역을 순환하는 '루프'(the Loop)라는 2.9㎞ 구간이 있어 고가 철로가 도심 풍경의 일부가 됐다. 100년이 훌쩍 넘는 역사가 투박한 생김새의 고가 구조물에서 확연히 느껴졌다.

특히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부분은 지독한 소음이었다. 구도심 빌딩 숲 사이를 수직에 가까운 각도로 꺾어 이동하는 탓에 감속하거나 커브를 돌 때면 귓전을 울리는 금속 마찰음과 함께 철로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관광객의 눈과 귀에는 그 역시 운치 있는 풍경이자 추억으로 남을 모습이겠지만, 한편으로는 100년이 넘는 시간차를 두고 만들어진 대구도시철도 3호선은 미관이나 기능적으로 매우 잘 만들어졌다는 걸 실감했다. 또 한 번 놓인 도시철도 인프라는 바꾸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도 체감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대구에서는 도시철도 신규 노선을 둘러싼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당국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 모노레일 방식으로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한 엑스코선 건설 방식이 가장 큰 현안이다.

대구시는 이 노선을 당초 모노레일 방식으로 건설할 계획이었으나 차량 제조사인 히타치의 협조를 얻지 못해 사실상 추가 도입이 무산됐다. 2014년 시행된 철도안전법에 따라 차량 신규 도입 시 반드시 거쳐야 하는 '형식승인' 절차에 수십억 원이 들어가는데, 대구 3호선 이외 국내 사업장이 없는 히타치로서는 참여 의사가 없는 것이다.

대구시는 결국 국산화가 가능한 AGT(경전철의 일종)로 건설 방식을 전환할 계획이지만, AGT 도입이 최선이라고 선뜻 동의하기도 어렵다. 모노레일로 건설하려고 했던 엑스코선, 3호선 혁신도시 연장선, 순환선 등에 AGT를 도입할 경우 건설 비용이 대폭 늘어나는 것은 물론 상당한 비효율이 생기기 때문이다.

AGT 도입 시에는 도로 공간 침해 폭이 커지고, 일부 구간에는 환승이 강제되거나 차량기지를 새롭게 건설해야 하는 문제가 불가피하다. 엑스코선까지 4개의 노선에서 3가지 다른 차량 시스템을 운용해야 하는 대구교통공사 입장에서도 인력 운용이나 유지 보수 비용 측면에서 상당한 비효율을 안게 된다.

취재 과정에서 의견을 구한 전문가들도 "대구시에 국내에 존재하는 모든 철도 시스템을 다 들여오겠다는 거냐"는 등 의아하단 반응이 주를 이뤘다.

관련 기사에는 "기둥 부피도 크고 상판도 넓은 경전철은 흉물이 될 확률이 높다" "지어 놓으면 몇십 년은 써야 하는데 제대로 지어야 한다" "다른 노선이랑 호환도 안 될 테고" 등 우려 섞인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다행히 국토교통부가 현재 형식승인 절차와 방식이 과도한 규제라는 업계의 지적에 따라 내년 하반기까지 제도 개선에 나서기로 했다. 시간이 문제를 해결해 줄 여지가 생긴 부분이다.

모노레일과 AGT 중 어떤 방식이 최선이라고 단언할 순 없다. 다만 최종 결정을 내리기 전 대구시가 이 문제를 장기적, 거시적 관점에서 검토할 수 있기 바란다. 100년, 혹은 그 이상 유지되는 도시철도 시스템을 최적으로 설계하는 것은 노선을 1, 2년 먼저 개통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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