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거기 있으니까."
1923년 영국의 등반가 조지 맬러리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왜 에베레스트 산에 오르려고 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했던 답이다. 이 말처럼 산이 거기 있고 산에 가는 게 좋아서 젊은 시절부터 산에 빠져 살았던 사람이 있다. 대구 남구 봉덕동 앞산 강당골 입구에 있는 남구 국제스포츠클라이밍장을 관리하는 권혁만(65) 씨가 그 주인공이다.
30년 이상 보험 관련 업종에 종사한 권 씨에게 '스포츠클라이밍장 관리자' 일은 요즘 말하는 '투잡' 형태에 가깝다. 지난 2월에 모집공고를 보고 '클라이밍장 관리자'라는 자리에 대한 호기심과 클라이밍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갖고 있는 등산과 암벽등반에 대한 경험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점 때문에 지원을 했다고.
생업이 있음에도 클라이밍장 관리자 일을 맡을 만큼 권 씨는 산에 대해 진심이다. 어릴 때부터 동네 뒷산 절벽을 타고다니는 걸 좋아했다는 권 씨가 등산과 암벽등반에 본격적으로 빠져든 건 고등학생 때였다.
"고교 시절부터 캠핑을 좋아했어요. 팔공산에 1박2일 야영하며 놀았던 건 셀 수 없을 정도였죠. 그러다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암벽을 보고 '암벽등반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누구에게 어디서 배워야 할 지 몰라서 전전긍긍할 때 암벽등반을 한다는 같은 반 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 따라 산악회 들어가서 열심히 등산과 암벽등반을 배우기 시작했죠. 공부는 뒷전이었고 산에만 매달리는 청춘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등산의 매력에 푹 빠진 권 씨는 대학 진학도 잠시 접고 등산을 좋아하는 또래 친구들과 함께 국내 명산을 찾아다녔다. 설악산 같은 곳을 한 번 가면 15~30일동안 산을 탔다. 그러면서 전국의 산악인들과 주소와 전화번호를 주고받으며 교류도 이어나갔다. 하지만 미래도 생각해야 했기에 원래 입학해야 했을 나이보다 훨씬 늦은 나이에 대학에 입학했다. 그 와중에도 등산은 놓지 않았다.
그러던 중 권 씨에게 큰 시련이 찾아온다. 권 씨는 날짜도 잊지 않고 있었다.
"1986년 10월 12일입니다. 당시만 해도 스포츠클라이밍장과 같은 인공암벽이 없고, '암벽등반'이라고 하면 모두 자연암벽을 올라가는 걸 의미했어요. 그 때도 팔공산에 있는 암벽을 올라가던 때였는데 그만 10여m 지점에서 떨어졌어요. 대퇴부와 왼쪽 무릎을 크게 다쳤죠. 다섯 달동안 병원 신세를 졌고 왼쪽 무릎이 많이 불편해졌죠. 암벽등반은 커녕 평범한 등산도 힘들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사고 이후 권 씨는 암벽 등반보다는 트레킹 위주로 등산을 즐기게 된다. 지금도 등산 스틱을 쓰지 않으면 산 오르기가 쉽지 않다. 고난도 암벽 등반은 즐기지 못하게 됐지만 그나마 안전한 실내 스포츠클라이밍과 같은 건 가능하겠다는 판단이 선 권 씨는 대구 클라이밍 스쿨을 수료하고 스포츠클라이밍에 빠진다.
권 씨가 말하는 스포츠클라이밍의 매력은 '묘한 중독성'이다.
"인공 암벽마다 난이도가 있고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인공 암벽을 타면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에 사람들이 푹 빠집니다. 내가 어제 성공하지 못한 코스를 오늘은 성공시켰다는 것에 대한 만족감이 엄청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푹 빠져드는 것 같아요. 남구 스포츠클라이밍장이 생기고 나서 수업 오시는 50대 여성분들이 꽤 많은데 다들 그렇게 이야기하시더라고요."
권 씨는 "앞으로 안 다치고 산에 열심히 다니는 것이 인생의 큰 목표"라고 말한다.
"지금도 산은 제게 생활이자 시간을 가장 많이 쏟는 취미입니다. 모두가 공평하게 주어진 24시간 중 저는 등산에 쏟은 시간이 좀 더 많았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산에 가는 게 좋았으니까요. 그래서 앞으로도 부상 없이 산을 즐기는 걸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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