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서훈 전 실장 구속, 한국 정치 후진성 드러내는 또 하나의 사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당시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사령탑이었던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구속됐다. 이유 불문하고, 앞 정권에서 국가를 위해 일한 사람이 다음 정권에서 구속된 것은 불행한 일이다. 서 전 실장 구속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정치 보복 수사"라고 반발하고, 국민의힘은 "국민을 죽음에 이르도록 방치하고, 월북으로 단정 지으며 명예살인까지 저질렀다"고 비판하고 있다.

국민의힘 주장대로 서 전 실장이 고 이대준 씨를 '월북'으로 몰아갔는지, 민주당 주장대로 '윤석열 정부가 전 정권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지'는 앞으로 재판을 통해 가려질 것이다. 다만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으로 볼 때 서해 피격 사건과 관련해 문 정부의 행위에 문제가 있었다는 검찰의 시각에 힘이 실리고 있다.

고 이대준 씨가 월북했다는 증거가 있다면 이 문제는 논란이 될 것도 없다. 문재인 전 대통령 측은 "(월북이라는) 판단의 근거가 된 정보와 정황은 달라진 것이 없는데 결론만 정반대가 되었다. 그러려면 피해자가 북한 해역으로 가게 된 '다른 가능성'이 설득력 있게 제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애초에 '증거' 없이 월북설을 흘려놓고, 이제 와 '월북이 아니라면 그 증거를 제시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증거도 없이 국민을 '월북자'로 몰았다는 것은 권력으로 사실을 '호도'할 수 있다는 인식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적폐 청산'이니 '정치 보복'이니 '진실 찾기'라는 말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권력을 국민으로부터 '잠시 위임받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마치 자신들의 천부적인 권한인 양 편의대로 휘두르기 때문이다. 군사정권은 말할 것도 없고, 민주화된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문 전 대통령 측은 서 전 장관 구속과 관련, "안보 사안을 정쟁의 대상으로 삼고, 안보 체계를 무력화하는 분별없는 처사에 우려를 표한다"고 했다. '안보 팔이'를 한다는 점에서도 군사정부나 민주정부나 다를 바가 없다. 천지가 개벽하고 있지만 한국 정치는 여전히 4류에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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