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칼럼] 포항 태풍 피해에 희생양은 안돼

김병구 동부지역본부장
김병구 동부지역본부장

지난 9월 역대급 태풍 '힌남노'가 포항을 할퀴고 간 지 100일이 훌쩍 지났다.

포항 남구 지역인 오천읍, 대송면, 포스코와 철당공단은 유례가 없는 500㎜ 안팎의 집중호우로 쑥대밭이 돼 버렸다. 만조 수위와 겹치면서 냉천과 칠성천이 순식간에 넘쳐흘렀다. 포스코 포항제철소도 1973년 쇳물 생산을 시작한 이후 49년 만에 처음으로 가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민 자원봉사자, 포스코 전·현 직원, 철강공단 업체 직원, 해병대, 포항시청 공무원 등이 혼연일체로 움직이면서 복구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포항제철소도 18개 압연공장 중 13개 공장을 정상 가동하는 등 완전 정상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수해 복구를 통한 정상화가 임박해지면서 이젠 원인과 책임 소재 규명, 재발 방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또 다른 태풍이나 홍수에서 같은 피해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명확한 원인 규명은 반드시 이뤄져야 하겠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애꿎은 희생양이 발생해서는 더더욱 안 될 일이다.

이런 우려가 나오는 것은 냉천 범람을 통한 침수 피해가 '불가항력적인 천재지변'이냐, 하천 정비를 통해 사전에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인재'(人災)냐를 두고 입장과 주장이 서로 엇갈리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나 기관, 업체 등이 냉천 범람의 가능성을 사전에 인지했거나 우려의 목소리를 듣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분명히 책임 소재를 가려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마땅하다.

하지만 전례 없는 집중 폭우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자연재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불가항력적인 재해인데도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지우기 위해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는다면 또 다른 태풍 피해자를 만들어내는 꼴이다. 열 명의 도둑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경찰은 현재 태풍 힌남노 피해와 관련해 10여 명을 피의자로 입건했고, 이 중 포항시 공무원도 5, 6명 포함돼 있다고 한다. 포항시 공무원들은 태풍 힌남노 직전 누구보다 더 피해 예상 지역 점검과 대비에 앞장섰고, 침수 피해 이후엔 추석 연휴도 반납한 채 복구에 총력을 쏟았다.

사법기관이 자연재해를 두고 '열심히 일한 죄'를 물어 공무원들을 처벌한다면 어떤 공무원이 국민을 위해 앞장서 일할지 모르겠다.

지역 시민 단체인 (사)포항지역발전협의회도 최근 경북경찰청장 앞으로 낸 탄원서에서 "특정 지역에 호우가 집중되는 불가항력적이며 사람의 손으로 어찌할 수 없는 자연 재난에도 사전 대처를 하고 전심전력으로 시민들을 도운 공무원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면 너무나 지나치고 가혹한 일"이라고 했다. 이어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모든 대비를 하며 고생하는 포항시청 공무원들이 수사를 받고 인명 피해에 대한 책임을 모두 다 져야 한다면 시 공무원뿐 아니라 소방서를 비롯한 관공서 직원과 안전 관련 업무 종사자들이 시민 안전을 위해 일할 수 있는 동기가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이번 수사로 재난 현장에서 묵묵히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힘써온 공무원들이 처벌을 받게 된다면 결국 지금의 적극적인 행정에서 소극적인 행정으로 변하게 될 것이며, 이로 인한 피해는 시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이런 측면에서 경찰은 이번 태풍 피해의 원인과 책임 규명을 섣불리 하지 말고 토목, 하천, 기상 등 전문가들의 견해를 충분히 폭넓게 수렴한 뒤 신중하게 판단할 것을 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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