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 입문서라는 진용의 '사조영웅전'은 역사적 사실에 픽션을 더해 공전의 히트를 친 작품이다. 무협지다 보니 무공 수련 과정, 정파와 사파의 대결을 근간 삼아 물고 물리는 복수전이 핵심이다. 이 작품은 주인공 곽정을 통해 복수의 대의로 '정강의 변'(靖康之變)을 든다. 송나라 휘종의 연호인 정강 시기의 굴욕적 패퇴를 가리킨다.
송나라는 문화예술로 융성했다지만 말로는 험했다. 그림 천재였던 임금 휘종은 아들 흠종과 함께 금나라에 생포돼 인질로 끌려간 뒤 그곳에서 죽음을 맞는다. 서하, 요, 금, 몽골 등 주변 국가들의 선의를 믿은 탓이었다. 방벽에 소홀한 건 수순이었다. 금나라 군은, 오합지졸의 대명사가 된 당나라 군(軍)보다 더 엉망이었던, 송나라 군을 소수의 정규군만으로도 압살할 수 있었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에서 영국군이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아르헨티나군의 해이한 방비였다. 아르헨티나 군인들은 한파를 핑계로 보초 근무에도 소홀했다. 우리가 이만큼 추운데 영국군도 못 움직일 거라는 기상천외한 오판이었다. 페블섬 전투에서는 영국군의 기습에 아르헨티나 군인들이 혼비백산했고 가정집에 숨어들어 있다 항복하러 나오기도 했다. 전체 전쟁 포로만 1만 명을 넘었다. 영국군 포로는 115명에 불과했다.
북한 무인기 침범에 우리 군의 전력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26일 대응 출격한 공군 KA-1 경공격기는 이륙 직후 인근 밭에 추락했다. 새 떼를 북한 무인기로 오인해 전투기가 출격하기도 했다. 28일 새벽에는 풍선에도 놀라 허둥댔다. 군을 신뢰할 수 있느냐는 목소리가 커진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정말이지 정색을 하고 우리 군을 다시 보게 된다.
부사관을 비롯한 직업군인들은 자신들이 보모인지 군인인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한다. 자녀를 군에 보낸 부모들이 식사, 운동, 훈련 관련 요구를 직접적으로 하니 민주화된 군의 사기가 올랐을지 몰라도 전투력까지 올랐는지는 의문이라는 것이다. 아침 구보를 빼 달라, 각자 식성에 맞는 식사를 제공해 달라는 요청도 나왔다. 스마트폰 사용은 기본값으로 당연한 권리가 된 지 오래다. 반복되면 관행이 되고 나중엔 잘못인지도 모르게 된다. 기강부터 다시 잡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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