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결핍을 노래하라

김나영 소프라노

김나영 소프라노
김나영 소프라노

​1824년 5월 7일 빈에서 한 음악가가 '합창' 교향곡의 지휘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는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 우두커니 자리를 지킨 채 서 있었다. 주변의 동료가 그를 부축해 돌려세웠고 그제야 그는 환호하는 청중을 본 뒤에야 눈물을 쏟으며 감격했다고 한다. 청각을 잃었던 악성(樂聖)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이야기다.

베토벤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궁정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훌륭한 음악가이자 사업 가셨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가세가 기울었다. 아버지 또한 재능 있는 궁정 음악가였지만 알코올 중독으로 음악 생활이 그리 길지 않았다. 생활고가 심해지자 아버지는 돈을 벌기 위해 어린 베토벤을 이용했다. 당시 최고의 음악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던 모차르트처럼 키우기 위해 나이를 속이기까지 하며 '신동 모차르트' 이미지를 내세웠다. 그런 아버지 욕심에 학대를 당하며 피아노를 쳐야 했다. 이러한 환경이 베토벤의 날카로운 성격에 일조했다는 분석이 있다.

그러던 찰나 삶을 뒤바꿔놓은 인생의 스승인 크리스티안 고틀 로프 네프를 만난다. 그에게 작곡 교육을 받고 궁정 오르간 연주자가 되면서 시대를 초월하는 음악가의 첫 발을 내디뎠다. 초기 베토벤의 음악은 모차르트, 하이든과 같은 훌륭한 선배 음악가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이후 음악 작곡법의 한계를 뛰어넘는 뛰어난 발상으로 자신의 곡에 혁명적인 정신을 불어넣었다. "더 위대한 아름다움을 위해서 어길 수 없는 규칙은 없다"라고 말한 베토벤은 파격적인 걸작의 행보를 이어나갔다.

​그런데 1798년부터 청력에 문제가 생겨 1800년 무렵에는 아무것도 들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음악가에게 청력 손실이란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그 시기에 작곡된 유명한 '운명' 교향곡의 "따다 다단"이라는 음률을 들으면 운명을 거스를 수 없는 그의 내면 속 고통이 느껴진다. 창조주를 저주하며 자살까지 생각했던 그를 붙잡은 건 역시 음악이었다.

"나는 거의 절망하기에 이르렀다. 스스로 내 목숨을 끊어버릴 뻔했다. 그것을 제지해 준 것은 오직 예술뿐이었다. 나에게 맡겨졌다고 느끼는 이 사명을 완수하기 전에는 세상을 버리지 못하리라고 생각됐다. 그리하여, 나는 이 비참한 생명을 부지하기로 했다."

​베토벤은 자신의 비참한 운명을 받아들였지만 굴복하진 않았다. 들리지 않는 고통 속에서도 창조력을 불태웠다. 결핍으로 인해 더 간절했고 그렇게 이어진 아름다운 집착은 숭고한 예술로 탄생됐다. 불우한 어린 시절과 음악가로서의 청력손실은 베토벤 그 자체였고 유일무이를 창조했다. 그는 한 치의 위선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예술에 담아내었다. 끊임없이 자신의 본질을 탐구하고 묵묵히 그의 길을 갔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포기하려던 순간 다시 음악과 함께 일어나 기쁨을 노래했다.

사람은 누구나 결핍을 가지고 있다. 그 결핍에 갇혀있지 말고 그것을 나만의 특별함으로 승화시켜보면 어떨까. 자신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조건 없이 사랑해 그 마음을 세상에 나눠준 베토벤처럼 말이다. 결핍을 노래하라!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