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 한명아(대한적십자사 봉사회 대구시협의회 회장) 씨의 아버지 고 한준우(전 대구MBC 사장) 씨

"아버지는 제 마음의 '믿는 구석'…어려운 일 있을 때마다 떠올리며 힘 얻습니다"

한명아 씨가 중학생 때 아버지 고 한준우 씨와 함께 찍은 사진. 이날 한명아 씨는 걸스카우트 행사 때문에 아버지를 모셔왔는데, 아버지 고 한준우 씨는 아버지를 모셔오지 못한 명아 씨의 다른 걸스카우트 친구들과도 사진을 함께 찍어줬다고 한다. 가족 제공.
한명아 씨가 중학생 때 아버지 고 한준우 씨와 함께 찍은 사진. 이날 한명아 씨는 걸스카우트 행사 때문에 아버지를 모셔왔는데, 아버지 고 한준우 씨는 아버지를 모셔오지 못한 명아 씨의 다른 걸스카우트 친구들과도 사진을 함께 찍어줬다고 한다. 가족 제공.

아버지, 아버지가 저희 곁을 떠나가신 지 벌써 28년이 흘렀네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안 됐을 때는 아버지만 떠올리면 눈물이 나서 생각을 잘 안 하려고 했지만 지금도 아버지가 시시때때로 생각이 나는 '아빠 바보' 딸이 아버지와의 추억이 생각나서 몇 자 적어 아버지 영전에 올려봅니다.

아버지, 기억하시는지요. 제가 고3 시절 당시 대학 입시를 준비하면서 '새벽 과외'라는 걸 했었지요. 버스도 다니지 않는 이른 시간에 과외를 받으러 갔었는데, 혼자 가기가 너무 무섭고 길도 깜깜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다보니 아버지가 과외하는 곳까지 저를 데려다 주셨죠.

봉덕동 집에서 대명동 과외 장소까지 걸어가면서 저희 부녀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눴잖아요. 고3 때 받은 학업 스트레스부터 장래에 대한 이야기까지…. 차도 다니지 않던 그 조용한 거리를 아버지와 저의 이야기로 채웠던 그 시절은 제 10대의 너무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생전에 여쭤봤더니 "참 좋았다"고 대답해주신 걸 보니 아버지에게도 그 때의 길거리가 저와의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으셨나 봅니다.

살아오다 보니 제가 아버지에게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물려받았음을 깨닫습니다. 방송국 사장을 오래 하셨던지라 집에는 손님들이 끊이지 않았죠. 손님들이 있는 응접실을 지나가다 보면 분명히 아버지가 계신데도 아버지 목소리보다는 손님 목소리가 더 많이 들렸어요.

그 모습을 보며 아버지는 '들어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저 또한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역할을 많이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심리사회적지지 강사'라는 자격증을 취득하게 된 것도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 것 같습니다.

불쌍한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그리울 때가 많습니다. 신문을 항상 읽으셨던 아버지는 신문배달 소년이 설날 때 부업으로 복조리를 팔 때 그걸 가장 비싼 값에 사 주면서 힘들게 학비를 버는 학생들을 격려하셨었죠. 그 이후에도 방송국이나 집으로 사람들이 찾아와서 이런저런 도움을 이야기하면 조용히 도움을 주셨던 걸로 알아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저 또한 나이가 들면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어요. 처음 봉사활동을 시작했던 장소는 장애인 시설이었는데 아버지 병간호했던 경험을 살려서 잘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가 오히려 더 힘들었던 기억이 나요. 그 때 '나 때문에 도움 받는 분들이 상처입은 건 아닐까' 자책했고, 그날 꿈에 아버지가 저를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어요. 아버지가 힘 내라고 꿈에 나타나신거라 생각하고 저는 다시 힘을 냈고, 지금도 아버지처럼 남을 도우며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 3년 전 어머니가 아버지 곁으로 가셨어요. 어머니 병간호 중에 어느 날 어머니가 거울을 보여달라고 하셨어요. 거울을 보시던 어머니는 "내가 너무 늙어서 아버지가 날 알아볼 수 있을 지 걱정이다"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난 다음에 다시 태어나면 아버지 가족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하시더군요. 처음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어머니 보내고 다시 두 분이 살아왔던 모습을 생각하니 어머니가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이해가 가더라고요. 그만큼 아버지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분이셨음을 다시 깨닫습니다.

아버지, 아버지는 저를 떠나가셨어도 삶의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며 힘을 얻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제 마음의 '믿는 구석'으로 늘 남아있어요. 아버지, 오늘 따라 더 아버지의 모습이, 아버지와 함께 걷던 그 새벽의 길이 그립습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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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음 매일신문이 함께 나눕니다. '그립습니다'에 유명을 달리하신 가족, 친구, 직장 동료, 그 밖의 친한 사람들과 있었던 추억들과 그리움, 슬픔을 함께 나누실 분들은 아래를 참고해 전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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