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북 과수화상병 재창궐 조짐…농민들 어쩌나?

18일 기준 확진 농가 7곳… 화요일 매몰 예정
예찰 범위 늘어나고, 감염원 정확하지 않아 농가들은 불안

16일 경북 안동시 예안면 삼계리에서 농촌진흥청 방역 인력이 방호복을 입고 과수화상병 신규 확진 나무를 찾기 위해 예찰 활동을 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16일 경북 안동시 예안면 삼계리에서 농촌진흥청 방역 인력이 방호복을 입고 과수화상병 신규 확진 나무를 찾기 위해 예찰 활동을 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식물 구제역', '식물 코로나19'로 불리는 과수화상병이 2년 만에 재창궐 조짐을 보이자 지역 사과 농가가 비상이다. 가뜩이나 서리와 우박, 병충해로 흉작 우려가 큰 가운데 갖은 확산 방지책도 전염을 막기는 역부족이어서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다.

18일 기준 안동지역 과수화상병 확진 농가는 7곳. 13일 최초 확진 이후 5일 만에 급속하게 확산하고 있다. 확진 농가의 전체 면적은 4.4㏊로 예찰 반경이 더욱 늘어났다. 관계 당국은 1개 농가는 폐원을 통해 0.1㏊를 매몰처리하고, 나머지 6개 농가는 부분제거를 통한 방역을 진행할 계획이다.

◆"2년 전 감염, 9천만원 손실…사과 1천 그루 몽땅 묻을 뻔"

경북 영주시 부석면에서 사과 과수원(이하 사과원)을 운영하는 김모(63) 씨는 2년 전 닥친 화상병 피해만 생각하면 여전히 몸서리친다.

2021년 6월 안동시와 영주시 일대에서 경북 처음으로 화상병 감염목이 등장해 큰 피해를 입혔다. 방역당국은 두 지역 12개 농가 5.98㏊(안동 11곳 5.94㏊, 영주 1곳 0.04㏊)의 과수를 땅에 묻었다.

김 씨의 사과원은 영주에서는 유일한 감염 과원이었다. 이곳 사과나무 30그루에서 잎과 가지, 줄기가 까맣게 마르는 감염 의심 증세가 나타났다.

한해 농사는 물론 그간 투자한 거액의 비용까지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그의 사과원에는 40년 넘게 가꾼 사과나무 총 1천 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1그루 당 20년 동안 연평균 5상자(1상자 20㎏, 각 3만원 안팎)의 사과를 수확해내고 있었다. 연간 500만원이 넘는 농약값, 가지치기 작업 등에 동원하는 일꾼들 품삯 지출까지 고려하면 손해가 심각한 지경에 이를 것으로 예측됐다.

결국 피해목과 주변 나무 30그루를 잃으면서 김 씨는 최대 9천만원(추산치) 상당의 손해를 봤다.

이후로도 서리 등 냉해와 병충해까지 3중고를 겪으며 좌절이 잇따랐다. 냉해가 컸던 지난해엔 예년 수확량 1천 상자에 턱없이 부족한 200상자만 수확했다. 올해 역시 개화기에 서리가 덮쳐 숱한 꽃을 떼어 버려야 했다.

김 씨는 "안동에서 또 한 번 화상병 사례가 나왔다니 막막하다. 귀중한 나무가 또 한 번 감염되면 그땐 어떡해야 할지 엄두가 안 난다"고 했다.

안동은 올해 화상병이 발병, 2021년에 이어 두 번째 화상병 감염 지역이 됐다. 지역 내 사과 주산지로 통하는 안동시 예안면에서 발병 사례가 나오자 일대 농민들이 또 한 번 불안감에 휩싸였다.

사과 농사가 성행하는 영양군과도 가까워 주변 지역에 확산할 우려까지 키운다.

경북 안동의 사과원 주인 A씨는 "화상병이 최근 심하게 내린 비와 바람을 통해 전파됐을까 봐 걱정이다. 파리나 벌, 일용직 근로자를 통해 옮겨간다는 이야기도 나온다"며 "불특정 감염원을 통해 전파될 수 있으니 요즘은 가족에게조차 농장 출입을 막고 있다"고 했다.

가까운 예천 과수농가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은풍면에서 사과농사를 짓는 B씨는 "불안한 마음에 마른 가지 등 의심 증상을 보이는 나무가 있는지 일일이 상태를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16일 경북 안동시 예안면 삼계리에서 농촌진흥청 방역 인력이 방호복을 입고 과수화상병 신규 확진 나무를 찾기 위해 예찰 활동을 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16일 경북 안동시 예안면 삼계리에서 농촌진흥청 방역 인력이 방호복을 입고 과수화상병 신규 확진 나무를 찾기 위해 예찰 활동을 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치료제 없고 전파 경로도 불명확…걸리면 걷잡지 못해

화상병은 근래 확인된 과수전염병 중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는 재해다. 사과와 배, 장미과에 속한 일부 식물에 영향을 미치는 세균성 병해로, 에르위니아 아밀로보라(Erwinia amylovora)가 원인균이다.

개화기인 5~7월쯤 꿀벌 등에 의해 옮겨지고, 비가 많이 올 때 원인균이 씻겨 다른 나무로 전염되는 것으로 보고됐다.

국내에서 확인된 지 8년밖에 되지 않아 농민들에게는 아직 생소하다. 2015년 5월 경기 안성에서 국내 처음으로 발생했다. 이후 잊을 만하면 충남과 충북, 강원, 경북 등 사과·배 주산지를 덮치면서 각지 과원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

올해도 안동과 충주, 괴산, 무주, 제천 등 사과 주산지를 중심으로 감염 확산이 두드러진다.

일단 걸렸다 하면 확산을 막기란 상당히 어렵다. 치료제가 없어서다. 감염목은 뿌리째 뽑아 태운 뒤 땅에 묻는 식으로 폐기한다. 확진된 감염목 반경 100m 이내 나무는 모두 매몰 대상이다.

감염목에서 나오는 삼출액이 전염의 주원인인 점도 확산세를 키우는데 한몫한다. 병균을 품은 염증성 액체 특유의 냄새 탓에 파리 등 벌레가 꼬이고, 균이 묻은 벌레들은 사람이나 차를 통해 멀리 떨어진 과원으로 옮겨갈 우려도 있다.

아오리 품종 등 여름 사과를 창고에 저장하고자 그간 보관하던 전년 가을 수확한 사과를 납품하는 과정에서 전염될 우려도 있다.

일각에선 농가 일손 부족을 이유로 부르는 팀 단위 일용직 농작업자나 외국인 노동자가 전염의 한 매개라고 분석한다. 이들이 가지치기 등을 하고자 일정 기간 집중적으로 나무와 농가, 지역을 넘나들 때면 신체와 농업도구에 묻은 균도 함께 전파된다는 것이다. 이들의 신체와 작업도구를 번번이 소독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확산방지책 역부족…"특정 지역 전담 농업지원단 꾸릴 것"

권기창 안동시장이 과수화상병 발생현장을 찾아 철저한 정밀예찰과 방제를 통해 확산 방지에 총력을 기울일 것을 당부했다. 안동시 제공
권기창 안동시장이 과수화상병 발생현장을 찾아 철저한 정밀예찰과 방제를 통해 확산 방지에 총력을 기울일 것을 당부했다. 안동시 제공

경북도와 안동시, 농업진흥청 등은 추가 확산 방지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방역당국이 이번 화상병 발생지 반경 2㎞를 합동예찰하며 확산 방지에 힘쓰지만 넓게 퍼진 농장을 단숨에 살펴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화상병 감염을 의심했으나 실제로는 비슷한 증상의 사과부란병(줄기 등이 갈색 등으로 변해 말라죽는 과수 전염병)일 가능성이 있어 진단검사할 일손도 부족하다.

농민들은 안동시가 앞서 첫 피해를 겪고서 예방책을 강화했던 점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있다. 시는 2021년 이후 대책상황실을 운영하며 지역 내 과수 농가들에 대해 예방책을 펼쳐 왔다. 안동시는 올해에도 17억원을 들여 각 농가에 약제 살포와 예찰 활동을 벌였다.

방역당국은 농가에서 과원 폐원을 우려해 감염목 발견 사실을 쉬쉬했다가 주변까지 더 큰 피해를 키울 수 있다며 의심증상을 발견하는 즉시 신속히 신고할 것을 당부했다.

권기창 안동시장은 올해 첫 과수화상병이 발생한 예안면 일원 방제 현장을 방문해 '화상병 차단 총력 대응 지시'를 내렸다.

권 안동시장은 "신속하고 정확한 방어체계를 구축하고 확산방지를 위해 정밀예찰과 방제에 총력을 다하겠다"라며 "관내 과수화상병 확진으로 큰 피해가 발생한 농가에 대한 보상 절차도 신속하게 진행하겠다"라고 말했다.

경북도 관계자는 "앞서 홍역을 겪은 타 지역들처럼 도내에서도 화상병의 주요 감염 경로를 파악하고, 먼 곳을 옮기지 않고 특정 지역만 맡는 농업지원단도 꾸릴 예정"이라며 "방제와 함께 농가별로 엄격한 예방과 원인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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