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흑주술의 나라

조두진 논설위원
조두진 논설위원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두고 국민의힘은 '먹기' 퍼포먼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단식'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오염수 방류는 과학의 영역인데, 먹기나 단식은 과학적 설명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런 퍼포먼스가 펼쳐지는 것은 '오염수 방류'에 관한 논쟁이 '과학'의 영역에서가 아니라 '믿음'과 '주술'의 영역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논쟁이 그런 식이니 전문가의 판단은 '헛소리'에 불과하고, '기준치 이하 오염도'라는 설명은 '그럼 마셔라'는 말로 되받는다. 변기 물을 정화하고 희석해서 오염도를 기준치 이하로 낮췄다고 해서 일부러 마시는 사람이 어디에 있나?

우리 정치인, 특히 야당 정치인들과 일부 시민 단체의 인식은 과학적 사고와 거리가 멀다. 뭉뚱그려 '과학'(科學)이라고 말하지만, 과학은 크게 세 가지 의미를 포함한다. 첫째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으로 표현되는 '과학 체계', 둘째 ▷만유인력 ▷반도체 ▷단백질 합성 등 '과학 지식(결과물)', 셋째 ▷질문(의문) ▷가설 ▷검증 ▷명제 도출 등 '과학적 사고(과정)'이다.

한국인은 과학 체계와 과학 결과물을 알지만 과학적 사고에 취약하다. 암기한 대로 대답은 곧잘 하지만 쓸모 있는 질문을 던지는 데 취약하고, 검증을 꺼리며, 검증 결과가 내 생각과 다르면 외면한다.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어 버리기를 좋아한다. 21세기 과학 시대에 살고 있지만 인식 체계는 중세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뇌 송송 구멍 탁' '전자파 튀김 참외' '우물에 독극물' 등 구호는 '흑주술'(黑呪術)과 다를 게 없다. 1923년 일본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거짓말이 흑주술이 아니면 무엇인가. 흑주술 피해는 어마어마하다. 관동대지진 때는 수많은 조선인이 학살됐고, 21세기 한국에서는 공사 지연, 농가 피해, 상인 피해, 시위로 인한 사회적 피해가 수조 원에 달한다는 분석이 있다.

오랜 세월 가난하고 약했던 대한민국이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 6위 무역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과학기술 지향 덕분이었다. 하지만 광우병 사태를 시작으로 우리 사회에는 흑주술로 사실과 과학을 뭉개려는 자들이 활개치고 있다. 흑주술을 변방으로 쫓아내지 않고 우리가 문명국을 자처할 수는 없다.

조두진 논설위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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