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 채영희 10월 항쟁 민간인 희생자 유족회장의 어머니 고 이분이 씨

'보도연맹원 아내'라는 꼬리표, 아픔을 제가 좀 더 덜어드릴 수 있었다면…

채영희 10월항쟁유족회장(사진 오른쪽)이 20대 시절 어머니 고 이분이(사진 왼쪽) 씨와 집에서 함께 촬영한 사진. 채영희 유족회장 제공.
채영희 10월항쟁유족회장(사진 오른쪽)이 20대 시절 어머니 고 이분이(사진 왼쪽) 씨와 집에서 함께 촬영한 사진. 채영희 유족회장 제공.

어머니, '10월 항쟁'의 10월도 단풍을 안고 저물어갑니다. 이별의 준비도 없이 홀연히 69세의 젊은 나이로 제 곁을 떠난지 30년이 가까워집니다. 엄마보다 10년이나 더 살아온 딸이 그립고 보고픈 마음을 여기 풀어보려합니다.

엄마와 함께 살던 팔공산 자락에 우리집을 기억해 봅니다. 이하석 시인이 쓴 '빈 집의 뒤안 같이'란 시가 우리집을 대변하는 시 같습니다. '빈집의 뒤안같이 기억마다 죽음이 파랗게 우거졌다. / 우체부 안오는 빈집의 뒤안같다.'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 때문에 어머니는 저희 남매를 엄하게 키우셨지요. 어린 동생은 친구들과 설익은 포도 따먹기, 몰래 감자 캐어 구워먹기 등 친구들과 장난을 치고, 주인에게 들켜 집으로 끌려오면 엄마는 어김없이 우리 남매에게 회초리를 들었습니다. 회초리를 드실 때에는 단정하게 옷을 입으신 뒤 싸릿대를 꺾어 만든 회초리를 들고 저희 둘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한 대는 엄마의 마음"이라며 종아리를 내려치셨고 또 "두 번째는 아버지의 매로 알아라"며 더 세게 종아리를 내려치셨습니다. 그렇게 회초리질이 끝나고 나면 어머니는 잠든 저희들의 종아리에 맨소래담 연고를 발라주시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셨었지요.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고 이야기할 법도 하지만 어머니는 제게 이런 말 조차도 꺼내기 어려울만큼 엄하게 저희들을 키우셨습니다. 어리고 철없을 때는 어머니에 대한 원망 때문에 이를 박박 갈며 일기장에 "엄마는 계모가 틀림없다"고 쓰곤 했는데 나이들고 나서 보니 얼마나 철없어 보이던지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아버지가 10월 항쟁으로 고초를 겪으신 뒤 사라지시고 나서는 어머니는 아버지 이야기를 잘 하지 않으셨지요.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아버지 함자도 알려주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니, 그래도 아버지를 잊지는 않으셨다는 걸 전 잘 압니다. 명절 즈음이면 아버지가 입던 도포를 다려서 걸어놓고 버선 5켤레를 옷장 안에 가지런히 정리해 놓으셨지요. 그리고 젊은 시절 아버지가 사다 주셨던 양산을 계속 수리해 쓰셨죠. 그렇게 아버지를 기다리셨지만 끝내 아버지의 생사를 듣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신 게 참으로 슬프고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보도연맹원의 아내'라는 꼬리표에 남편 없이 자식을 키워야 하는 처지가 당시 젊디 젊었던 어머니에게는 얼마나 힘들고 원망스런 운명이었을까요. 그 마음을 제가 일찍 알았더라면, 그래서 어머니의 아픔을 제가 좀 더 덜어드릴 수 있었다면…. 돌아가실 때의 어머니의 나이를 훌쩍 넘어선 큰 딸은 늘 후회의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아버지는 용기있게 살다 가셨다. 살아남아서 아버지의 억울함을 밝혀라"고 하신 말씀에 10월 항쟁 유족회를 조직해서 아버지와 당시 희생자들의 억울함을 밝히는 일을 계속 하고 있는데, 살아계셔서 이 모습을 보셨더라면 마음이나마 조금 놓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에 늘 가슴아픕니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하도 들어서 다른 건 다 잊어도 이 노래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기억합니다. 송민도의 '여옥의 노래'이지요. '바람은 말없구나 어드메 계시온지', '이 마음 그리움을 내 어이 전하리까' 같은 가사를 생각하다보면 어머니의 한과 그리움, 외로움이 너무 절절히 느껴져서 또 눈물짓습니다. 이제서야 어머니에게 그리움을 넘어 미안한 마음을 글로 전하는 못난 딸을 용서하셔요. 어머니,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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