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반복되는 ‘협동조합 민간임대주택’ 피해…대구 달서구에서 또 10억원 날릴 위기

달서구 송현동 협동조합형 민간임대주택 271가구 사업 중단
분양 계약한 25명 10억원 증발 위험
중구·북구 이어서 또?…'협동조합형 민간임대주택' 관련 절차·규정 미비
"정부·지자체 나서서 제도 개선해야"

대구 달서구 송현동 협동조합형 민간임대주택 홍보물. 독자 제공
대구 달서구 송현동 협동조합형 민간임대주택 홍보물. 독자 제공

대구 중구와 북구에 이어 달서구에서도 협동조합형 민간임대주택 계약으로 거액의 임차인 계약금이 증발할 위기에 놓인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이렇게 수억 원의 돈을 잃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피해 예방 및 구제를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월 달서구 송현동의 한 모델하우스를 찾은 A씨. 4인 가족이 오순도순 지낼 집을 알아보던 중 멀리 이사 가지 않고도 신축 임대주택을 계약할 수 있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왔다.

A씨는 몇 주 동안 고민 끝에 송현동에 들어선다는 84㎡형 민간임대주택을 계약하기로 했다. 계약금 4천만원을 선입금하고 이후 보증금 1억3천만원을 완납하면 월세 50만원만 내고 신축 아파트에서 살 수 있었다. 10년 후면 시세보다 저렴하게 분양까지 받을 수 있는 조건이었다.

일이 이상하게 흘러간다고 느낀 건 지난 7월쯤이었다. 이 무렵 아파트 사업 승인이 이뤄지고 A씨는 2차 중도금을 내야 했지만, 협동조합과 시행사는 모두 감감무소식이었다. 계약서에 적혀있는 번호로 전화해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계약서를 썼던 모델하우스를 급히 찾아갔으나 이미 문을 닫은 상태였다.

문제는 계약 1년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도 사업이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계약서에 따르면 해당 아파트는 5개 동 271가구 규모로, 지난달에 착공이 이뤄져야 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협동조합은 구청에 사업계획 승인신청조차 하지 않은 상황이다.

법적 분쟁까지도 불거질 상황이다. 이 아파트는 '협동조합형 민간임대주택'을 내세웠지만, 달서구청에 따르면 해당 협동조합 이름으로 된 '조합원 모집' 신고는 없었다. 일부 조합원들은 계약서를 뒤늦게 받아 협동조합형 민간임대주택이란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이 아파트를 계약했다는 황모(51) 씨는 "계약금을 납부해야 계약서를 준다고 했고, 4차례에 걸쳐 계약금 4천만원을 낸 후에 계약서를 받아볼 수 있었다. 그때도 조합에 관한 제대로 된 설명은 없었다"고 했다. 이어 "계약 8개월이 지났을 때쯤 아파트 사업 승인 문제를 알아보다가 이 아파트가 '협동조합형 민간임대주택'이고, 조합원 자격으로 계약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민간임대주택 특별법에 따르면 관할 구청에 조합원 모집 신고를 하지 않으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조합원의 권리와 의무 사항 등 충분한 설명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경우엔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규정한다.

현재까지 이 협동조합형 민간임대주택과 계약을 맺은 조합원은 약 25명으로 파악됐으며, 알려진 피해 금액만 약 10억원에 이른다.

조합원들은 법적 문제에 더해 입주까지 불분명한 상황에서 납부한 계약금을 돌려받길 원하지만, 협동조합과 시행사는 사업을 계속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시행사는 2차 조합원 모집을 준비 중이라며 기존 조합원들에게 오히려 추가 분담금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파트 계약자 권모(80) 씨는 "2주 전쯤 시행사에서 전화가 와서 '계약금을 돌려받고 싶으면 2천만원을 더 내라'고 하더라"라며 "돈을 보내진 않았지만 2차, 3차 피해가 걱정스런 상황"이라고 했다.

협동조합형 민간임대주택 계약에서 문제가 발생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대구 중구에서도 43명이 16억 5천만원을 날릴 위기(매일신문 11월 26일 보도)에 처했고, 북구에서도 조합원 270여 명이 180억원을 돌려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비슷한 피해가 반복되는 이유는 제도적 허점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계약금을 내도 법적 근거가 없어 우선 변제권이 적용되지 않고, 심지어 사업이 무산돼도 사후처리에 대한 구체적인 절차나 규정이 없는 상황이다. 조합원들 입장에선 납부한 계약금이 실제로 어떻게 사용되는지 알 방법도 마땅치 않다.

A씨는 "추가 피해를 막으려면 정부와 지자체가 나서서 문제를 널리 알리고 제도 개선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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