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파행 거듭하는 대구 서구 정압관리소 설명회…“절차적 정당성보다 '신뢰' 중요”

8월·10월·12월 주민설명회 모두 파행…주민 고성·질의만 쏟아져
전문가들 "제대로 된 대화의 장 필요해", "지자체 역할도 필요"
현재까지 달서구 구간에서 1.2㎞ 배관 매설 진행

지난 19일 오후 7시 대구서구청 구민홀에서 한국가스공사가
지난 19일 오후 7시 대구서구청 구민홀에서 한국가스공사가 '대구열병합발전 천연가스 공급시설 건설사업' 주민설명회를 열었으나, 주민 반발로 40여분만에 파행했다. 윤수진 기자

대구 서구 중리동 정압관리소 증설과 가스관 매립을 두고 한국가스공사와 주민들 간 입장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공기관과 지자체 등이 주민들에게 좀 더 섬세하게 다가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서구의 '정압관리소' 갈등은 지난 5월 가스공사가 서구 중리동 정압관리소를 증설하고 일부 구간엔 가스관을 매립한다고 밝히며 시작됐다.

대구시와 한국지역난방공사는 지난 2014년부터 친환경에너지 개선사업에 따라 성서열병합발전소에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여기에는 고압가스 압력을 낮춰줄 정압관리소가 필요하고, 가스관 매립도 진행돼야 한다. 애초 가스공사는 달서구 갈산동에 신설을 추진하다 지난 5월 중리동 시설 증설로 방향을 바꿨다.

이 소식을 들은 주민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김이수 범서구정압시설반대추진위원회 위원장은 "서구에 대구 혐오시설이 다 모여있다. 지금까지 그걸 다 참았는데 이젠 달서구 가스공급시설을 서구에 또 짓는다"며 "집 바로 밑에 대형 가스배관이 묻히는 걸 절대 용인할 수 없다"고 목소리 높였다.

한편 가스공사 측은 행정절차와 시공성, 운영 측면 전반을 고려했을 때 달서구보다 서구 시설 증축이 현실적으로 타당한 결정이었다는 입장이다. 또 액화천연가스(LNG)는 공기보다 가벼워 누출 시 대기로 확산되기에 위험성이 거의 없다고 했다.

가스관 매립을 두고 양측 의견이 수렴되지 않자 지난 7월 서구청은 가스공사가 신청한 도로점용허가에 '보완' 통보하고 주민설명회 등을 개최하라는 요구사항을 덧붙인 상태다. 가스공사는 소통 노력의 하나로 지난 10월 증설 계획을 잠정 보류했으며, 앞으로도 주민과 적극적인 대화로 불편을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가스공사의 '소통' 노력이 매번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8월과 10월에 이어 지난 19일에 열린 주민설명회에서도 가스공사의 사업 설명이 시작되기 전에 일부 주민들의 질의와 고성이 쏟아지면서 40여분 만에 끝났다.

갈등 관리 전문가들은 이 사태를 두고 제대로 된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게 공사 측의 근본적 숙제라고 지적했다.

최희순 한국갈등관리연구소 대구지부장은 "공청회 등 절차적 정당성에 집중하다보면 주민들의 목소리를 놓칠 수 있다"며 "발품을 팔아 지역민들을 찾아다니고, 직접 만나 시설의 안전성과 지역민들에게 도움되는 부분을 설명해야 한다. 단순 설득이 아니라 신뢰가 싹틀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형준 한국갈등해결센터 이사는 주민설명회 외에 제3자의 중재로 새로운 안을 도출해 낼 수 있는 자리 마련해 볼 것을 제언했다. 전 이사는 "지금처럼 한쪽은 설명회, 한쪽은 설명회 파행을 원하는 상황에선 바꿀 수 있는 게 없다"며 "구청이나 갈등관리 전문가 등이 사회자 역할을 맡아 대화를 유도하고, 한쪽이 전향적으로 입장을 바꿀 수 있을 만한 내용을 도출하는 '갈등조정협의체' 등이 해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김강민 단국대학교 분쟁해결연구센터 교수는 갈등조정협의체를 제안하면서도, 지자체에서도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대구시에도 '공공갈등 관리 및 조정에 관한 조례'가 마련돼 있다"며 "주민들만 수용한다면 비교적 중립적인 지자체에서 갈등관리에 나서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아직 가스공사와 주민들이 접점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가스관 매설 공사는 진행 중이다. 가스공사에 따르면 총 공급배관은 7.6㎞ 길이이고, 달서구 구간에선 1.2㎞(16%)가 현재 매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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