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아이 낳으면 현금 1억원 주자

이호준 편집국 부국장
이호준 편집국 부국장

올해 대구경북 초등학교 입학 대상 학생 수가 5년 전보다 26.5% 줄었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불과 1년 새 각각 12.1%, 14.6%나 감소해 속도감을 더했다. 전국적으론 올해 초교 입학생 40만 명 선이 깨질 것으로 보인다. 감소세가 가팔라 2년 후엔 30만 명대도 무너질 판이다. 2026년 초교 입학 예정인 2019년 출생아 수가 30만2천676명이다.

'출산율 세계 최저'라는 말도 식상해진 지 오래다. 합계출산율이 0.7명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내년엔 0.6명대까지 떨어진다는데도 실감을 못 한다. 경각심도 떨어져 파국이 뻔히 눈에 보이는데도 여전히 '뜨거워지는 솥 안 개구리'다. 오죽했으면 뉴욕타임스가 '한국은 사라지는가'라는 칼럼까지 게재했을까 싶다.

인천시는 올해부터 출산 시 1억원을 준다고 한다. 전부 시 예산은 아니다. 정부 지원금이 70% 정도 된다. 현금으로 한꺼번에 주는 것도 아니다. 18세까지 항목을 나눠 단계별로 지원한다. '1억원 프로젝트' 시도는 좋다. '1억원'이라는 말 자체가 주는 환기성과 상징성, 강력한 흡입력 때문이다. 그러나 '찔끔' 지원이라는 한계는 여전하다.

단계별 '찔끔' 지원으론 '저출산의 악순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너무 느긋하게 절차를 밟고 마취하고 수술 준비하느라 돈과 시간을 다 쓰는 사이 대한민국이 사라지게 생겼다. 이제는 살을 생짜로 째고서라도 급히 수술해야 하는 초비상 상태다. 근본 처방을 연구하고 내놓기엔 늦었다. 숨이 넘어가는 지금, 극약처방이라도 해야 한다.

시급한 근본 처방 중 하나는 영유아를 믿고 맡길 수 있는 거점 보육시설 시스템 마련이다. 이른 출근 및 늦은 퇴근까지 감안해 마음 편하게 맡길 수 있고, 아플 때 등 언제든 바로 가서 볼 수 있는 가까운 거점 보육시설을 정부 주도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이 역시 아이를 낳은 뒤의 일이다. 자녀를 낳지도, 낳을 생각도 없으면 소용없다.

출산 결심을 하고 양육 자신감을 가지게 하려면 걱정과 두려움을 줄여줘야 한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출산 결심에 적잖은 영향을 줄 수 있다. '낳을 수 있겠다' '키울 수 있겠다'는 마음을 먹을 수 있게 하는 동기가 된다. 지금의 연령·단계별 지원으로는 한계가 있다. 아이를 안 낳으면 18세도 없다. 현금, 목돈으로 동기를 부여할 때다.

지금은 비상 출산 정책이 필요하다. 정부와 지자체, 기초단체의 저출산 관련 예산을 재조정·단순화시켜 국·시도·구군비를 매칭하면 엄두를 못 낼 일은 아니다. 지난 2022년 정부가 저출산에 투입한 예산은 52조원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단순 환산하면 1억원씩, 50만 명에게 지원할 수 있는 금액이다. 2022년 출생아 24만9천 명의 두 배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국가 존폐가 달린 상황에서 '하세월' 지원으론 답이 없다. 더 촘촘한 대책, 구체적인 정책 등을 운운할 때도 아니다. 당장 피부에 와 닿는 실질적인 지원이 아니면 젊은이, 젊은 부부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힘들다. 이리저리 재고 이것저것 시도할 단계는 지났다. 심폐소생술을 해서라도 우선 살려놓는 게 급선무다.

2006년 이후 저출산 대응에 300조원 안팎의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이고도 출산율 향상은커녕 유지도 못 했다. 아니 곤두박질쳤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아이를 낳으면 현금 1억원을 지원하자. 수정·보완할 게 있다면 그 후에 하면 된다. 나라가 없어지고 나서 천금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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