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동착취' 논란에 필리핀 정부 "계절근로자 송출 잠정 중단"…농촌 비상

필리핀서 활동하는 한국 인력송출업체, 전남 농장서 각종 명목으로 계절근로자들 비용 가로챘다는 의혹
도내 11개 시군 필리핀과 계절근로자 MOU, 영주 260명·청송 129명·고령 112명 못 올 판

영주시는 16일 필리핀 현지에서 계절근로자 희망자를 상대로 면접을 하고 있다. 영주시 제공
영주시는 16일 필리핀 현지에서 계절근로자 희망자를 상대로 면접을 하고 있다. 영주시 제공

농촌 인력난에 단비 역할을 하는 외국인 계절근로자 초청에 빨간불이 켜졌다. 국내 계절근로자 착취 논란에 필리핀 정부가 '인력 송출 잠정 중단'을 선언하면서다.

법무부 체류관리과는 필리핀 이주노동부(Department of Migrant Workers)가 지난 11일 국내 지자체에 '계절근로자 송출을 잠정 중단한다'는 내용의 결정문을 전달했다고 16일 밝혔다.

최근 국내에서 계절근로자에 대한 임금 착취 사례가 속출한데 따른 것이다.

지난 9일 전남 해남군에 배정된 필리핀 출신 계절근로자들은 필리핀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 인력송출업체를 경찰에 고소했다.

이들은 국내 지자체와 근로계약을 통해 5개월 간 월급 200만원씩 받고 농장에서 일하기로 했으나, 인력송출업체가 자신들 계좌를 관리하면서 중개수수료, 숙소비 등 명목으로 225만원을 가로챘다고 주장했다.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외노협) 등 인권단체들도 지난 15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외국인 계절근로자 긴급구제를 신청했다.

인권위·외노협 등 조사팀은 "최근 해남군에서 계절이주노동자 25명을 심층 조사한 결과, 브로커·지자체에 의한 여권 압류, 브로커의 임금 착취, 고용주의 불법 파견 등이 다수 확인됐다"고 전했다.

법무부는 국내 지자체들에 이날까지 필리핀 계절근로자 현황을 제출해 달라고 요청했다. 구체적 내용을 파악하는 대로 필리핀 중앙정부와 논의할 예정이다.

지역민에게 일터를 제공하려던 필리핀 지방정부들도 17일 중앙정부와 만나 '송출 중단 결정을 해제해 달라'는 취지로 건의할 것이라 알려졌다.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외노협)와 전남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 관계자들이 15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외국인 계절근로자의 임금 착취, 강제 노동에 대한 관련 기관의 진상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외노협)와 전남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 관계자들이 15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외국인 계절근로자의 임금 착취, 강제 노동에 대한 관련 기관의 진상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장 농사와 수확을 눈앞에 둔 경북 농가들은 난감한 상황에 놓였다.

현재 경북에서 외국인 계절근로자를 초청하려 필리핀 지자체와 업무협약(MOU)을 맺은 곳은 경주시, 김천시, 영주시, 상주시, 봉화군, 의성군, 청송군, 청도군 등 11개 시군이다.

이 가운데 영주시가 연간 260명의 필리핀 계절근로자를 신청했고, 청송군은 상반기 129명, 고령군은 상반기 112명, 봉화군은 연간 51명 등을 신청했다.

오는 3월부터 사과·복숭아 등의 불필요한 꽃·과일 따기에 일손이 시급한 영주시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영주시는 지난 14일 농업정책과장 등 전담팀을 꾸려 필리핀 로살레스시 현지로 떠난 뒤 16일 계절근로자 건강·체력검사 및 면접까지 실시한 상황이다.

영주시 관계자는 "15일 경북도를 통해 연락 받은 뒤 필리핀 지자체와 함께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장 딸기 수확·선별과 참외 가지치기를 앞둔 고령군도 상황은 비슷하다. 특히 청송군 등은 오직 필리핀하고만 계절근로자 업무협약을 맺은 상황이다.

청송군 관계자는 "사태가 장기화하면 결혼이민자 농가에서 초청한 외국인 가족들을 다른 농가에서도 고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대책을 고심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 외국인계절근로자 제도는 국내 지자체들이 해외 각국 지자체들과 협약을 맺고 파종·수확시기 등 필요한 기간(기본 5개월까지 고용 후 3개월 연장 가능)에 단기 일손을 제공받는 제도다.

2015년 시범사업 이후 규모가 계속 확대돼 올해 131개 지자체에 5만여 명이 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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