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조국 통일 헌장 기념탑

박상전 논설위원
박상전 논설위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선대의 통일 업적을 기리며 세운 대형 건축물(조국 통일 3대 헌장 기념탑)을 철거했다. 김 위원장은 몇 주 전 '눈에 거슬린다'며 철거를 지시했고, 최근 한 외신은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언제 어떻게 철거됐는지는 불분명하지만, 기념탑이 사라진 것이 확인됐다'고 전했다. 조국 통일 3대 헌장은 역대 통일에 대한 원칙·강령·방안을 종합한 북측의 통일 기준이다. 이 기준을 1997년 '조국 통일 3대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공개했고, 이후 통일 실현 과정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으로 재차 강조해 왔다. 북한은 이번 철거를 통해 자기들이 만든 통일 원칙을 스스로 휴지통에 버린 셈이 됐다. 통일을 위한 원칙 따위도 사라졌으니, 통일을 위한 노력도 하지 않겠다는 의도다.

미사일을 연이어 발사하면서 적화 의욕을 여과 없이 드러낸 김 위원장이 기념탑 하나 정도 없애는 일은 대수롭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전쟁 도발로 이어지는 길의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긴장감은 지워지지 않는다. 김 위원장의 기념탑 철거는 김일성-김정일,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통일 노력을 전면 부정하는 행위다. 선대를 부정하면서까지 돌발 행동을 주저 없이 하는 것을 보면 북한이 얼마큼 위기 상황을 맞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선친의 유지를 버린 마당에 남한과의 약속은 휴지 조각쯤으로 여긴 듯하다. 2000년 남북 평양 정상회담 이듬해 완공된 기념탑 철거를 통해 첫 정상회담에 성공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업적은 허공으로 날아갔다. 북한은 2020년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면서 사무소 건설에 공동으로 나섰던 문재인 전 대통령을 '소 대가리' 취급하기도 했다.

기념탑 철거는 단순히 건축물 파괴의 의미가 아니다. 이제부터 대놓고 무력 통일을 완수하겠다는 신호탄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직도 북측에는 한마디도 못 하면서 남남 갈등을 부추기는 세력들이 있다면 자성이 절실하다. 군의 대응 태세를 강화하고 힘의 균형을 위해 화력 증강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조국 통일 3대 원칙을 북한이 스스로 폐기했기에, 우리도 조국 통일 3대 원칙 전제 조건(국가보안법 철폐, 안기부 해체, 합동군사훈련 중지)으로 내걸던 사안에 대해서는 오히려 강화하는 자세로 돌아서야 함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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