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식객 이춘호의 미각기행] (3)강원도 겨울생선 인문학

강원도 겨울생선 인문학

◆너무나 먼 강원도

강원도! 2000년 전까지만 해도 대구권 사람들에게는 멀어도 너무 먼 고장이었다. 88고속도로 이전 광주목포권도 마찬가지였다. 자연 강원도 식문화에 대한 인식도 매우 단편적이고 편협할 수밖에 없었다. 수도작 농사가 어렵다 보니 감자와 옥수수, 산나물 먹고 사는 화전민 같은 '감자바우 산골' 정도로 인식됐다. 그러다가 80년대 스키족들에게는 용평스키장, 그리고 드라마 '모래시계 '돌풍 이후엔 정동진행 동대구발 무궁화호기차가 지역민에게 강원도의 힘을 느끼게 해주었다. 강원도 여행이 본격화 된 건 영동고속도로와 연결되는 중앙고속도로, 그리고 7번국도 전구간이 개통되면서부터. 부산~고성군 통일전망대까지 이어준 경상‧강원도 동해안 종주도보길인 770km 해파랑길도 두 이질적 문화를 봉합해주기 시작한다.

현재 전국구 강원도 명물 음식은 크게 막국수, 닭갈비, 옹심이칼국수, 장‧섭칼국수, 곤드레나물밥, 콧등치기국수 정도이다. 하지만 이건 필요조건에 불과하다.

동절기 강원도 식문화의 원형은 단연 바닷가 별미 생선에서 발견된다. 바로 곰치‧도치‧장치‧물망치‧삼숙이‧도루룩이다. 도루룩은 이미 전국생선이 됐기에 나머지 5대 별미 생선이 2월초까지 가장 강원도스러운 맛을 발산하게 된다. 물론 그 옆에 인제군 용대리 명물인 황태도 동절기 별미다. 그 다섯 생선을 통섭할 수 있는 어항은 어딜까? 단연 양양과 강릉 사이에 있는 주문진항 수산시장이다.

◆주문진에서 만난 강원도 식객

감히 내가 강원도 음식을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내게는 강원도 방면 미로 도반인 황영철 씨. 그는 자타가 인정하는 강원도 대표 식객이자 강원도 식문화 연구가이다. 양양 바닷가 어촌 출신이라서 강원도 어부 입맛의 본질이 뭔가를 체험적으로 알고 있다. 그는 강원도 바닷가 맛을 '얕은 맛'이라 했다. 진한 것도 옅은 것도 아닌 제대로 어우러진 맛이란다. 그리고 외지인들의 편견도 몇 가지 바로잡아준다. 춘천닭갈비 이전에 홍천닭갈비가 먼저 자릴 잡았다는 사실, 서해안은 젓갈문화권이지만 강원도 동해안은 '식해문화권'이란 사실까지. 그래서 그런지 여기에선 멸치‧새우젓을 일상에서 보기 힘들다. 대신 명태‧가자미‧홍치식해가 남도의 밤젓(전어 내장)‧토하(민물새우)젓와 상응한다.

그가 강원도의 각기 다른 문화권을 분류해준다. 18개 시군, 이들은 백두대간의 동쪽과 서쪽에 앉아 영동과 영서를 구축한다. 영동북부권은 고성~속초~양양~주문진, 영동남부권은 강릉~동해~삼척. 가장 다양한 맛은 속초, 시장은 강릉 중앙시장, 그리고 이 계절 5대 생선권 중심축은 단연 주문진 어물전 골목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대구를 떠난지 4시간 조금 넘어 주문진 수산시장 주차장에서 그를 만났다. 70여 건어물 업소가 한데 밀집돼 있다. 바로 옆에 어시장, 그리고 어시장 옆에 풍물시장, 도로 건너편에는 쿰쿰하면서도 퀴퀴한, 강원도 냄새 가득한 별미 생선 전문식당 20여 곳이 진을 치고 있다.

◆장치 이야기

어시장 맞은편 해물마을 골목으로 들어갔다. 황 씨의 단골인 월성2호점에서 장치찜을 시켰다. 장치는 '벌레문치'로 불리는데 외지인은 탕으로 즐기는데 토박이들은 찜으로 즐긴다. 코다리처럼 반건조에서 사용하는데 그래야 살점이 야물고 고소해진다. 흑태찜과 코다리찜의 절충스타일의 맛인데 하이라이트는 고기 먹고 남은 칼칼하고 걸쭉한 국물에 무채와 콩나물 섞어 먹는 대목이다. 여사장은 현지인들은 다들 그렇게 먹는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5년 전인가, 남구 대명동 안지랑곱창골목 남쪽 초입에 동절기에만 장치를 선보인 가보세 식당이 있었다. 나도 몇 번 먹었는데 어느 날 문을 닫고 말았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장치찜을 먹는 감회는 남달랐다.

◆도치알탕을 먹다

식사를 한 뒤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로 핫플이 된 근처 주문진읍 영진해변 방파제 근처 커피숍에서 몇 시간 느긋하게 소화를 시켰다. 그리고 부리나케 조금 전 그 식당을 다시 찾았다. 미식가의 고역이 아닐 수 없다. 그걸 안 여사장이 피씩 웃는다.

이번 미각기행의 백미랄 수 있는 '도치알탕'을 시켰다. 그동안 몇 번이나 먹어본다 해놓고 아직 먹지 못했던 그 음식. 그래서 더 설렘 가득이다. 강력한 시큼함을 간직한 묵은지와 도치의 물컹한 느낌이 포개진다. 토장국에 가까운 무게감을 가진 국물이 이미 포만감을 느끼고 있는 위를 다시 '소화모드'로 돌려놓는다. 생선탕과는 결이 다른, 찌개같은 탕의 포스.

도치! 생김새가 심퉁맞게 생겨 '심퉁이'로도 불리는데 도치가 정식 학명이다. 강원도표 홍어'랄 수 있는 로컬 생선이다. 이 계절 여기 아니면 절대 먹을 수 없는 별난 놈. 포구 사람들의 유별난 먹성은 더 찐득하게 도치를 갈무리한다.

꾸덕하게 말린 것이나 한 바가지 정도로 받아낸 알을 소금물에 굳혀 제사상에 올리기도 한다. 알을 잘 뭉쳐 모두부처럼 만들어 팔기도 한다. 생김새와 달리 육질이 질기지 않고 쫄깃하고 기름기가 거의 없다. 많이 잡히던 시절 저장시설이 마땅치 않아 눈구덩이 속에 묻어두고 먹기도 하고 팔기도 했다. 수산항이나 오산항 등의 어촌 아낙들은 찹쌀이나 콩 등을 함지박에 이고 와 물물교환을 했다. '쭉쟁이'이라 하여 상품가치가 없는 알 빠진 암놈은 덤으로 줘버린다.

도치 요리는 의외로 다양하다. 한 번 데쳐 숙회로 먹기도 하고 꾸덕하게 말려 조림도 한다. 찜을 해서 간장 양념에 찍어 먹기도 하고 터뜨린 알에 묵은지를 섞어 자박하게 국으로 끓여 먹었다. 주당은 서남 해안의 홍어와 간재미처럼 초장을 넣고 회무침으로 먹기도 한다.

탕을 끓이기 전에 물컹한 살점을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뜨거운 물을 한 번 끼얹어 하얀 껍질을 벗겨내고 사용한다. 대구와 도루룩 알은 자칫 이물감이 느껴지지만 제철 도치알은 깨물면 살점처럼 잘 부서져 한 풍미를 돋워준다. 그 맛의 축은 단연 묵은지인데 그게 너무 짓물러 버리면 질척거려 사용할 수가 없다. 맑은 군내가 나야한다. 그 맛은 형언불가. 그래서 이 거리 식당주들이 신주처럼 모실 수밖에. 도치‧장치‧곰치. 묵은지 없으면 탕도 죽은 맛.

◆아리송한 곰치

곰치와 물메기 사이. 숱한 동명이인 생선이 있다. 특히 울진 이북에서 물곰, 곰치, 물텀벙, 흑곰 등을 얘기하면 '미거지'를 말하는 것이고, 포항 이남의 동해안에서 물메기, 미거지, 물미물텀벙, 물잠뱅이 등을 얘기하면 '꼼치'를 말하는 것이다. 동해안에서 '곰치'라고 하지만 실제 어종은 미거지다. 곰치는 '바다의 갱스터'라고 불리는 아예 다른 어종. 서남해안의 물메기는 실제로는 꼼치. 곰치를 미거지로 부르지 않는 이유는 미거지의 행동과 생김새가 둔한 곰처럼 생겼다고 하여 오래전부터 그렇게 불러왔다. 어부들 대부분은 생선의 정식학명보다는 생김새, 행동, 맛 등의 특징에 따라 이름을 단다. 구룡포 모리국수에 들어가는 물메기는 희한하게 '미역초'로 불린다. 멀리서 보면 미역이 일렁거리는 모습이라서 그렇게 부른다. 학명과 현지 이름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사진설명)

1. 강원도 동해안 겨울 생선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주문진 수산시장 초입 전경.

2. 도치와 장치, 그리고 곰치탕의 진미를 간직한 주문진 해물골목 초입.

3. '강원도의 홍어'로 불리는 도치.

4. 곰치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미거지.

5. 장치찜.

6. 도치알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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