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청참

박상봉 시인

박상봉 시인
박상봉 시인

갑진년(甲辰年)이 밝아오고 있다. 새해가 시작된 지 한 달이 넘었는데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싶겠지만 음력으로 따지면 아직도 계묘년(癸卯年)이다. 진정한 갑진년은 설날부터 시작된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라는 동요 가사처럼 양력 1월 1일은 까치설날이고 음력 1월 1일이 진짜 우리 설날이다. 한 해를 시작하는 날짜를 절기력을 따져서 입춘으로 세기도 한다. 십간, 십이지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사주명리학에서는 태양의 기울기로 계절을 나누는 '절기'로 한 해의 시작이 결정된다. 이에 따라 봄을 알리는 '입춘' 이후를 새해의 시작으로 보기도 한다.

설날 풍속 가운데 이른 새벽에 밖으로 나가 돌아다니다가 처음 들리는 소리로 새해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청참(聽讖)'이라는 세시풍속이 있다. 까치 소리나 송아지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그해 풍년이 들고 행운이 오며, 참새 소리나 까마귀 소리를 들으면 흉년이 들거나 불행이 올 징조로 믿었다. 이 때문에 길한 소리를 듣기 위해 설날 이른 새벽부터 까치가 깃든 곳을 찾아다녔는가 하면 아예 까치가 몰려와 집을 지을 수 있도록 집 주위에다 나무를 심어두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새 소리 하나에도 길흉을 부여했던 우리네 조상들의 소박한 마음가짐이 아닐까.

"새해 첫날 첫 나들이/ 옛 조상 슬기 본받아/ 한 해 운수 점치자며/ 새 소리를 들으러/ 동산으로 오르는 길/ 그 소리/ 까치면 어떻고/ 참새면 또 어떠랴만/ 헐렁한 밤나무골 지나/ 잣나무 숲에 이르자/ 우렁찬 장끼 소리가/ 아침 햇살을 가른다."

아동문학가 박경용 선생이 쓴 이 동시는 '청참'을 소재로 하고 있다. 청참 풍속은 한 해를 시작하는 정월 초하룻날 자연과의 호흡을 통해 마음을 새로이 가다듬는 옛사람들의 슬기로운 생활 태도를 엿보게 한다.

새해 벽두부터 주고받는 덕담도 어찌 보면 '청참'의 습속에서 빚어진 것이다. 고향으로 가는 길은 '청참'을 들으러 가는 길이다. 외로울 때나 서러울 때, 힘든 일이 있을 때, 어머니의 품 안처럼 영원히 기대고 싶은 소중한 안식처인 고향을 찾아가면 자신을 지탱해주는 보이지 않는 힘을 얻게 된다. 이번 설날에는 정겨운 고향의 소리에 잠시라도 귀 기울이는 여유를 한번 가져보는 것이 어떨는지. 비록 고향에는 가지 못하더라도 정월 초하룻날 가족끼리 세배와 덕담을 나누며 일상에 지친 고통도 걸러내고 가까운 야외에 나가 새소리, 솔바람 소리, 시냇물 소리 들으며 몸과 마음을 새롭게 충전하는 설날 맞으시기를 바란다.

'개문만복래 소지황금출(開門萬福來 掃地黃金出)'. '땅을 쓸면 황금이 생기고 문을 열면 만복이 온다'라는 말이다. 이제 곧 꽃이 피고 바람이 따뜻해질 것이다. 집 안팎을 깨끗이 쓸고 문을 열어두면 찬 바람 부는 세상사에도 연둣빛 봄물이 들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길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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