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평행이론]<10> 4년마다 터지는 총선 전 막말 “더 저질, 더 악화”

TV 뉴스 보던 딸 “아빠, 나베가 뭐야?”, 당황한 父 “어~~~, 몰라”
‘이대 나온 여자야!’ 재학 & 졸업생 ‘화류대학’ 날벼락
과거 유명 막말 “공업용 미싱”, “노인 투표 하지마”, “교회는 범죄집단”

역사에는 제법 비슷한 일들이 반복된다. 우연 같은 필연의 '아틀라스 클라우드'(리안 감독의 영화, 불교의 윤회사상 기반)
역사에는 제법 비슷한 일들이 반복된다. 우연 같은 필연의 '아틀라스 클라우드'(리안 감독의 영화, 불교의 윤회사상 기반)
60개 여성단체로 구성된 '찐(眞)여성주권행동'은 4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김준혁 후보 선거 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죄를 촉구했다.
60개 여성단체로 구성된 '찐(眞)여성주권행동'은 4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김준혁 후보 선거 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죄를 촉구했다.

"이대생들을 미국 장교들에 성상납, 박정희가 위안부 접대받아"(더불어민주당 김준혁 후보), "나경원 후보 별명 '나베'(냄비)"(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정치 개같이 하는….(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4년마다 치러지는 총선에서 하나의 큰 카테고리는 '막말'이다. 언제나 그래왔고, 현재도 그렇다. 누군가의 부적절한 한마디 때문에 중도층의 표심이 출렁거리고, 격전지에서 표심이 당락을 뒤바뀌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각 당에서는 입조심을 당부하지만, 어디서든 꼭 뭔가 막말이 터져나온다.

문제는 시대가 지날수록 이 '막말'이 더욱 퇴행하고, 유권자들의 정서를 황폐화시키는 저질로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총선은 특히 막말의 결정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듣고만 있어도, 민망하거나 불쾌해질 정도다.

서울 동작을에 출마한 국민의힘 나경원 후보가 4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나베'(냄비) 막말에
서울 동작을에 출마한 국민의힘 나경원 후보가 4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나베'(냄비) 막말에 "그 정도로 쓰러지지 않는다"고 맞받아쳤다. 연합뉴스

◆딸 "나베가 뭐야?", 아빠 "냄비라는 뜻이래!"

TV뉴스를 보다 딸이 아버지에게 '나베가 뭐냐?'고 물으면, 당황해서 한참을 주저하다(생각하며) "어~~~, 일본어로 냄비라는 뜻이래" 정도로 답할 수밖에 없다.

"왜 냄비라고 하는데?"라고 묻는 순간, "아빠도 잘 몰라"라고 더 이상의 질문을 막아야 하는 수준이다. 아버지는 무슨 죄인가? 편안하게 있어야 할 집안 거실에서 정치 때문에 이런 곤란한 질문에 당황하며, 정서적 안정이 깨져야 한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1등 여대, 이화여대 졸업생 및 재학생들은 갑자기 이 무슨 날벼락인가? 이활란 초대 총장이 이대생들을 미국 장교들에게 성상납을 시켰다고 하니, 자부심으로 가득찬 모교를 어디 화류계 대학 수준으로 격하시켜 버렸다.

그것도 제대로 된 근거도 없이 재미삼아 해댄 발언이라니. 김준혁 후보는 이대생들에게 몰매(모다구리, 여러 명에게 둘러쌓여 폭행 당함)를 맞아도 시원치 않을 판이다.

게다가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는 일제시대 위안부들에게 성접대를 받았을 것이라고 무턱대고 추측했다. 도대체 역사학자라는 분이 "터진 입이라고, 막 주끼는('지껄이다'의 경상도 방언)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저 안타까울 뿐이고, 역대급 상식 이하의 저질 막말이다.

야당에 막말에 대응하느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지난달 28일 신촌 유세 현장에서
야당에 막말에 대응하느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지난달 28일 신촌 유세 현장에서 "(제1야당이) 정치 개같이 한다"는 욕설에 튀어나왔다. 연합뉴스

이러다 보니, 이를 상대하는 집권여당 수장(한동훈 비대위원장) 역시 유세 때마다 험한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한 위원장 역시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막말에는 막말로 대응하고 있는 셈이다.

한 위원장은 며칠 전 "쓰레기 같은 막발을 쏟아내고, 정치를 개같이 한다"고 제1야당을 비난했다. 하지만 한 위원장의 이런 대응도 그저 "저질 막말, 진흙탕 싸움"에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2012년 19대 총선 당시 김용민 민주당 후보의 막말을 비판하는 조선일보 기사.
2012년 19대 총선 당시 김용민 민주당 후보의 막말을 비판하는 조선일보 기사.

◆역대급 정치권 막말 대잔치 "공업용 미싱"

정치권 막말의 역사는 짧지 않다. 아직도 머릿 속에 생생한 발언들이 섬뜩하게 남아있다. 1998년 총선은 아니지만 지방선거를 앞두고 김홍신 전 한나라당 의원이 "김대중(DJ) 대통령의 입을 공업용 미싱으로 더럭더럭 박아야 한다"고 맹비난했다. 당시 '공업용 미싱'은 역대급 정치권 키워드로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2004년 17대 총선 당시에는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미래는 20, 30대들의 무대"라며 "60대 이상 70대는 투표를 안해도 괜찮아요. 꼭 그 분들의 미래를 결정해 놓을 필요는 없단 말이에요"라고 말해, 노인층의 분노를 자아냈다. 실제 당시 노인층은 정 의장에 발언에 화가 나 분노 투표를 감행했다.

2010년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룸살롱 자연산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으며, 천정배 당시 민주당 의원은 이명박 정부에 대해 "확 죽여버려야 하지 않겠나"고 쌍스러운 공격을 해서 막말 이슈가 되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 당시에는 TK 출신의 이상배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이 '등신외교' 발언도 정치권을 얼음으로 만들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나는 꼼수다'의 멤버 김용민 민주당 후보가 공천을 받은 이후 과거 성희롱성 발언 등이 큰 비난을 받는가 하면, "교회는 범죄 집단"이라고 말해 여성과 노인뿐아니라 종교도 모독하는 막말로 유권자들의 반발 투표로 이어지기도 했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고 했다. 딱 맞는 말이다. 정치권 막말에 국민들의 황폐해진 마음도 이해가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2월에 충남 아산의 전통시장을 방문했을 때, 반찬가게 사장이 '거지같아요'라고 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유세 도중 "개XX"라고 욕설을 퍼부은 한 시민을 경찰관에게 "그대로 두라"고 관대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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