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때 철거되지 않고 방치되는 불법 현수막들로 시민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보화 시대에서 현수막은, 홍보나 광고 효과 보다 '공해'에 가깝다며 보다 강한 단속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길도 막고, 보면 기분 나쁘잖아요. 저런 걸 막 달아 놔도 되나요?"
12일 낮 대구 북구 복현동 복현오거리. 총선이 끝났으나 각 정당 후보를 뽑아 달라고 호소하는 정치 현수막들을 이곳저곳 난립해 걸려 있었다. 복현오거리는 북구청에서 지난 2019년부터 '현수막 제로구역'으로 지정한 곳이지만 취지가 무색할 정도였다.
시민들은 현수막 때문에 통행이 불편할 뿐더러 미관에도 좋지 않아 정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중구 남산동 주민 오모(57) 씨는 "구청에서 관리를 하는 것 같긴 하지만, 가끔 늘어지거나 구겨진 채 달려있는 현수막을 보면 보기 좋지 않다"며 "특히 정치 현수막은 선거 끝나고 바로 제거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각 대구 중구 동성로 옛 대구백화점 앞 길에는 중앙에 일렬로 식수된 나무들 사이로 현수막 세 개가 빼곡히 걸려있었다. 성인 남성 허리춤 높이에 나란히 걸린 현수막들은 양쪽 상가를 이용하려는 시민들의 통행을 가로막았고, 축 늘어진 일부 현수막은 영업 중인 간판을 가렸다. 현수막에는 '할랄식품밸리 조성 계획에 반대한다'는 내용과 함께 모스크바 총기난사범의 사진이 담겨있었다.
이 길을 지나던 강모(24) 씨는 "통행을 가로막는 방식으로 달아 놓는 건 민폐다. 현수막의 위치나, 적힌 내용 모두 부적절하다"며 "시야가 제한되고, 가고 싶은 가게를 괜히 돌아가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주말처럼 사람이 몰릴 때는 피해가 더 심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정치 현수막은 학생들이 지나다니는 학교 근처에 걸려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북구 대현동에서 하교하는 초등학생 딸을 데리러 온 학부모 A(40) 씨는 "특정 대상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내용이 적혀 있어 교육적으로 좋지 않고, 애들은 봐도 잘 알지도 못해 효과도 없다"며 "선거도 끝났는데 빨리 철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북대학교 정문 앞에 붙어있는 한 정당 현수막을 보며 대학생 강모(22)씨는 "얼마 전 벚꽃놀이를 하러 나왔는데 사진을 찍으면 꼭 이런 현수막이 같이 나온다"며 "길을 막는 게 아니라도 경관을 해치기 때문에 용도를 다 했으면 제때제때 치워 없앴으면 좋겠다"고 했다.
도시 미관은 물론 시야 확보에도 방해가 돼 안전 사고가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왔다. 북구 주민 A(55) 씨는 "운전할 때 보행자 신호등을 보면서 속도를 조절하기도 하는데, 횡단보도 앞에 붙어있는 현수막은 각도에 따라 신호를 가리기도 한다"며 "안전 문제도 충분히 생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 "온라인으로 정보 공유하는 시대, 현수막은 정보전달 보다 공해 가까워"
전문가들은 시민 불편 뿐 아니라 환경 문제와도 직결된다며 보다 강한 단속과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해외의 경우 선거 기간을 포함해 게시할 수 있는 현수막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으며, 정당 활동보다 환경오염 문제를 더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 우리도 관련 규정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김은영 대구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처장은 "업계에서는 현수막이 사실상 재활용이 불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간혹 장바구니나 쓰레기 등을 담는 마대로 재활용되곤 하지만 실제 현수막 개수에 비하면 정말 적은 수치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소각되는데 이때 배출되는 탄소의 양이 어마어마하다"며 "규제를 강력하게 만들어서 현수막 게시 위치와 개수들을 통제해야한다. 지자체에서 정비, 단속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현수막 게시 효과에도 의문을 내고 있다. 현수막은 1950, 60년대 정보 전달 수단으로 쓰던 건데, 이제는 현수막을 통해 정보를 알리는 시대는 지났다는 지적이다.
김 사무처장은 "요즘은 현수막보다 유튜브, 방송 등으로 공약을 접한다. 구시대적인 홍보를 위해 아직까지 현수막 게시가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현수막을 봐서는 공약 등을 자세히 알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서정인 영남대 도시공학과 교수도 "정보화 시대에 현수막은 더 이상 정보전달 효과보다는 '공해'에 가까운 것"이라며 "온라인 상 무분별한 정보 난립도 공해에 해당하는데, 녹음을 가리는 현수막은 도심 경관·미관을 크게 저해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이어 "현수막 문구 중에는 선동과 원색적인 비난이 섞인 게 많고, 사용하는 색상도 지나치게 자극적"이라며 "현수막 내용은 상대를 헐뜯고 비방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대부분이 긍정적 내용은 없어 정서적 불안함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초등학교나 유치원 인근 현수막은 근절돼야 한다"고도 했다.
우리 사회에서 현수막을 대하는 시선이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지적도 있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수막을 게시하는 것 자체가 공공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로 볼 수 있는데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이를 너무 관대하게 여기고 있다. 미국은 자기 집 앞에만 현수막을 두지 공공장소에 걸어두는 경우는 없다"며 "공공이 사용하는 곳에 사적인 개인의견을 홍보하겠다는 생각도 문제"라고 했다.
허 교수는 이어 "현수막을 꼭 걸어야 하는 경우에는 지금 지정게시대처럼 별도의 현수막 게시비용을 두는 것이 필요하다. 지정게시대 외에 현수막을 다는 경우 적발 시 수백만원씩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강한 통제가 필요하다"며 "불법현수막의 경우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탓에 정확한 피해자 구별이 어려웠는데 지금이라도 사회적인 합의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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