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재현장] 대구간송미술관에 거는 기대

이연정 문화부 기자

대구 사람이라면 이제 '간송'이라는 단어가 익숙하게 다가올 테다. 우리 문화유산의 보고(寶庫)로 불리는 간송미술관의 전신인 보화각을 건립한 간송 전형필(1906~1962) 선생의 호 말이다.

2018년 6월,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간송특별전 '조선회화명품전'은 간송미술관이 국보급 소장품들을 처음으로 지방에서 선보이는 전시였다.

우리가 쉽게 볼 수 없는 신윤복의 '미인도', 김홍도의 '마상청앵도', 정선의 '풍악내산총람도' 등 보물로 지정된 작품들도 전시됐다. 사람들의 호기심을 제대로 겨냥한 건지 3개월여간 16만여 명이 찾아 문전성시를 이뤘고, 특히 대구 외 지역에서 방문한 관람객 비율이 28%가량을 차지하는 등 문화 콘텐츠의 힘을 체감하게 한 전시로 손꼽힌다.

2022년 수성못 윤선갤러리에서 열린 '간송다담'도 큰 인기를 끌었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일부 국보·보물 전시와 함께 간송 전형필 선생의 활동, 간송미술관 소장 작품, 미술품 수리·복원 등에 대한 9개의 주제별 강연이 이뤄졌는데, 모든 강연이 매진된 것도 모자라 현장에서 청강을 신청하는 등 당시 전국에서 높은 관심이 집중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구가 다시 한번, 간송으로 주목받을 전망이다. 최근 대구미술관을 찾은 이들은 공사장 가림막을 걷고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 대구간송미술관의 외관을 목격했을 테다. 계단식으로 층층이 쌓인 건물의 일부 바닥은 마치 정원 속 연못처럼 물이 채워져 있어 주변의 산과 하늘을 가득 담는다. 굵직한 나무 기둥들과 짙은 색의 외벽은 무게감을 더한다.

잘 알려진 대로 이곳은 안동 도산서원에서 영감을 얻어 설계됐다. 가파른 언덕에 위치하고, 앞으로는 탁 트인 시야가 펼쳐진 입지 지형이 도산서원과 닮았다고 본 것. 간송미술문화재단의 소장품 중 하나이기도 한 겸재 정선의 '도산서원' 부채 그림 속 고요하고 한적한 분위기도 대구간송미술관과 꼭 닮은 듯하다.

대구에서 오랜만의 문화시설 개관 소식에 기쁜 마음이 앞선다. 더욱이 지난해 대구미술관 소장품 위작 의혹과 그에 따른 특정 감사부터 미술관장 선임과 관련한 논란, 대구미술협회의 법적 공방까지 다소 우울한 소식만 이어지던 대구 미술계에 한 줄기 빛처럼 느껴질 정도다.

다만 외관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콘텐츠를 채우느냐다. 단순히 전통을 담은 미술관에서 나아가, 역사 속 명작들을 토대로 미래를 향한 새로운 시도를 펼쳐 보이는 공간이 됐으면 한다. 이제 미술관은 전시만 하는 공간을 벗어난 지 오래다. 작품 보존 및 연구, 전 연령을 대상으로 한 교육, 아카이빙, 미디어 등 다양한 매체와의 결합, 음악·퍼포먼스 등 다른 분야와의 융합이 펼쳐지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대구간송미술관이 그러한 역할을 확장하는 데 앞장서길 바라는 마음이다.

무엇보다 미술관 건립에 대구 시민들의 소중한 세금이 투입됐고, 앞으로도 매년 수억원대의 시 보조금이 들어갈 수 있는 만큼 첫 단추부터 잘 끼워야 할 것이다. 또한 전국, 나아가 세계의 미술인들이 대구간송미술관을 찾고 머무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연계 교통편과 주변 편의시설 마련에도 많은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개관전이 열리는 올 9월, 많은 문화예술인들의 관심이 대구로 쏠릴 테다. 한국 근대미술의 발상지라는 자부심이 깔려 있기 때문일까. 대구간송미술관에 거는 기대가 크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