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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247>벽초 홍명희 선생과 벽루 김용준

미술사 연구자

김용준(1904-1967),
김용준(1904-1967), '홍명희 선생과 김용준', 1948년(45세), 62×34㎝, 밀알미술관 소장

'근원수필'의 명문으로 잘 알려진 문필가이자 화가, 미술사학자인 김용준의 '홍명희 선생과 김용준'이다. 서재에 있는 홍명희를 마치 현대판 고사인물화의 주인공처럼 묘사하면서 절을 올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까지 그려 넣은 특이한 작품이다. 1948년 작품인데 두 분 다 새하얀 한복 차림인 것도 인상적이다.

서재 벽에는 족자그림인 수묵화 한 폭이 걸려있고, 나지막한 책장엔 청색 포갑의 중국책 두 질 뿐 텅 비어 있으며, 홍명희 선생이 보고 있는 책과 그 옆에 포개놓은 책들은 양장본이다. 좌식의 책상으로 사용한 길쭉한 상 좌우엔 연상(硯床)과 커다란 화분이 있고, 김용준의 앞쪽에 돌, 소나무, 대나무를 심은 분재 하나가 있다. 연상엔 벼루, 연적, 필통 속의 붓 등이 가지런해 문필가의 방답다.

이와 비슷한 내용의 그림으로 청나라에서 정조경이 추사 김정희에게 인편으로 보낸 '문복도(捫腹圖)'가 있다. 정조경은 김정희를 화면 가운데에 커다랗게 그리고 인사드리는 모습의 자신을 그려 넣으며 뵙지는 못했지만 멀리서 그림으로나마 이렇게 인사드린다는 글을 써 넣었다. 정조경은 김정희보다 나이가 한 살 많은 청나라 학자다.

김정희의 글씨를 한 점이라도 더 연구하기 위해 표구사까지 뒤지고 다녔던 김용준이었던 만큼 '문복도'을 보았거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이 작품의 아이디어를 얻었을 것 같다. '문복도'는 김정희에 대한 청나라 학계의 평판을 짐작하게 해주고, '홍명희 선생과 김용준'은 홍명희에 대한 김용준의 깊은 존경심을 알려준다.

홍명희가 1928년부터 13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을 거치며 신문에 연재했던 역사소설을 단행본으로 간행한 '임꺽정(林巨正)'(1948·을유문화사) 장정을 김용준이 맡았고, 홍명희의 장남인 국어학자 홍기문과 김용준은 친구였다.

홍명희는 '임꺽정전(林巨正傳)을 쓰면서'(삼천리 1933년 9월호)에서 이렇게 말했다. "조선 문학이라 하면 예전 것은 거지반 지나(支那) 문학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사건이나 담기어진 정조(情調)들이 우리와 유리된 점이 많았고, 그리고 최근의 문학은 또 구미문학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양취(洋臭)가 있는 터인데 '임꺽정'만은 사건이나 묘사로나 정조로나 모두 남에게서는 옷 한 벌 빌려 입지 않고 순조선 거로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조선 정조에 일관된 작품' 이것이 나의 목표였습니다."

홍명희의 호는 그의 고향인 괴산의 옛 이름 벽양(碧陽)에서 유래했는데 처음에는 벽초(碧樵)라고 했다가 나중에 벽초(碧初)로 고쳤다. 김용준의 호는 근원이 널리 알려졌지만 그의 호 중에 벽루(碧樓)가 있다. 벽초 홍명희의 예술정신을 따르려는 뜻이 들어있는 호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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