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경북 혁신도시 10년] 가족 이주↓ 솔로족↑…교육·의료·문화 혁신 불어넣어야

병원·우체국 건립공사 무산…방치된 부지엔 잡초만 무성
가족 단위 이주 땐 인센티브…중앙정부·市 적극 대안 모색

대구 동구 괴전동 상공에서 바라본 대구신서혁신도시 전경. 매일신문 DB
대구 동구 괴전동 상공에서 바라본 대구신서혁신도시 전경. 매일신문 DB

대구혁신도시 정주인구 목표 달성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 정주인구 목표 달성을 위한 핵심층으로 불리는 다인 가구가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대구혁신도시를 떠나는 데다, 이전공공기관 가족 이주율이 절반 수준에 그치기 때문이다. 이들의 발길을 돌리기 위해선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교육·의료 시설 확충에 '혁신'을 가져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혁신도시 떠나는 다인 가구…늘어나는 1인가구

대구혁신도시는 당초 공동주택과 단독주택 등 7천660가구를 공급해 2만2천215명이 사는 도시를 조성하려고 했었다. 대구혁신도시 목표 인구를 달성하려면 가구당 2.9명의 인구가 필요하지만, 지난 4월 기준 혁신도시 내 정주인구는 1만7천491명으로 가구당 인구수가 2.0명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목표치 대비 78.7% 수준이다.

단순히 가구 수만 따져보면 대구혁신도시는 대구시 주민등록인구통계(지난해 하반기 기준)에 따르면 8천531가구(111.3%)가 살고 있어 공급 가구수를 훌쩍 넘겼다.

그러나 인구가 목표치에 크게 못 미치는 이유는 다인 가구 감소가 주요했다.

최근 3년간(2021~2023년) 주민등록인구통계에 집계된 인원별 가구수 추이는 ▷2인 가구(1천751→1천732가구) ▷3인 가구(1천521→1천371가구) ▷4인 가구(1천323→1천214가구) ▷5인 가구(266→233가구) 모두 감소했다. 반면, 지난해 대구혁신도시 1인 가구는 3천937가구로 지난 2021년보다 188가구나 늘었다.

대구혁신도시 1인 가구 비율이 대구 전체 지역 비율을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시 주민등록인구통계상 대구 전체 가구수(109만4천148가구) 중 1인 가구(43만2천375가구) 비율은 39.5%이다. 이에 반해 같은 기간 대구혁신도시 1인 가구 비율은 46.1%에 이른다. 그만큼 혼자 사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대구혁신도시 이전 공공기관 직원들도 1인 가구 증가에 한몫했다. 대구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대구혁신도시 이전 공공기관 직원 가족동반 이주율은 72.3%에 달하지만, 미혼이나 독신 등 홀로 가정을 제외한 대구혁신도시 가족동반 이주율은 57.2%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1년간 신혼생활을 혁신도시에서 보낸 정모(35) 씨는 "흔한 영화관이나 회원 가입 없이도 편하게 갈 수 있는 대형마트 하나 제대로 없는 곳에서 신혼생활을 하니 불편한 게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며 "이사를 결정할 때 불편했던 점을 1순위로 두고 이사했다"고 말했다.

혁신도시 내 한 공공기관 직원은 "젊은 직원들이 점점 늘어나는데 원래 살던 곳보다 삶의 질이 너무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항상 입에 달고 산다"며 "솔직히 퇴근 후 번화가에서 소주라도 한잔하려면 택시를 타거나 한참 이동해야 하는데 누가 여기서 오래 살고 싶겠냐"고 털어놨다.

13일 찾은 대구혁신도시 내 대형병원 공사 현장. 수년째 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이통원 기자 tong@imaeil.com
13일 찾은 대구혁신도시 내 대형병원 공사 현장. 수년째 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이통원 기자 tong@imaeil.com

◆ 학교도 병원도 없다…불만 속출하는 주민들

다인 가구가 이탈하는 데는 교육시설 부족이 큰 요인으로 꼽힌다. 대구혁신도시에는 초·중·고교가 모두 있지만, 고등학교의 경우 특목고인 대구일과학고만 있어 일반고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별다른 대안이 없다. 현재 용계동에 위치한 정동고가 대구혁신도시 이전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해 부지 매각에 난항을 겪으면서 2025년까지 옮기기로 했다.

이전공공기관 직원 김모(45) 씨는 "아들의 고교 진학을 위해 혁신도시를 떠나 수성구로 이사했다"며 "어차피 버스를 타고 다녀야 하는 거리라면 옮기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의료 시설 부재도 큰 걸림돌이다. 13일 대구혁신도시에 생기려다 무산 위기를 맞은 대형병원 건설 현장을 방문했지만,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사업이 추진되지 않다 보니, 해당 부지에는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 있다. 또 현장사무실 등 컨테이너도 철거하지 않고 덩그러니 방치돼 있다. 다만, 병원 등 시설이 대구혁신도시에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소형 병(의)원 11곳, 약국 3곳이 혁신도시 내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 시설도 부족한 상황이다. 갤러리 2곳과 대구혁신도시 역사를 담은 고향관 1곳을 제외하면 주말에 볼거리나 즐길거리가 전혀 없다는 게 인근 주민의 설명이다. 혁신동 행정복지센터가 임시로 자리 잡고 있지만, 흔한 주민자치센터 강좌 하나 개설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일반 건물을 임차에 사용하다 보니 상황이 여의치 않다.

14일 방문한 잡초가 무성한 대구혁신도시 내 우체국 건립 예정 부지. 이통원 기자 tong@imaeil.com
14일 방문한 잡초가 무성한 대구혁신도시 내 우체국 건립 예정 부지. 이통원 기자 tong@imaeil.com

대구혁신도시 우체국 건립공사도 아직 진행되지 않고 있다. 2011년 경북우정청은 코스트코와 인구가 늘어나면서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부지를 매입했으나, 우체국 부지를 방치하고 있다. 혁신도시 인근 안심우체국(1.8㎞)과 동호동 우체국(1.4㎞)이 있어 수요를 감당하기에 충분하다는 게 현재까지의 우정청 측 입장이다.

홍창식 혁신동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은 "다양한 주민들의 의견이 있는데 결국 정주여건 개선에 대한 문제"라며 "눈에 띄게 개선되지 않는다면 결국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구혁신도시 기업들도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법인 인감 한 통 발급받으려고 차를 타고 30~40분을 가야 하는 상황"이라며 "혁신도시 내 경제를 이끄는 기업들의 여건 개선을 위해서라도 법인용 통합무인발급기 행정복지센터를 만들어 달라"고 말했다.

대구 동구 신서중앙공원 일대에 마련된 고향관에서 사라진 9개 부락 실향민들이 전시관을 둘러보고 있다. 대구 동구청 제공
대구 동구 신서중앙공원 일대에 마련된 고향관에서 사라진 9개 부락 실향민들이 전시관을 둘러보고 있다. 대구 동구청 제공

◆ 혁신도시 성장 해법은?

국토교통부의 '혁신도시 정주여건 만족도 조사 결과'(2022년 기준)에 따르면 대구혁신도시의 정주환경 만족도는 65.7점으로 집계됐다. 전국 평균 만족도(69.0점)보다 낮은 수준이다. 대구혁신도시의 보육·교육환경 만족도 점수 역시 63.9점으로 전국 평균(64.8점)보다 낮다.

전문가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혁신도시에 혁신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하혜수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전 한국지방행정연구원장)는 "가족 단위로 정주하기 위해서는 교육 여건과 문화 인프라를 구축하고 개선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며 "학교 유치 등 환경 개선을 위해 마냥 기다리기보다는 대구시가 적극적으로 나서 더 좋은 대안을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행정안전부 미래지향적 행정체제 개편 자문위원회가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에 대응하기 위해 행정체제 개편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다뤄질 '생활인구' 개념이 도입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 교수는 "차선책으로는 지방 세입과 체류 인구 확보에 성공을 거둔 독일의 복수주소제 도입도 고민해 봐야 한다"며 "직장 문제로 실생활을 하는 대구혁신도시 직원들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 제2의 주소를 가지면, 상황에 따라 제2의 거주지가 주 거주지가 될 수 있다. 또 납부한 지방세 일부가 2개 주소지에 분배돼 양 지방자치단체에서 정책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윤대식 영남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가족 단위로 이주하는 혁신도시 공공기관 종사자들에게 중앙정부 차원의 인센티브를 마련한다면 좋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며 "구체적으로는 가족이 모두 이전할 경우 수당 형태로 금전적 지원을 하고 맞벌이 부부의 경우 배우자가 혁신도시를 비롯한 인근 지역에 우선적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주는 등 정부가 세밀하게 지원 규정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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