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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249>문슬, 태연자약하게 이를 잡는 천연스러움

미술사 연구자

조영석(1686-1761),
조영석(1686-1761), '노승문슬도(老僧捫虱圖)', 종이에 담채, 23.9×17.3㎝, 개인 소장

고목 둥치에 걸터앉은 노스님이 윗옷을 열어젖히고 옷자락에 시선을 집중하며 검지와 중지를 뻗은 손끝으로 세심하게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다. 누군가가 쓴 감상의 글이 이 그림과 함께 전하고 있어 어떤 일을 하는 동작인지 알려준다. 내용은 이렇다.

이를 잡으며 당대의 시무(時務)를 태연자약하게 웃으며 말했던 이는 진나라 왕 장군(왕맹)이다. 지금 푸른 회나무 아래에서 흰 납의를 풀어헤치고 이를 잡는 일 또한 선가삼매에서 염주 굴리는 일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문슬이담당세지무(捫虱而談當世之務) 언소자약자(言笑自若者) 진왕장군야(晉王將軍也) 금어창회지하(今於蒼檜之下) 피백납이문지자(披白衲而捫之者) 역혹념선가삼매(亦或念禪家三昧) 여수주지비야(如數珠之比耶)

스님은 지금 옷에 붙어 있는 이를 잡는 중이다. 그래서 이 그림에 '노승문슬도'라는 제목이 붙여졌다. '어루만질 문(捫)', '이 슬(虱)'이다. 머릿니, 몸니 할 것 없이 사람 몸에 기생하는 벌레인 이를 잡는 일을 문슬이라고 했다.

이 그림의 감상자는 스님의 이 잡는 모습을 중국 왕맹의 문슬 고사에 빗댔다. 왕맹은 진(晉) 나라 재상의 지위에 올랐던 4세기 때 인물인데, 젊은 시절 이웃 나라의 세력자인 환온과 마주 앉아 천하대사를 논하면서 태연히 옷자락의 이를 잡았다. 그래서 문슬은 영웅의 재기와 풍모를 뜻하는 말이 되었다. 노스님의 이 잡기를 왕맹의 담대한 천연스러움에 빗댄 것은 좀 견강부회한 비평인 것 같기는 하다.

불교의 오계(五戒) 중 첫 번째가 산 것을 죽이지 말라는 불살생의 계율이므로 스님의 이 잡기는 사실은 눈에 보일까 말까 한 미물인 이를 세심하게 옷에서 쫓아내는 이 털기이다. 스님의 시선과 입매를 비롯해 표정과 동작이 마치 찰나를 포착한 스냅사진을 보는 듯하다.

수염이 거무스름하고 머리칼도 송골송골 조금 자랐다. 짱구인 이마와 세모꼴인 코, 튀어나온 광대뼈와 움푹 들어간 볼, 눈가와 입꼬리의 주름 등 간결하게 요약한 얼굴 모습이 해학적이다. 쪼그리고 앉은 자세와 풍성한 옷자락의 흐름도 자연스럽다. 스님은 버선을 신었다. 버선은 둥근 뒤꿈치와 발바닥의 잘록한 홈, 뾰족한 버선코, 발등의 겹쳐진 수눅까지 세심하고, 짚신인지 미투리인지 모를 스님의 신발은 동그란 매듭 두 개와 뒤축까지 정겹다.

'종보(宗甫)' 서명과 인장이 있는 영조시대 문인화가 조영석의 작품이다. 조영석은 금강산도의 대가 정선과 한동네에 살며 친하게 지냈던 이웃사촌이다. 정선은 우리 산천을 진경산수화로 남겼고, 정선보다 열 살 아래인 그림 후배 조영석은 우리 선조를 생생한 풍속화로 남겨줬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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