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대 문화권 대해부] 신라시대에 '배드민턴'이?…구미 신라불교초전지 직접 가보니

3대 문화권 사업 관광지 10곳 중 8곳은 전시·체험 시설 갖춰
구미 도개면에 조성된 신라불교초전지, 관련성 낮고 지루한 콘텐츠
한옥 숙박 이용객은 느는데 전시관 이용객은 제자리걸음

지난 12일 오후 1시쯤 찾은 구미 도개면의 신라불교초전지 입구. 주말 오후인데도 한적했다. 윤정훈 기자
지난 12일 오후 1시쯤 찾은 구미 도개면의 신라불교초전지 입구. 주말 오후인데도 한적했다. 윤정훈 기자

지난 12일 오후 1시쯤 찾은 구미 도개면 신라불교초전지. 완만한 산줄기를 배경으로 한옥 서너 채가 띄엄띄엄 서 있었다. 벤치에 앉아 사진을 찍거나 정자에 모여 쉬는 관광객 두세 무리가 보일 뿐, 주말인데도 한적했다. 최소 5인 이상 신청해야 이용할 수 있는 사찰음식체험관은 문이 닫힌 채 운영하지 않았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한옥마다 의(衣)·식(食)·주(住)를 테마로 꾸며 놓은 체험장이 나왔다. 처음 들어간 '의' 공간의 신라인 옷 체험 코너엔 정작 옷은 온데간데없이 텅 비어 있다.

신라불교초전지 안에 있는 주住)를 테마로 꾸며 놓은 체험장 입구. 윤정훈 기자
신라불교초전지 안에 있는 주住)를 테마로 꾸며 놓은 체험장 입구. 윤정훈 기자

구미 신라불교초전지 안에 있는 의(衣) 체험장.
구미 신라불교초전지 안에 있는 의(衣) 체험장. '체험후 사용하신 의상은 제자리에 걸어주세요'라는 안내문만 있을 뿐, 의상은 보이지 않는다. 윤정훈 기자

그다음 방문한 '식' 공간. 신라 식문화와 생활상을 체험하는 곳이라는 소개와 달리 제기차기, 캐치 바운스, 고무공 배드민턴 등 신라와 상관없는 놀이도구가 나란히 놓여있다. '주' 공간은 콘텐츠 없이 텅 빈 것도 모자라 전통 가옥에 걸맞지 않은 현대식 장판이 깔려 있었다. 마당엔 흔하게 접할 수 있는 투호 세트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신라불교초전지 식(食) 체험장에 있는 놀이도구들. 윤정훈 기자
신라불교초전지 식(食) 체험장에 있는 놀이도구들. 윤정훈 기자
구미 신라불교초전지 안에 마련된 주住) 체험관에 현대식 장판이 깔려 있다. 윤정훈 기자
구미 신라불교초전지 안에 마련된 주住) 체험관에 현대식 장판이 깔려 있다. 윤정훈 기자

2017년 문을 연 3만6천㎡ 규모의 신라불교초전지는 '신라불교 문화를 오감으로 체험하는 공간 조성'이라는 취지와 달리 불교문화와 관련성이 적은 콘텐츠가 채워져 있었다.

특히 신라불교의 역사를 전시한 기념관은 작은 글씨가 빼곡히 적힌 안내판 위주여서 가독성이 떨어지고 지루했다. 또 사진을 촬영하면 화면 속 연등 이미지와 합쳐서 보여주는 키오스크의 경우 2000년대 초반 출시된 2G폰으로 찍은 사진 화질 수준이었다.

단체방문 전 사전답사를 온 구미의 한 학원 원장은 "기념관을 둘러봤는데 인상적이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며 "제기차기, 윷놀이, 투호 등 학생들이 다른 곳에서도 흔하게 접하는 체험들뿐이라 식상했다"고 말했다.

콘텐츠 매력도가 낮은 기념관은 무료임에도 유료 숙박 체험보다 찾는 사람이 적다. 구미시에 따르면 지난해 한옥 숙박 이용객은 5만6천명이었다. 같은 해 기념관을 찾은 사람은 3만1천명에 그쳤다.

정태흥 구미시 관광인프라과장은 "지금 당장 콘텐츠 리뉴얼 계획은 없다"면서도 "구체적인 방향을 정하진 않았지만 초전지 주변 빈집들을 매입한 뒤 장기적인 활용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작은 글씨만 빼곡해 가시성이 떨어지고 지루한 전시. 윤정훈 기자
작은 글씨만 빼곡해 가시성이 떨어지고 지루한 전시. 윤정훈 기자
구미 도개면에 있는 신라불교초전지기념관의 연등 띄우기 체험 기계. 화질 상태가 좋지 않아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윤정훈 기자
구미 도개면에 있는 신라불교초전지기념관의 연등 띄우기 체험 기계. 화질 상태가 좋지 않아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윤정훈 기자
3대 문화권 사업 전시·체험장 개장 연도 분포
3대 문화권 사업 전시·체험장 개장 연도 분포

신라불교초전지처럼 3대 문화권 사업 45개 중 전시·체험관이 있거나 조성할 계획인 경우는 82%(37개)에 달한다. 그야말로 3대 문화권 콘텐츠의 핵심은 전시·체험이다. 이들 사업 내 전시·체험관 수는 모두 41곳이고, 이중 현재까지 36곳이 문을 열었다.

문제는 식상하고 부실한 콘텐츠로 사업 취지를 살리지 못한 채 운영되는 전시·체험 시설이 곳곳에 있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전시물 상당수가 '낡은 것'이 돼 간다는 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특히 2018~2020년 사이 23곳이 집중적으로 문을 열었는데, 공교롭게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에 직격탄을 맞기도 했다.

경상북도 관계자는 "도내 사업들 가운데 대대적인 리뉴얼을 추진하는 곳은 없지만, 전반적으로 콘텐츠가 빈약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며 "리뉴얼을 하려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원안의 사업 취지와 달라질 수도 있어 문체부에선 승인을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라고 토로했다.

기획탐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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