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참군인의 명예와 신조

김병구 논설위원
김병구 논설위원

해병대 출신 친구 A는 최근 "이제 해병대 얘기는 그만했으면 좋겠다. 부끄럽다"고 했다. 그는 "생때같은 사병이 허망하게 죽었는데, 상급자로서 부하 탓만 하며 빠져나가려는 지휘관들의 모습을 보면서 해병대 출신임을 감추고 싶은 심정"이라고 고개를 떨궜다.

해병대 제1사단 포병여단 제7포병대대 소속 채수근 일병이 경북 예천군 내성천 급류에 휩쓸려 숨진 지 벌써 10개월이 지났다. 한 해병의 죽음에 대한 책임자를 가리기 위한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이후 특검 정국으로 치닫고 있다. 그동안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쟁점인 '윤석열 대통령 격노설'의 적·불법성 여부를 차치하더라도 군 지휘관들의 행태에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대통령과의 통화를 부인하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를 받던 중 외국 대사로 출국했다 소환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복수의 장교로부터 대통령 격노 발언 당사자로 지목되고도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에 대해 '격노는 박 전 대령의 망상'이라고 치부한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1사단 소속 7포병대대에 대한 지휘권을 갖고 수중 수색을 진두지휘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지만, 육군 50사단과 부하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군대를 다녀온 필자로서는 이들 지휘관에게서 군인 정신, 특히 군인의 신조나 명예를 찾아보기 어려워 안타깝기 그지없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생명을 바친다 ▷명예와 신의 속에 산다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 육해공군 사관생도의 3대 신조다. 또 ▷'해병대는 해병의 명예를 실추시키지 않는다'는 5대 해병 생활신조 중 첫째로 꼽히고 있다.

이들은 생명을 바친다는 신념은커녕 명예와 신의, 정의의 길조차 저버린 듯하다. 책임을 자임하며 사병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영관급 이하 장교와 명예와 신조를 헌신짝처럼 팽개치고 부하 탓만 하는 장성급 지휘관의 모습은 극히 대조적이다. 이번 사태의 지휘 책임이 있는 장성급은 대사로 임명되거나 보직을 유지한 반면 상부 명령에 따라 현장에 투입된 대대장 2명만 보직 해임된 상황도 아이러니다.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부당한 명령은 단호히 거부하며 명예와 신조를 지키는 참군인의 모습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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