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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칼럼] 결국 내수 회복인데 정치가 걸림돌

김수용 논설실장
김수용 논설실장

반도체 업황 회복과 자동차 산업 약진 덕분에 수출이 8개월 연속 성장하고, 무역수지가 12개월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간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특히 반도체 수출은 110억달러 이상을 기록해 완연한 회복세를 보였고, 반도체·디스플레이·무선통신·컴퓨터 등 4대 정보기술 품목 수출도 3개월 연속 동시 증가세다.

수출 호조에 힘입어 현대경제연구원은 올해 우리나라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2.2%에서 2.7%로 상향 조정했다. 수출 침체와 고물가·고금리에 따른 복합 불황에서 수출 주도 성장 국면으로 진입할 것으로 내다봐서다. 그런데 결국 문제는 내수다. 수출 덕분에 내수시장이 다소 살아나는 모양새이지만 고금리 탓에 충분한 내수 회복은 기대하기 쉽잖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수출이 가계 소득 증가, 기업 투자 증가 등 내수 확대를 이끌지만 고금리는 기업 투자의 기회비용 상승, 가계의 저축 유인 증대로 이어져 결국 내수를 위축시킬 것으로 분석했다. 현대경제연구원도 실질 구매력 회복세가 더뎌지며 민간 소비 증가율은 지난해 1.8%에서 올해 1.7%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내수 회복을 위해 유연한 통화정책과 활력을 불어넣을 재정정책이 필요하다. 시중에 돈을 더 풀어야 한다는 의미인데, 상황은 여의찮다. 가계 대출이 증가세로 돌아섰고, 일반은행 신용카드 연체율과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등 개인 사업자의 은행 대출 연체도 급증세다. 빚으로 빚을 막는 악순환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뜻이다.

고물가도 발목을 잡는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두 달 연속 2%대 후반에 머물며 다소 안정세를 찾는 모습인데 농산물과 석유류 가격은 여전히 위협적이다. 2021년 이후 소비자물가는 13%가량 급등했다. 먹고 쓰는 데 드는 돈이 더 들다 보니 월급이 줄어든 효과를 낳았다. 중산층·고소득층 살림살이도 팍팍해졌다. 올해 1분기 기준 중산층 가구 5집 중 1집가량은 번 돈보다 쓴 돈이 많은 '적자 살림'을 했다. 소득 상위 20% 이상인 고소득층의 적자 가구 비율도 10%에 육박한다.

현재 수출과 금리 흐름이 지속된다면 내수를 충분히 끌어올리기 어렵다. 기댈 것은 금리 인하이지만 현 상황은 예상보다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금리 인하 시기에 보수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이 금리를 낮췄으나 파급효과를 기대하기는 무리다. 수출 호조를 장담하기도 쉽지 않다. 대미 무역수지 흑자가 이어지면서 대선을 앞둔 미국에선 보호무역 기조가 강해지고 있다. 미국 정치권을 중심으로 한국에 불리한 요구를 쏟아낼 가능성이 크다.

호황기라도 경제정책을 허투루 낼 수 없다. 하물며 지금과 같은 위기라면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런데 해외 직구 금지 논란, 연구개발(R&D) 예산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논란 등 정책적 혼란은 말할 것도 없고 유류세 인하 조치 중단을 둘러싼 구설에다 온갖 감세 정책의 원점 회귀까지 도무지 경제 컨트롤 타워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 탓만 할 수도 없다. 정부 여당이 내놓은 경제 관련 입법은 모조리 국회에서 무산됐고, 22대 국회도 나아질 가능성은 안 보인다. 물가 안정을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해도 위기를 넘길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결국 문제는 경제이고, 첫 단추가 내수 회복인데 원칙도 대책도 합의도 없는 게 우리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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