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오늘 이 그림이 역사 속 명작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인생을, 목숨을 걸고 그립니다”

제1회 계명극재회화상 수상자 김서울 작가
“제조공정 분석 등 꼼꼼한 재료 탐구 통해
최상의 것으로 작업…그것이 곧 작가 태도”
“지금까지 해온 모든 것과도 바꿀 수 없을
최고의 것 그리고 싶어…항상 절실한 마음”

제1회 계명극재회화상을 수상한 김서울 작가. 계명대 제공
제1회 계명극재회화상을 수상한 김서울 작가. 계명대 제공
김서울(오른쪽) 작가가 신일희 계명대 총장으로부터 계명극재회화상을 받고 있다. 이연정 기자
김서울(오른쪽) 작가가 신일희 계명대 총장으로부터 계명극재회화상을 받고 있다. 이연정 기자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이렇게 단정 짓는 이들에게 그는 말한다. "이 세상에 새로운 게 없다지만, 새롭게 보일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봤어야만 했는데 아직 보지 못한 이미지들을 내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를 심지어 꿈 속에서도 고민하죠."

김서울(36) 작가는 계명대학교가 창립 125주년을 맞아 제정한 계명예술상의 미술창작부문 '계명극재회화상'의 첫 수상자로 선정됐다. 시상식 후 만난 그는 "회화만을 대상으로 주는 상이 거의 없다. 회화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계명대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앞으로 이 상이 회화를 발전시키는 상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와 한 번이라도 얘기해본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다. 반짝이는 눈빛 속에 자신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 오로지 작업에 대한 열망이 가득하다는 것을. 그가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으로 "새로운 미술에 인생을 투신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라고 했을 때 한순간 분위기가 숙연해진 것도 그러한 그의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일 터.

그는 "정말 목숨을 걸고 하는 작업들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공정하게 심사가 이뤄진다면 내가 상을 받을 것이라고 100% 확신했다. 정말 나만큼 하는 사람을 못봤기 때문이다. 내가 '저 상을 받는 작가들은 저만큼 한결같이 많은 노력을 해야하는구나' 하는 선례가 돼, 앞으로 그러한 작가들이 수상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5월 28일부터 6월 5일까지 계명대학교 극재미술관 블랙갤러리에서 열린 그의 전시. 이연정 기자
5월 28일부터 6월 5일까지 계명대학교 극재미술관 블랙갤러리에서 열린 그의 전시. 이연정 기자
5월 28일부터 6월 5일까지 계명대학교 극재미술관 블랙갤러리에서 열린 그의 전시. 이연정 기자
5월 28일부터 6월 5일까지 계명대학교 극재미술관 블랙갤러리에서 열린 그의 전시. 이연정 기자

그는 스스로를 회화 작가라는 말 대신 시각예술종사자라고 소개했다. 왠지 막연한 낭만적 예술에 매몰되는 느낌 대신, 붓과 물감, 캔버스 등 미술의 기본적인 재료를 생산, 유통, 소비되는 물질이라는 관점에서 깊고 섬세하게 연구하며 작품으로 나타내왔다.

깊고 섬세하게 연구한다는 것이 추상적으로 다가올 찰나, 그의 설명이 덧붙여진다.

예를 들어 그는 최상의 것을 찾기 위한 끊임없는 모험에 자신을 던진다. 유화 물감을 만드는 회사 '올드 홀란드'의 물감 제조 공정과 기계 설비부터 분석하고, '필버트 패밀리'라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스페인에서 가장 좋은 품질의 붓을 만드는 회사 '에스코다'의 붓 115가지를 모두 사서 써보기도 한다. 구입 비용만 1천500만원 상당.

"결국 최상의 것들로만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것은 작가 태도와 직결된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공부하고, 배우는 데 안일하게 행동하지 않으려하는 것, 그게 기본입니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전체의 1%가 할까 말까 하겠죠? 그렇게 하려면 불효자가 돼야하고, 빚도 져야하고, 우울증과 공황장애도 앓아야하고, 자살 충동도 느껴야하는데, 자기 목숨을 내놓고 그렇게 덤비기가 쉽지 않죠.

이 모든 건 내가 겪었던 사실들입니다. 근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냥 여태까지의 수많은 그림에 한 점 더 보태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 그 1%의 태도가 중요한 거예요.

정말 자기가 뭔가 넘어설 게 있고, 아직 해야될 게 있고,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고, 내가 한 행위가 뭔가 세상을 아름답게 바꿀 수 있다는 마음을 품는 순간, 내가 알았던 지식과 물질, 태도가 화학적으로 결합해 최상의 것이 나오죠.

저는 절실해요. 오늘 그리는 것이 지금까지 해온 모든 것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의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김서울 작가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계명대 제공
김서울 작가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계명대 제공

그는 "작가가 나이가 들면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데이비드 샐린저는 자신이 20대에 쓴 '호밀밭의 파수꾼'을 뛰어 넘는 작품을 90세가 넘도록 쓰지 못했다"며 "그러니 항상 내 작업이 클래식, 최고의 것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려야 한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To be later, 나중에'다. 나중은 없다. 이게 역사를 뒤흔들 수 있는 단 한 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모든 걸 거는 이유"라고 말했다.

누군가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 그런 우문(愚問)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좋은 작품을 보면. 어제처럼 살 수가 없어요. 작품을 본 그날부터 알게 모르게 서서히 마음의 균열이 가기 시작하죠. 존경하는 작가 중 한 명인 프란시스 베이컨도 피카소의 청색 시대 그림을 파리에서 본 뒤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됐고, 피카소 역시 마네, 모네의 그림을 보고 자기가 지금까지 해온 모든 것들을 버린 뒤 아비뇽의 처녀들을 그렸습니다. 그처럼 어떤 작품은 그 자체로 생명이 있어서, 충분히 세상을 바꿀 힘이 있습니다."

작가는 마지막으로 자신이 품고 있는 꿈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대학교 1학년 때 다짐한 장기적인 계획, 그것은 미국 미술의 자존심을 꺾고 싶다는 것이다.

"미국 미술의 자존심은 휘트니뮤지엄입니다. 타국 사람에게 절대 전관을 내주지 않는 그곳에서, 내 개인전을 열어보고싶어요. 어디에 어떤 작품을 걸 지도 생각해뒀죠. 사람들이 지금까지 한 번도 못봤던 것을 만들어보고 싶은 열망이 강합니다."

그는 국민대에서 회화를 전공했고 2019년, 2021년 서울문화재단 최초예술지원 작가로 선정된 바 있다. 첫 개인전을 아트딜라이트에서 연 이후 아미미술관, 을지예술센터, IBK아트스테이션, 갤러리기체, 싱가포르 BOL갤러리 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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