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새로운 장편소설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발표한 김금희(45) 소설가가 지난달 '현상에서 사건으로, 소설의 여정'이란 주제로 대구문학관을 찾았다.
김 작가는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너의 도큐먼트>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소설집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너무 한낮의 연애>와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 등을 펴내며 섬세한 표현력을 인정받아 대한민국의 대표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자신은 줄곧 어떤 문제에 천착하고 어떤 방법으로 소설을 써내는지 차근히 설명하는 김금희 작가를 만나 그녀의 소설 세계에 대해 더욱 깊이 들어봤다.
*해당 기사는 강연 후 인터뷰를 진행한 뒤 강연 내용과 종합해서 작성했습니다.
-지난해 이맘때쯤에도 대구 2.28공원에서 강연을 하신 걸로 기억한다. 대구에는 자주 오시나.
▶나는 부산이 고향이지만 내 어머니 고향이 경상북도 성주다. 친척분들은 여전히 대구에 사셔서 대구는 친근하다. 마치 친척집에 놀러온 것 같은 기분이다. 대구문학관에서의 강연은 처음이다. 대구 독자들을 만날 수 있게 돼 기쁘다.
-최근 새로운 장편소설을 세상에 내보였다. 세 번째 장편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소개해달라.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고 2000년대 신자유주의가 도입된 후 2020년대에 이르기까지 100여 년의 역사가 관통하는 소설이다. 방금 열거한 사건 속에서 개개인이 마주치는 불행들이 있었고 그것은 그로부터 가장 미래에 있는 지금 세대들에게까지 와닿아있다고 생각한다. 나를 포함한 현 세대들이 그 역사적인 부채를 어떻게 해결해나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됐다. 말하자면 대온실을 수리하는 과정을 통해서 역사적 불행과 상처를 고쳐나가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역사소설은 처음이다. 이런 소설을 쓰게 된 이유는.
▶20대 중반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던 시절 동궐(창덕궁+창경궁)을 오가면서 책 작업을 해야 되는 때가 있었다. 어느 날 동궐에 갔다가 소나기가 들이치고 그치는 과정을 봤다. 그때 소나기라는 굉장히 큰 에너지가 왔다가 갑자기 그치면서 칸칸의 전각, 기와들이 말갛게 씻겨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당시 나는 아버지 사업 실패라는 가족 공동체의 불행 속에 있었다. 소나기라는 큰 에너지가 왔다가는 모습을 보며 '어쩌면 나를 집어삼키는 이 불행이라는 에너지가 지금 보고 있는 이 장면처럼 바뀔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을 미약하게 했다. 동궐 안에서도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세운 건물인 대온실이 있다. 그 건물 역시 자칫 잘못하면 허물어버릴 수도 있는 상황에서 살아남은 일종의 생존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소설에 담았다.
-소설가가 되기로 한 이유도 궁금하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셨는데 혼자 집에 있으면서 외로움을 없애기 위해 책을 읽었다. 또 부모님이 자주 다투시는 편이었다. 불화와 갈등 속에 놓이면 아이는 예민도가 올라간다. 책을 좋아하는 내가 이 긴장 상태를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이자 공간이 책이었던 거다.
그때는 책이 내게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이게 세상의 전부는 아니야', '싸우는 부모가 모든 어른의 표본은 아니야'라고. 소설이 뭔가 다른 길을 열어줬다고 생각했고 자연스럽게 글을 쓰는 일을 좋아하게 됐다.
-2009년 이후 작품들을 많이 냈다. 초기 소설부터 가장 최근 소설까지 단계별로 어떤 변화를 거친 것 같나.
▶젊은 시절 나는 오직 책만이 고통 속 나를 구해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부풀었던 아이였다. 소설가 한 명 나오면 그 집안 3대가 털린다는 말이 있는데, 나 역시 작가가 되고 나서 내가 겪은 일들을 모두 소설화시키는 일종의 한풀이를 시작한다. 나를 위한 글쓰기였다.
중반부터는 사회와의 부딪힘에 대해 생각했다. <경애의 마음>이라는 첫 번째 장편 소설은 인천의 한 화재 사건을 소재로 한다. 사회와 내가 강렬하게 부딪혔던 경험을 담았다.
최근에는 <대온실 수리 보고서>라는 작품이 말해주듯 '기억의 전수'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 기억을 쌓기만 해야 되는 청년 시기를 지나서 후세대에게 뭔가 얘기해 줄 수 있는 입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강연에서 소설이 창작되는 과정을 말하기도 했다. 자신만의 착상 방법이 뭔지 궁금하다.
▶착상을 완벽하게 해놓고 쓰지 않는다. 일단 제목을 정하고, 처음과 끝 장면을 정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 징검다리처럼 사용할 삽화 몇 개를 정한 다음에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내 소설은 뜬금없는 세상에서 찾은 뜬금없는 이미지로 시작된다. 살면서 마음 속에 이야기 방을 여러 개 만들어둔다. 인간 김금희로서의 인생을 살다가 어떤 방에 어울리는 장면을 발견하면 그 이야기 방안에 차곡차곡 넣어두는 식이다. 소설은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상황에서 작가만의 소설적인 사유로 포착하고 엮어내는 일과 같다고 생각한다. 모든 소설은 일상에서 시작하되 사유와 함께한다.
-인물을 설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점이 무엇인가.
▶4차원적이고 환영받지 못하는 인물들을 담는 걸 좋아한다. 옳지 못한 상황에 처한 인물이 자기 인생을 더 이상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 하는 최악의 선택들, 그런 선택을 하는 인물들을 그려내기를 좋아한다.
개인이 아니라 사회가 잘못된 것 같고 세상에 뒤쳐지는 것은 내가 못나서가 아니라 속도가 너무 빠른 탓이라는 생각이 들 때 그런 인물들을 떠올리게 되고 소설에 담게 되는 것 같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다.
▶90년대 들어서 개인의 감수성 아래 조직되는 소설이라는 시류가 형성됐고 그 속에서 여성 소설가들이 해낸 미학적인 성취가 대단히 인상적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한강 선생님의 소설은 시적 미학을 가진 채로 폭력에 맞서는, 문학과 세상의 오묘한 대결 같다. 소설에 미학이 존재하고 그 미학을 갱신하는 일도 작가 개개인의 몫이라는 걸 후배 작가에게 보여주셨다. 그 시기에 좋은 선배님들이 계셔서 후세대들이 계속 글을 쓸 수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마음의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다. 삶을 살면서 때로는 자기 삶을 지키고 방어해야 할 때도 있고, 반대로 막 질주해야 할 때도 있다. 그때 마음의 에너지를 써야 한다. 에너지를 잘 쓰기 위해서는 근육을 키워야 한다. 거기에는 소설 속에서 인물들을 만나는 것만큼 효과적인 게 없다.
-어떨 때는 실제하는 사람보다 소설 속 사람을 만날 때 얻는 게 더 많은 것 같다.
▶왜냐하면 작가가 여러 인간 군상 속에서 굉장히 깊게 숙고해 인물을 만들기 때문이다. 작가는 작가 자신이 가능한, 무의식 차원의 어떤 것까지 동원해서 작업을 한다.
-글을 쓰려는 사람들을 위해 한 마디 한다면.
▶한강 선생님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신 것의 의의 중 하나는 우리 작가들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는 데 있다. 나는 국문과를 나왔다. 내 아버지만 하더라도 국문과는 굶는 과라고 하셨다. 그런 점에서 현재 상황은 희망적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이란 장르는 끈기가 중요하다. 체력적으로도 많은 걸 요구하고 사유에 필요한 경험의 축적도 중요하다. 나는 30살이 돼서 등단을 했지만 개인적으로 최소 30대 중반은 넘어야 비로소 자기 사유가 어떤 형태를 갖추는 것 같다. 급히 생각하지 말라고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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