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르꼬르동블루 출신 청년 셰프 "지역과 함께 숨 쉬는 장소 만들고파"

서울과 호주 거친 청년, 구미 골목에서 다시 불판을 피우다
백정산 이름을 빌린 식당, 골목과 함께 살아가는 법 배우는 중
외식은 요리보다 관계…손님의 일상 속 기억이 되는 공간 꿈꿔

세계 3대 요리학교 르꼬르동블루 출신 청년 셰프 안태건씨. 조규덕기자
세계 3대 요리학교 르꼬르동블루 출신 청년 셰프 안태건씨. 조규덕기자

세계 3대 요리학교 출신 청년 셰프가 구미 송정맛길 골목에 뿌리를 내렸다. 대형 프랜차이즈와 차별화된 지역 밀착형 식당을 통해 요리로 진심을 전하겠다는 각오다.

구미 송정맛길 한복판에 자리한 '백산'은 대형 프랜차이즈나 트렌디한 외식 브랜드와는 거리가 멀다. 간판만 바뀌었을 뿐 공간은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 하지만 이곳을 다시 연 사람은 좀 특별하다. 세계 3대 요리학교로 꼽히는 호주 르꼬르동블루를 수료한 청년 셰프 안태건(32) 씨다.

그는 서울과 호주에서 요리를 배우고 외식업 현장을 경험한 뒤 지난 3월 구미로 내려왔다. 그는 "대도시가 아닌 곳에서도 요리로 진심을 전할 수 있는지 직접 실험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식당 이름은 송정동 인근 산 이름인 '백정산'에서 따왔다. "외지 브랜드가 아니라 지역에 뿌리내린 이름을 쓰고 싶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기존 식당을 양수해 운영을 시작한 그는 공간 구조는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메뉴 구성과 식재료 선택에 손을 봤다. 조리와 식자재 관리 대부분을 스스로 맡는다.

그는 "손질이 복잡한 생고기도 직접 다룬다. 음식은 결국 손이 많이 갈수록 정직해진다"고 말했다.

이곳의 대표 메뉴는 다양한 부위의 고기를 한 접시에 담은 모둠 구성이다. 가격은 4인 가족 기준으로 5만9천원이다. 안 씨는 "맛도 중요하지만 이 지역에서는 '가격 부담 없이 편하게 먹을 수 있는 한 끼'가 우선이라는 걸 몸으로 느꼈다"고 했다.

지역과의 연결을 중시하는 그는 단골 위주의 상권 흐름을 고려해 공간을 크게 바꾸지 않았다. 식당은 최대 25명 규모의 단체 예약이 가능해 구미시청, 공공기관, 기업 관계자들의 저녁 모임 장소로도 쓰인다. 그는 최근 구미시에서 진행하는 푸드페스티벌이나 야시장 행사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요리사로서 그는 다양한 문화권의 음식을 배웠지만 지금은 생고기와 불판을 사이에 둔 손님들과의 교감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안 씨는 "레스토랑의 포지션이 다를 뿐 결국 요리는 관계의 매개라고 생각한다"며 "구미에서 시작한 이 공간이 그 자체로 지역의 일부로 기억된다면 만족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식당이 단순히 음식을 파는 곳이 아니라 동네와 함께 숨 쉬는 공간이 되면 좋겠다. 누군가에겐 편하게 들러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장소로 또 누군가에겐 일상 속 기억이 쌓이는 장소가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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