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도훈 기자의 한 페이지] 전영범 보현산천문대 책임연구원 "천문대와 함께한 30년, 별 사진에 고스란히"

"어린 학생들, 별 사진 통해 우주에 대한 호기심 키웠으면"

전영범 책임연구원이 보현산천문대 연구동 도서실에서 지난 관측자료를 열람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전영범 책임연구원이 보현산천문대 연구동 도서실에서 지난 관측자료를 열람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경북 영천 보현산천문대가 올해로 운영 30년째를 맞았다. 이곳엔 천문대가 문을 연 1996년부터 그 세월을 함께한 천문학자가 있다. 전영범(64) 책임연구원이다.

그는 1992년 한국천문연구원(이하 천문연)에 입사해 보현산천문대 건설사업단으로 발령받은 이후 지금껏 30년 넘게 이곳에서만 근무했다. 그 사이 천문대장도 두 차례나 지냈다.

전 책임연구원은 '천체사진을 찍는 천문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천체사진가는 많지만 천체사진을 찍는 천문학자는 드물다. 한국천문연구원이 보유한 대다수 천체사진은 그가 찍은 사진이다. 1만원권 지폐 뒷면에 있는 보현산천문대 망원경 도안도 그의 사진이 원본이다.

전 책임연구원은 자신이 발견한 소행성에 한국의 역사를 대표하는 과학기술인들 이름을 붙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2000년부터 자신이 발견한 소행성 120여 개 중 10개에 한국 과학기술인 이름을 붙여왔다. 그 덕분에 고려 말 화약제조술을 개발한 최무선, 우리만의 독자적 역법을 구축한 조선 전기 천문학자 이순지, 측우기와 해시계를 발명한 장영실, 지동설을 주장한 홍대용, 동의보감을 편찬한 허준,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 근대 천문기상학을 개척한 우리나라 첫 이학박사 이원철 등의 소행성이 밤하늘에 빛나고 있다.

지난달 30일 보현산천문대에서 전 책임연구원을 만났다.

전영범 책임연구원이 보현산천문대 1.8m 반사망원경을 배경으로 촬영한 별 궤적 사진. 전영범 박사 제공
전영범 책임연구원이 보현산천문대 1.8m 반사망원경을 배경으로 촬영한 별 궤적 사진. 전영범 박사 제공

-보현산천문대는 어떤 곳인가.

▶경북 영천과 청송의 경계에 있는 보현산(1,124m) 정상에 있다. 천문연이 운용하는 천문대 중 하나로, 국내에서 가장 큰 1.8m 구경의 반사망원경을 보유하고 있다.

1996년 보현산천문대가 만들어질 당시만 하더라도 위상이 대단했다. 이전까지는 소백산천문대의 지름 61㎝ 반사망원경이 가장 첨단이었다. 이런 이유로 오랜 기간 이곳엔 전국 곳곳의 연구자들로 북적였다. 연구자들은 관측제안서 심사를 통과해야 이곳 망원경을 활용할 수 있는데, 경쟁률이 3대 1을 웃돌 정도였다. 지금은 천문연에서 칠레·남아프리카공화국·호주에 각각 설치한 지름 1.6m 광시야망원경인 외계행성탐색시스템(KMTnet) 등 세계 곳곳의 천문대를 이용할 수 있어 역할이 다소 줄었다.

현재 이곳엔 저 같은 연구원을 포함해 10명이 근무한다. 이곳에 근무하는 연구원들은 개인 연구도 하지만, 1.8m 망원경을 포함한 관측 장비의 유지 관리를 위한 운영 업무도 연구원의 중요한 임무다.

-별을 관측하고 연구하는 직업이다. 출퇴근 시간은 어떻게 되나.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천문학자들은 밤낮이 뒤바뀐 생활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많지만 실제로는 일반 회사원과 다르지 않다. 이곳에 근무하는 연구원들도 관측제안서 심사를 통과해야 망원경 사용 시간을 받을 수 있기에 밤새우는 기간은 1년에 1~2주 정도다. 이렇게 짧은 기간 관측해서 얻은 데이터로 연구를 하는데, 가끔씩 밤을 새우기도 하지만 정해진 규칙은 정시 출근 정시 퇴근이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연구를 하나.

▶밝기가 변하는 별인 변광성(變光星)을 연구한다. 밝기가 변하는 이유로는 별 자체의 크기가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경우가 있다. 서로 같이 돌고 있는 별이 상대별을 가릴 때 별의 밝기가 순간적으로 어두워질 수도 있다. 또 초신성처럼 별이 죽을 때 폭발을 하게 되는데 그때는 밝기가 급하게 변한다. 이런 모든 경우를 다 포함한 게 변광성이다.

그중에서도 맥동변광성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 맥동변광성은 별이 태어나서 자기 수명의 90% 이상을 아주 안정되게 살아가다가 마지막으로 죽어가는 단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별의 진화를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하다.

별의 밝기가 변하는 과정을 연구하면 별까지 거리를 알 수 있다. 거리를 알면 별의 고유한 밝기와 크기를 알 수 있고, 우주의 팽창이나 진화 과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결국 변광성 연구는 별이 어떻게 탄생해서 죽어가는가 하는 별의 본질과 그 진화를 연구하는 것이다.

전영범 책임연구원이 보현산천문대 연구동 도서실에서 천체사진 촬영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김도훈 기자
전영범 책임연구원이 보현산천문대 연구동 도서실에서 천체사진 촬영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김도훈 기자

-지금까지 120개의 소행성을 발견한 것으로 유명하다.

▶지금껏 관측을 하는 틈틈이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천체사진을 찍어왔다. 소행성 발견도 천체사진 촬영에서 비롯됐다. 2000년 12월 M1이라는 초신성 잔해의 사진을 컬러로 합성을 해보니 별이 움직인 흔적이 발견됐고 이게 소행성이었다. 그 별을 추적 관측하다 보니 그 주변에서 또 다른 소행성을 찾을 수 있었고, 이런 식으로 관측을 이어가다보니 지금까지 120개를 찾게 됐다.

국제천문연맹(IAU)은 발견자가 제출한 관측자료를 통해 궤도가 확인되면 소행성 최초 발견자로 인정해 이름을 붙일 권리를 준다. 처음 하나는 보현산천문대를 기념해 '보현산'이라고 이름 붙였고, 그 후엔 동료들과 논의를 통해 뛰어난 업적을 남긴 우리 역사 속 과학기술인 10명의 이름을 붙였다. 그들이 오래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요즘은 소행성이 워낙 많이 발견되다보니 과거처럼 이름에 큰 의미는 두지 않고 있다.

-천체사진을 찍는 천문학자는 흔하지 않다. 천체사진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있나.

▶특별한 계기는 없다. 다만 사진에 관심이 많아 대학 때 사진 동아리 활동을 했다는 점이 계기라면 계기다. 보현산천문대에서 근무를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 시절에 필요했던 천문 관측용 기술들을 배웠고, 천체사진 관측 연구를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이후 디지털카메라로 바뀌면서 천체사진 촬영을 더 많이 즐기게 된 것 같다. 필름으로 찍을 때는 별이 일주운동하는 사진조차 얻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지상의 풍경과 화려한 은하수의 모습이 함께 있는 사진도 쉽게 찍을 수 있다. 이젠 누가 더 새로운 상상을 하느냐가 아주 중요해진 것 같다. 결국 사진에 대한 관심과 경험이 천문학을 하며 자연스레 천체사진으로 이어진 게 아닌가 한다.

전영범 책임연구원이 한국천문연구원 엠블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전영범 책임연구원이 한국천문연구원 엠블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그동안 찍은 천체사진으로 꾸준히 전시도 하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천문학 강연도 한다. 어떤 의미인가.

▶천문학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아마추어가 많다는 것이다. 아마추어 물리학자는 생소해도 아마추어 천문학자는 쉽게 들어보지 않았나. 어찌 보면 천문학은 과학을 대중화하는데 아주 좋은 학문이 아닐까 한다. 그 역할을 하는데 가장 중심에 있는 게 아마추어 천문학자들의 천체사진이다.

어린 학생들이 천체사진을 접하며 우주에 대해 호기심을 쌓을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그 학생들 모두가 천문학을 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천문학 전공자를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많지 않으니 그렇게 해서도 안 되고. 다만 어린 시절 천체사진을 통해 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쌓고 그 호기심을 잃지 않는다면 어떤 아이들은 물리학으로, 또 다른 아이들은 공학 등으로 파생될 수 있다. 결국엔 우리나라 과학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사진전과 강연을 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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