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도훈 기자의 한 페이지] 한국화가 임무상 화백 "1957년부터 쓴 그림일기…화가 꿈 내려놓지 않았다"

그림에 대한 열정, 28년치 그림일기에 고스란히

임무상 화백이 고등학교 1학년 때인 1959년 일기장을 들고 문경 돌리네습지 탐방센터에 걸린 자신의 그림
임무상 화백이 고등학교 1학년 때인 1959년 일기장을 들고 문경 돌리네습지 탐방센터에 걸린 자신의 그림 '돌리네습지'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김도훈 기자

경북 문경시 산북면 우곡리 읍실마을. 그가 나고 자란 고향은 산으로 둘러싸인 깊은 산골 오지였다. 그는 일곱 살 무렵 화가의 꿈을 가졌다. 중학교를 마친 뒤 홀로 상경해 서라벌예술고등학교 야간반을 다니며 주경야독하며 화가의 꿈을 키웠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스무 살 무렵, 집안 살림을 책임졌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아버지와 동생들을 챙겨야 하는 가장이 됐다. 이후 아내를 만나고 결혼을 선택하면서 미술대학 진학에 대한 꿈은 내려놨지만 그림 그리는 것만은 놓지 않았다.

마흔세 살 때인 1985년, 작품에 대한 대중의 평가를 받아보고 싶어 출품한 중앙미술대전과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각각 입상하며 화단에 데뷔했다. 1991년 서울 롯데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연 이후 지금까지 30차례 개인전을 가졌다. 2012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한 미술전시회에 초대된 것을 시작으로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 해외 전시에도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한국화가 임무상(83) 화백 이야기다.

그가 남들보다 한참 늦은 나이에 작품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림일기'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때인 1957년부터 지금까지 69년째 일기를 쓰고 있다. 이 가운데 28년치 정도가 그림일기다.

그는 지난 17일 '문경 돌리네습지 탐방센터' 준공식에 초대돼 문경을 찾았다. 센터가 자리 잡은 곳은 그가 나고 자란 고향이다.

이날 탐방센터에서 만난 임무상 화백은 "자신을 내려놓고 생업에 뛰어들어야 했던 시기, 그림일기는 유일하게 그림에 대한 열정을 표출할 수 있는 도구였다"며 "그림일기가 있었기에 화가를 향한 꿈만은 내려놓지 않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임무상 화백이 중학생 때린 1957년 쓴 그림일기. 김도훈 기자
임무상 화백이 중학생 때린 1957년 쓴 그림일기. 김도훈 기자

-준공식에서 감사패를 받았다.

▶150호 크기의 '돌리네습지'란 작품을 문경시에 기증한데 따른 감사패다. 지난 2023년 열린 문경문화예술회관 30주년 기념 특별전에 전시했던 작품이다. 올해 초 문경시가 '람사르 습지도시' 국제 인증을 받은 것을 축하하고 탐방센터 준공을 환영하는 의미에서 기증했다. 탐방센터엔 다양한 자료가 전시되겠지만, 돌리네습지마을 출신 작가가 돌리네습지를 그린 작품이 함께 전시된다면 의미가 크겠다는 생각에서 기증을 결심했다.

-놀랍게도 지금까지 69년째 일기를 쓰고 있다.

▶일기를 처음 쓰기 시작한 건 중학교에 입학해서였다. 당시는 간단하게 메모 형식으로 적다 보니 무성의하기도 하고 건너뛰기가 일쑤였다.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인 1957년부터다. 일기에 그림을 그려 넣은 건 유년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보시다시피 이 척박한 오지 산촌에서는 스케치북은커녕 그림 그릴만한 노트 한 권을 사기도 힘들었다. 다행히 읍내에 있는 문경중학교에 진학하게 되면서 문방구에서 노트를 살 수 있었고 그렇게 그림일기를 쓰게 됐다. 이후엔 직접 흰 종이를 엮어 일기장을 만들어 쓰기도 하고 인쇄소 혹은 출판사에서 제작한 멋진 다이어리를 사용하기도 했다.

살면서 희로애락이 교차하고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잘 감내하며 일기 쓰는 일을 일상으로 끌어들였다. 제 기억으로는 1957년 이후부터는 단 한번 그르지 않고 꼬박꼬박 일기를 썼던 것 같다. 다만 아주 절박하고 매우 힘든 경우에 처했을 때는 부득이하게 간단히 기록했다.

임무상 화백이 중학교 2학년 때인 1957년 쓴 일기를 펼쳐 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김도훈 기자
임무상 화백이 중학교 2학년 때인 1957년 쓴 일기를 펼쳐 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김도훈 기자

-많은 이들이 그림일기는 초등학생의 전유물쯤으로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중학생·성인이 돼서도 그림일기를 썼다는 것도 이례적이다.

▶제 생애에서 그림일기를 쓴 때는 세 가지 시기로 구분된다. 맨 처음은 1957년부터 1968년까지 12년 동안 그림일기를 썼다. 1968년은 결혼을 한 뒤 아들이 태어난 해로, 이후부터는 아이들을 키우고 가정을 돌보느라 바쁘고 정신이 없어 글로만 썼다. 이후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고 생활도 안정을 찾아가게 되면서 다시 그림일기를 쓰게 됐는데, 그때가 1983년이었다.

이후 1995년 3월 16일까지 12년 조금 넘는 기간 그림일기 작업을 했다. 당시는 그동안 생계를 위해 해왔던 일을 정리하고 전업작가를 준비하던 시기였다. 이후부터는 계속 전업으로 그림을 그렸으니, 따로 그림일기를 쓸 필요가 없었다. 이후 지난 2023년부터 그림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간 작업을 밑거름이 됐던 그림일기를 마무리 짓는다는 의미에서 작품제작과 그림일기를 병행하고 있다.

돌이켜보자면 제게 그림일기는 그림에 대한 열정과 목마름을 표출할 수 있는 도구였던 셈이다. 화가 이중섭 선생이 종이 살 돈이 없어 담뱃갑 안에 포장재로 들어 있던 은종이에 그림을 그렸던 것처럼 말이다.

-마흔이 넘어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아내와 함께 운영하던 안경점 한 편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손님이셨던 한 목사님이 제 모습을 보고는 동아대 교수를 지낸 한국화가 김흥종 선생을 소개시켜 줬다. 1980년부터 1984년까지 선생께 그림을 배웠는데, 대학을 못 갔던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후 중앙미술대전과 대한민국미술대전에 연이어 입상하게 되면서 큰 힘을 얻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공부에 대한 갈증도 커져만 갔다. 결국 1989년엔 동국대 대학원의 연구 과정에 입학해 2년간 현대미술 등을 공부하면서 작품세계를 구축해갔다. 이런 토대 위에서 1991년 첫 개인전을 열었고 1996년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지난 2023년 영국 런던의 대표적인 미술관인 사치갤러리에서 열린 전시에 참여하는 등 해외 전시도 활발히 하고 있다.

▶2012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한 미술전시회에 한국 작가로 초대된 게 시작이었다. 이를 계기로 2013년과 2014년 2년 동안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5차례 초대전을 가질 수 있었다. 이후 꾸준히 해외 전시에도 참여하고 있다.

임무상 화백의 1968년 일기. 김도훈 기자
임무상 화백의 1968년 일기. 김도훈 기자

-전통회화에서 출발했지만 작품이 전통회화에 머물러 있지 않는 것 같다. 특히 굵은 곡선을 강조하는 표현방식이나 색채나 매우 현대적이다. 동양화와 서양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 같기도 하다.

▶오랜 세월 곡선의 미학을 탐구했다. 이를 통해 한민족의 한(恨)이나 정(情)을 표현하고자 했다. 우리 민족은 유연성을 특징으로 하는 곡선문화 속에서 살아왔다는 개인적인 생각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재료적인 면에서도 때때로 벼룻돌, 토분, 도자안료 등 천연염료들을 사용하는데, 이 또한 가장 한국적인 빛깔과 질감을 찾기 위한 시도다.

옛날 선대들이 해왔던 방식 그대로를 답습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창작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는 21세기를 살고 있고, 창작활동도 시대정신을 따라야 한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제 그림의 시작은 사실적인 수묵화나 수묵채색화였지만, 현재의 작품은 그런 시도를 통해 변해온 것이다.

-지금은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

▶기존 작업에서 조금 더 덜어내고 비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작품 외적으로는 아들의 도움을 받아 지금까지 그린 5천여점의 그림을 2년 동안 정리해 도록을 만들었고 지난해 말 전자책으로 발간했다. 지금은 전자책 발간을 목표로 그림일기를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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