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경계를 허무는 실험정신, 사카이의 시작
사카이는 아베 치토세 (Abe Chitose)라는 일본 디자이너가 1999년 설립한 패션 브랜드로 올해로 론칭 26주년 맞았다. 그녀는 1965년, 일본 나고야에 위치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재봉사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패션의 관심을 가졌으며, 우연히 TV 광고를 통해 알게 된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를 보면서 패션디자이너의 꿈을 키웠다.
그녀는 꼼데가르송(Comme des Garçons)의 창립자이자 디자이너 레이가와 쿠보 밑에서 니트웨어 및 패턴디자이너로 8년간 일하며 패션의 독창성과 실험적 정신을 배운후 해체주의와 실험적 구조에 대한 이해를 깊게 다지며 자신만의 조형 언어로 발전시켰다.
그녀의 인생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은 결혼이었다. 1996년, 꼼데가르송에서 동료로 함께했던 Kolor의 창립자 디자이너 준이치 아베와 결혼, 이듬해 출산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 그녀는 '아이를 키우며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 시작한 것이 '사카이'였다.

◆'사카이' 레이블에 담긴 정체성
'사카이'는 아베 치토세의 결혼 전 성(姓)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그녀 자신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것으로 패션에 대한 본질적 탐구를 개인의 삶으로부터 시작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이러한 태도는 사카이의 디자인 전반에 투영되어 있으며 단순한 옷이 아닌, 디자이너의 내면과 경험, 그리고 일상적이되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삶의 은유를 옷으로 보여주는 브랜드로 표현했다.
아베 치토세는 "나는 그냥 입고 싶었던 옷을 만들었을 뿐이다."라고 사카이를 설명할 때 말한다. 하지만 그 옷들은 하나의 옷에 서로 다른 이질적인 요소를 섞어낸 하이브리드 디자인으로 일상복이면서도 예술적인 구조미를 나타내고 전통과 실험이 동시에 존재하는 독특한 감각의 디자인으로 유행을 좇기보다 자신만의 디자인 세계를 구축하는 데 집중하며 브랜드를 성장시켰다.
이후 파리 패션위크 런웨이에 정식으로 데뷔하며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디자인과 실험적인 소재의 조합으로 전 세계 바이어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2006년 3월, 사카이젬(sacai gem)라인, 같은 해 9월, 사카이럭(sacai luck), 2008년 6월, 사카이맨즈(sacai men's) 라인을 출시, 이후 신발과 가방, 모자 등의 액세서리 라인과 다양한 명품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 라인으로 브랜드를 확장해 가고 있다.

◆경계를 넘나드는 사카이의 디자인 철학
▷하이브리드 구조
사카이를 정의하는 핵심 철학은 '하이브리드(Hybrid)'. 아베 치토세는 한 가지 아이템에 두 가지 이상의 세계를 담아내는 것을 즐긴다. 전통적인 테일러링에 니트 디테일을 접목하고, 캐주얼 스포츠웨어에 레이스 소재, 기모노와 밀리터리까지 완전히 다른 두 요소를 절묘하게 재조합하고 소재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재해석하는 방식이다.
▷해체의 미학
의복의 구조를 해체한 뒤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조합하는 방식은 사카이의 기본 문법이다. 하지만 그 해체는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기능성과 미적 균형을 동반한 조립이다. '기존의 틀을 깨되,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는 점에서 사카이는 전형적 해체주의를 나타낸다.

▷젠더의 유동성
사카이의 디자인은 남성과 여성의 전형적 코드에 얽매이지 않는다. 여성복에는 밀리터리·유틸리티 디테일이 들어가고, 남성복에는 스커트 구조, 드레이핑, 셔링이 표현된다. 이는 단순히 젠더리스라기보다, 성별 이분법 너머의 유연한 정체성을 제안하는 사카이만의 철학이다.

▷비대칭 미학
옷의 균형을 의도적으로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대칭을 거부한 비대칭적 커팅과 단정한 마감보다는 흐트러지고 불규칙적인 레이어링을 통해 긴장감과 유려함을 동시에 나타낸다.

◆혼성의 미학, 협업을 통한 세계관 확장
사카이의 성공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성공적인 협업 전략이다. 사카이의 협업은 단순한 브랜드 간의 마케팅 이벤트가 아닌 서로 다른 브랜드의 정체성을 혼성이라는 방식으로 해석하고,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 언어로 재탄생시키는 것이다.

▷리바이스(Levi's)
리바이스의 (Type I, II, III) 트러커 재킷의 디테일들을 해체하고 재조합하여 하나의 새로운 재킷으로 탄생시키는 등, 여러 요소를 결합한 독특한 디자인이 특징이며 사카이 특유의 볼륨감과 비대칭적인 형태를 더해, 옷 자체가 조형물 같은 '스컬프처적'인 실루엣이 특징이다. 이 협업은 리바이스의 헤리티지와 사카이의 혁신적인 디자인이 만나 데님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나이키(Nike)
2015년 첫 협업 이후, 이들의 파트너십은 단순한 협업을 넘어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켜 현대 스니커즈 문화의 흐름을 바꾼 현상이 되었다. 두 개의 다른 나이키 스니커즈 모델을 해체하고 재조합한 'LD와플'과 '베이퍼와플' 시리즈는 출시될 때마다 품절 대란을 일으켰다. 협업은 의류 컬렉션으로 이어지며 기능성에 집중하던 스포츠웨어가 어떻게 패션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 보여준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더 노스 페이스(The North Face)
아웃도어 브랜드 더 노스 페이스와의 만남은 기능성과 패션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흥미로움을 제시했다. 더 노스 페이스의 아이코닉한 마운틴 파카와 눕시 재킷은 사카이의 시그니처인 마원(MA-1) 재킷의 디테일과 더해져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변모했다. 방수, 방풍 등 고유의 기능성은 유지하면서도 사카이 특유의 우아하고 구조적인 실루엣이 더해져 도시적인 감성의 아우터웨어로 재탄생되었다. 이 협업은 아웃도어웨어가 극한의 환경뿐만 아니라 현대 도시인의 일상에서도 세련되게 기능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아페쎄(A.P.C.)
프렌치 미니멀리즘의 대명사 아페쎄와의 협업은 'SA.P.C.AI'라는 위트 있는 로고와 간결하고 실용적인 데님 재킷은 나일론 봄버 재킷과 결합되고, 티셔츠와 후디에는 옆면에 지퍼가 달려 내부의 다른 소재를 드러내며 아페쎄의 순수하고 정제된 스타일에 사카이의 복합적인 미학이 더해져, '입을 수 있는 아방가르드'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협업으로 기록되었다.
아베 치토세는 협업을 통해 사카이라는 브랜드의 경계를 끊임없이 확장하며, 스포츠웨어, 아웃도어, 미니멀리즘, 스트리트, 그리고 오뜨 꾸뛰르에 이르기까지 패션의 모든 스펙트럼을 자신의 언어로 흡수하고 재창조하며 이 협업은 패션계는 물론, 음악·예술·문화 전반에 걸쳐 깊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디지털 전환 시대, 사카이의 새로운 소통 방식
팬데믹 이후 가속화된 디지털 전환으로 사카이 역시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다양한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한 소통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온라인 패션쇼는 물론, 메타버스 공간에서의 협업 이벤트, NFT를 활용한 한정판 아이템 출시 등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Z세대와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틱톡,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 채널을 적극 활용해 브랜드의 스토리를 전달하고, 팬들과의 직접적인 교류를 확대하는 등 단순히 옷을 만드는 것을 넘어, 디지털 전환 시대에 발맞춰 새로운 소통 방식을 모색하는 사카이의 행보는 패션계에 신선한 자극될 것이며 사카이의 다음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박연미 디자이너 명장,디모먼트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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