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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수종의 이슈 진단] 왜 국가는 국가 이야기가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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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수종 리엔경제연구소·경제학 박사
곽수종 리엔경제연구소·경제학 박사

미 하버드 대 역사학 교수인 질 레포어(Jill Lepore)는 미국 역사학계가 국가(nation-state)라는 주제를 어떻게 외면하게 되었고, 그 결과는 어떻게 되는 지를 연구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1990년 이후 냉전의 종식은 미국 역사학자들이 더 이상 민족주의(nationalism)를 연구 주제로 다양한 논쟁과 논문을 작성하는 것을 포기하게 한 계기로 보았다.

당시 많은 역사학자들은 프란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처럼 (구) 소련의 붕괴 이후, 사실상 인류 문명사 속의 민족주의가 끝났다고 믿었다. 스탠포드 대학의 칼 데글러(Carl Degler) 역사학 교수 역시 1986년 미국 역사학회(American Historical Association, AHA) 연례 회의에서 논란이 된 다음과 같은 기조연설을 한 바 있다.

"만약 우리 역사학자들이 국가적으로 정의된 역사를 규명하는 데 게을리 한다면, 덜 비판적이고 덜 정보에 밝은 사람들이 우리를 대신해서 그 일을 맡게 될 것이다." 그의 말처럼 실상은 역사는 끝나지 않았고, 민족주의는 생각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존재해 오고 있다.

레포어 교수의 말을 빌어 굳이 하나의 큰 문제라고 한다면, 국가 정체성(national identity)이라는 철학 혹은 사상적 존재와 존립에 대한 정의가 역사적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 또는 폭군, 아니면 이상한 포퓰리즘적 선동가들의 손에 맡겨졌다는 것이다. 결국 그 결과는 심각한 정치·사회적 병리 현상을 초래하게 된다.

올바른 역사관과 민족관을 가진 참 지식인들이 국가와 민족 역사를 포기하고, 지식∙지성인들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 진정한 역사를 기록하고 설명하는 일을 멈추게 된다하더라도 민족주의는 죽거나 소멸되지 않는다. 대신 '자유주의(liberalism)'를 붕괴시킨다.

한 민족과 국가의 역사를 회복하는 것이 너무 늦었을지도 모르고, 역사학자가 변화를 만들기에 너무 늦었을지도 모지만,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새로운 국가주의를 추구하려는 본질은 어디에 있을까? 누구나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 국가를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역사를 쓸 수 있다. 국가부정은 자기 존재의 부정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역사를 부정하는 일은 그 국가에 사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고 요구하는 것에 역행하는 역사일 수밖에 없다는 가정이나 정의도 틀리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우리의 손으로 쓴 부분보다, 타자에 의해 쓰여진 것을 진품으로 여겨온 세월과 가짜 증거물들이 넘치는 것조차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 초∙중∙고를 지나 대학에서 교양학부 수업을 들어도 마찬가지다. 앞서 지적한 경고대로, 우리의 역사는 어쩌면 덜 비판적이고 덜 정보에 밝은 사람들에 의해 쓰여진 엉뚱한 역사를 사실과 진실인양 믿고 있는 지도 모른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이제 더 이상 한국경제의 발전과 성장은 없을 것이라는 자조섞인 넋두리도 당연시 되고 있다. 이미 국가가 쇠퇴하고 있다는 의미다. 세계는 이미 글로벌화(Globalization)이 되었으므로, 국가와 민족을 연구할 필요가 있을까? 없다는 것이다.

19세기 한 때 신선한 개념이었던 민족주의는 20세기 전반기에 괴물이 되었다. 그러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거의 죽은 상태라 여겼지만, 적어도 개발도상국이나 식민지로부터 갓 벗어난 국가들에게는 민족주의는 방황하는 유령과 같았을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그것을 더 이상 연구하지 않으면 민족주의가 더 빨리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 듯했다. 미래학자로 알려진 정치학자인 후쿠야마가 그랬다. 1989년 출간된 그의 저서 '역사의 종말(The End of History)'은 데글러 교수가 지적하고자 한 핵심을 잘 보여 준다.

후쿠야마는 냉전(Cold War) 종식 시점에 파시즘(Fascism)과 공산주의(Communism)가 사라졌다고 선언했었다. 자유주의(Liberalism)에 남은 가장 큰 위협이었던 민족주의는 서방에서 "무력화(defanged)"되었으며, 여전히 활발한 다른 지역의 민족주의는 사실 민족주의라 부를 수 없다고 했다.

세계 대부분의 민족주의 운동은 다른 집단이나 민족으로부터 독립하고자 하는 부정적 욕구 외에는 정치적 프로그램을 갖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따라서 더 이상 민족주의는 사회·경제적 조직을 위한 포괄적인 의제를 제공하지 못한다고 일갈해버렸다. 틀렸다.

후쿠야마는 최근 저서에서 이를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자신이 틀렸다는 증거가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예컨대,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폴란드의 야로슬라프 카친스키(Jaroslaw Kaczynski),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Viktor Orban),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gan), 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Rodrigo Duterte), 중국의 시진핑,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등은 분명히 20세기 후반에 완전히 소멸되었다고 주장했던, 예상치 못한 '민족주의'의 강력하고 뚜렷한 존재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19세기 중반부터 1960년대까지, 미국에게 있어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는 미국 역사의 가장 중요한 사상적 의제였다. 19세기 민족주의는 계몽주의(Enlightenment)의 산물이었던 듯하다. 그것은 개인과 집단 사이의 사회적 계약론에 기반을 두었다.

미국의 민족주의 이론가 한스 콘(Hans Kohn)은 개인의 자유주의적 이상을 국가와 사회적 집단에 위임하는 '민족적 자기결정권'의 개념을 진정한 '자유주의'의 가치로 정의하였다.

1849년 매사추세츠 주 상원의원 찰스 서머(Charles Sumner)는 '자유주의'를 토양 위에서 숨 쉬는 모든 인간의 위대한 헌장(Great Charter)이라고 했다. 따라서 그들의 서로 다른 조건들을 '반상(班常)의 차이'처럼 차별화하고, 이로 인해 국가 발전 참여에 한계를 규정할 아무런 제약조건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어디에서 태어났건, 부모가 누구든, 가난하든 부자이든, 약하든 강하든, 혈통과 인종의 다름 조차도 상관없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가 인간이며, 모든 동료 인간과 평등하고, 국가를 구성하는 국민 중 한 명으로, 국가는 공정한 부모처럼 모든 국민을 동일한 배려로 돌보아야 한다고 했다.

남북전쟁, 노예 해방, 재건, 분리 정책, 두 차례 세계대전, 그리고 전례 없는 이민을 경험하면서 미국의 민족주의 역사는 이렇게 쓰여지고 있었다. 국가란 역사의 공유를 통해 국가 구성원 간의 결속을 유지하는 데 근본적 목적이 있다. 따라서 국가란 부분적으로 강제된, 공유된 역사를 확인함으로써 공동의 미래를 위한 기초를 마련하는 집단적 합의체라고 정의하는 게 틀리지 않아 보인다.

21세기 후기 문명사적 전환기의 오늘날 국가의 역사학의 과제는 단순히 과거를 서술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와 미래의 시민이 공유할 수 있는 공통 가치와 목표를 제시하는 것이 아닐까?

법 앞의 평등, 시민권, 자유, 그리고 공동체 내의 책임은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국가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충분 조건이다. 만일 우리 모두가 국가적으로 정의된 역사를 규명하는 데 게을리 하고, 덜 비판적이고 덜 정보에 밝은 사람들이 우리를 대신해서 역사를 기록하게 한다면, 사회적 분열, 편견, 폭력으로 이어지는 허구는 되려 그들에게 '정의롭고 격정적인 투사'의 탈을 덮어 쓴 채, 특정 이해집단의 이익과 권력에 따라 사실을 왜곡하고, 배타적 민족주의를 조장하는 괴물의 지배를 용인하는 것이 아닐까?

중국은 지난 9월 3일 성대한 군사 퍼레이드는 중국을 1급 군사 강국으로 부상시켜 글로벌 이해관계를 보호하고, 미국과 전략적 우위를 경쟁하며, 궁극적으로는 대만(Taiwan)을 장악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는 자리로 꾸몄을 법 하다. 퍼레이드로 군사력을 과시하는 가운데, 워싱턴에 일종의 화합과 협력보다는 경고 메세지를 전달한 것이다.

아울러 중국 인민들에게는 국가적 자부심 고취는 물론이고, 공산당은 인민의 보호자로서의 이미지 강화와 함께, 시진핑 주석이 집중 투자한 군사력을 과시함으로써 세계 무대에서 미국 헤게모니의 대안으로 중국 자신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2008년 북경 올림픽의 개막식에서 보여준 중국 문명의 흐름과 대조되는 장면이 겹쳐 지나간다. 그리고 데글러 교수의 경고는 미∙중 모두에게 유효한 듯 보인다. "국가사를 소홀히 하는 것은 단순히 학문적 문제를 넘어서, 자유주의, 포용, 민주적 가치를 위협하는 문제다. 역사를 기록하는 일은 단순히 과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형성하는 정치적, 도덕적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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