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있는 신분 상승
어릴 적 마당에 묶어 놓고 키우던 개들은 모두 '똥개'라고 불렸다. 하루종일 묶여서 왔다갔다 하다가 밥 때가 되어 주인이 먹다 남은 음식들을 찌그러진 냄비에 부어주면 허겁지겁 먹고 했다. 변변한 개 집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비가 오면 처마밑에서 피하고 한 겨울에는 박스를 거처삼아 추위를 피하곤 했다.
가끔 재수가 없으면 쥐약이 든 고구마를 먹고 비명횡사를 하기도하고 더러는 복날을 넘기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현대의 개와 고양이들은 드라마틱한 신분 상승의 혜택을 보고 있는데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최근 결혼을 피하거나 결혼을 하더라도 자녀를 갖지 않는 커플들이 많아졌다. 게다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화 되면서 재택 근무가 가능해지고 온라인 커뮤니티, OTT 콘텐츠 서비스, 먹거리 배달 서비스가 새로운 일상이 되어 버렸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 인간 관계가 줄어들고 그에 따른 고독감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이어지며 우울증과 무기력증을 호소하게 된다. 이럴 때 정서적으로 위로받을 수 있는 존재가 바로 개와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이다.
힘든 일이 생겨서 소파에 드러누워 있으면 어느새 곁으로 다가와 체온을 나눠주는 개와 고양이들. 그 순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동을 받게 되고 진심으로 반려동물을 사랑하게 되는데 이런 상황이 '똥개'에서 '반려견'이라는 신분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인간화 Humanization
인간화(Humanization)는 비인간적인 요소나 대상을 인간적으로 만들거나 인간처럼 보이게 하는 것을 뜻한다. 문학이나 예술, 팬덤 문화 등에서 나타나는 캐릭터에 인간의 특성이나 감정을 부여한다거나 동물이나 신화 속 존재를 인간으로 그리는 창작 활동도 여기에 해당된다. 우리가 여기에서 말하는 Humanization이라는 개념은 개와 고양이를 마치 사람처럼 대한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는데 호칭부터 달라졌다.
키우던 '똥개'가 '애완견'이라고 불리게 됐고 요즘은 이런 표현도 불편해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반려동물'이라는 호칭을 쓰고 있다. 그 배경에는 개와 고양이의 법적인 신분보장이 이뤄진 측면도 있다. 2021년 10월 '개와 고양이는 물건이 아니다.'라는 내용을 담은 민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였고 국회에서 최종 논의 중이다.

이는 개와 고양이를 키우지 않는 사람들도 반려동물을 소유하는 물건이 아니라 보호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의미하는데 그럴 만도 한 것이 2024년 국내 반려동물 가구 비율은 28%나 된다. 이것은 18세 이하 자녀를 돌보는 가구 비율(23.3%)보다 더 많다.
최근에는 개와 고양이를 사람처럼 대하는 경우도 일상화됐다.반려를 넘어 가족의 개념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낯선 누군가에게 자신의 가족을 소개할 때, 엄마, 아빠, 나 그리고 '막내' 를 자연스럽게 얘기한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 막내가 사람이 아니라 개나 고양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대화는 한결 화기애애해진다.
누구나 반려동물을 떠올리면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개와 고양이를 '아기'처럼 대하고, 이쁜 옷을 입히며, 애견 유치원을 보내는 것이 보편화되고 있다. 또 동물 병원에서 건강 검진을 받으며, 반려동물 의료 보험을 가입한다. 이들에게는 개와 고양이가 이미 가족이나 연인 이상의 사랑스러운 존재로 마음깊이 자리하고 있다고 이해해야 한다.

◆반려 동물 시장 규모
반려동물 문화가 확산되는 속도에 비례해 그 시장 규모도 커지고 있다. 2024년 통계청 추정 12조 원에 달하며 매년 8% 정도 고성장이 이뤄지고 있다. 반려동물 시장을 보다 자세히 이해하려면 국내 키즈산업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내 키즈산업은 14세 이하 유아, 청소년을 대상으로하는 산업을 의미하며 2024년 통계청 추정 60조 원 정도다.
국내 키즈 인구(14세 이하 아동 인구)는 570만여 명 정도인데 안타깝게도 출산율 저하로 인해 키즈 인구는 매년 감소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국내 키즈 인구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산업 규모는 성장하고 있는데 소비의 프리미엄화가 원인이다. 자녀를 위한 부모들의 애착과 책임감이 더 크게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그럼 반려동물 산업과 비교를 해보자. 국내 개와 고양이 보유 두수는 780만 마리로(개 500만, 고양이 280만) 14세 이하 유소년 인구 570만 명을 훨씬 넘는 숫자다. 아직은 키즈 산업시장 규모(60조) 대비 반려동물 산업시장 규모(12조)는 20% 정도에 불과하지만 반려인의 증가와 개와 고양이의 법적 지위 상승, 반려 동물의 인간화 추세는 반려동물 시장에서의 프리미엄 트랜드와 맞물려 시장 규모는 급성장 할 것으로 추정된다.

◆늘어나는 동물 진료비
2024년 국내 반려동물 의료시장 규모는 2.5조 원 규모로 추산한다. 이 중 반려동물 병원 시장 규모는 약2조 정도로 추산되며 매년 10% 고성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에 2024년 전국 5,000여 개소의 동물병원 수는 크게 늘지 않았다. 국내 반려동물 의료시장의 급성장 배경에는 진료 영역의 확장에 기인한다. 과거에 비해 더 다양한 혈액검사, 심장초음파 검사, 만성 신부전환자 관리 등 다양한 진료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암에 걸리더라도 수술하고 항암 치료를 받으며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려 한다. 게다가 CT. MRI 등의 첨단 의료 장비들이 보편화되고 있는데 더 나은 의료 환경에서 '아이'를 치료하겠다는 보호자의 바람이 동물병원 프리미엄화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진료비 부담은 점점 커지게 되는데 여기에서 보호자의 어려움이 발생하게 된다. 이럴 때 반려동물 의료 보험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의료 실손보험이라 생각하면 되는데 월 5만원 정도면 대부분의 보험가입이 가능하다. 이것은 동물병원 진료비의 10~20% 정도를 보호자가 자부담하는 방식인데 입양 즉시 건강할 때 부터 가입해두는 것이 현명하다.

◆미래 국가 주력 산업이 될 반려 동물 산업
지난 9월 12일 농축식품부, 경북도, 포항시가 국가 미래 전략 산업을 육성하고자 국제 그린바이오 산업 국제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필자가 기조강연을 맡았는데 이번 컨퍼런스의 주제는 <반려동물 의료산업의 전망과 국제적 경쟁력 강화>였다. 이 행사에서는 다양한 스타트 기업들이 반려 동물 의약품 개발, 반려 동물 영양제 개발 등의 혁신 사례들을 발표했다.
그 중 '그라스메디' 최진식 대표의 발표가 인상적이었다. 국내 시장의 한계를 인식하고 세계 시장을 겨냥하여 과감히 도전하였다. 그 결과 일부 제품들은 이미 아마존 온라인 마켓에서 베스트셀러 제품으로 판매되고 있었는데 특히 업계 최로로 개발한 고양이 턱 피지 제거제는 미국 일본 등에 수출되어 누적 4억 원의 수출 실적을 달성했다.
K-POP, K-뷰티 등의 다양한 산업들이 어떻게 세계 시장을 공략하고 석권하였는지를 면밀히 연구한 후 K-PET 제품들도 충분히 세계 시장에서 인정 받을 수 있음을 확신했다고 한다.

사람도 먹고 살기 힘든데 개 고양이를 위해 돈을 낭비한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게임을 좋아하는 덕후들은 고가의 그래픽 카드로 업그레이드 하는데 주저함이 없으며 BTS의 팬인 아미들은 CD와 굿즈는 물론 해외의 공연장까지도 찾아다니며 아낌없이 지갑을 연다. 언제나 그렇듯이 소비는 합리적이라기 보다 다분히 가치지향적인 경향이 크다.
반려동물 산업도 마찬가지다. 매년 8% 고성장하는 산업군의 잠재력을 볼 때 국가의 체계적인 정책 지원이 더해진다면 국내 반려동물 스타트 기업들이 개발한 K-PEP 제품들이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상황이 곧 도래할 것이다.

박순석 수의사
SBS TV 동물농장 자문수의사
경북대학교 수의과대학 겸임교수
한국수의임상수의사회 부회장
박순석동물메디컬센터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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