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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 기자의 아웃도어 라이프] "산으로 퇴근,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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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박' 명소…상주 국사봉 활공장

지난달 21일 오전 경북 상주 국사봉 정상에서 한 백패커가 운해를 카메라에 담고 있다. 이곳은 사방이 트여 있어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백패커들 사이에서 명소로 꼽힌다. 김도훈 기자
지난달 21일 오전 경북 상주 국사봉 정상에서 한 백패커가 운해를 카메라에 담고 있다. 이곳은 사방이 트여 있어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백패커들 사이에서 명소로 꼽힌다. 김도훈 기자

여느 해보다 긴 추석연휴입니다. 아웃도어 활동 애호가라면 놓치기 힘든 기회죠. 가족 친지와의 만남을 뒤로하고 멀리 떠나기 어렵다고요? 짧게 1박 2일로 다녀올 수 있는 경치 좋은 백패킹 명소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일출·일몰·운해 한꺼번에 즐기는 '뷰 맛집'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는 이들 사이에선 '퇴근박'이란 용어가 있다. 퇴근 후 집으로 귀가하지 않고 야외 경치 좋은 곳으로 떠나 1박을 하고 돌아오는 활동을 말한다. 단, 조건이 있다. 집과의 거리가 너무 멀어 부담스럽지 않아야 하고, 일몰이나 일출, 야경 등 주중 일상의 피로나 스트레스를 날려줄 만큼 경치가 빼어난 곳이어야 한다. 만약 '차박'을 하지 않고 텐트를 활용할 계획이라면, 퇴근 후 출발해야 한다는 점에서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기에 주차장에서 거리가 멀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중요한 고려 대상이다.

지난 20일 오전 가끔씩 백패킹을 함께 다니는 후배에게서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다.

'선배 오늘 오후 상주 국사봉으로 퇴근박 가려는데 함께 가실는지요.' 이날은 토요일이지만 이 후배는 근무 날이었고, 오후 반차를 낼 예정이니 퇴근박을 함께 하자는 얘기였다.

경북 상주 국사봉은 백패커들 사이에서 유명한 퇴근박 명소다. 산 정상(해발 385m)이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으로 활용되다 보니 정상 근처까지 임도가 나있다. 주차장에서 시작되는 나무계단을 3분 정도 오르면 바로 정상이다.

정상은 사방이 트여 있어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만나볼 수 있다. 동쪽으로 낙동강이 흐르고 있어 운해를 만날 확률이 높아 백패커들 사이에선 '운해 맛집'으로 통한다.

평소 가보고 싶었던 곳이기에 주저 없이 가겠다는 답장을 남기고 배낭을 꾸렸다. 먹을 음식은 각자 알아서 준비하기로 했다. 단골 식당에 전화를 걸어 생고기를 주문했다. 그리곤 생고기를 담을 보냉백에 쓸 얼음을 얼렸다.

주문한 음식을 찾은 뒤 같이 가기로 한 후배와 후배의 친구를 만나 오후 3시 50분쯤 팔공산IC에 들어섰다. 임도 시작지점인 사벌국면 묵상리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5시 20분. 이곳에서 좁은 콘크리트 임도를 따라 10분 정도 오르니 주차장이다. 대략 1시간 40분쯤 걸렸다.

상주 국사봉 정상에서 맞은 일몰. 김도훈 기자
상주 국사봉 정상에서 맞은 일몰. 김도훈 기자

주차장에서 정상으로 이어진 나무계단을 2~3분쯤 오르니 정상이다. 듣던 대로 조망이 압권이다. 동쪽으로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고 그 너머 안동 쪽 학가산과 이름 모를 산 능선이 펼쳐진다. 북동쪽으로는 속리산과 대야산, 월악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손에 닿을 듯하다.

정상은 텐트 10동 정도를 너무 답답하지 않게 설치할 수 있는 규모다. 이곳엔 먼저 도착한 백패커들이 설치한 텐트 5동이 자리 잡고 있다. 적당한 자리를 찾아 텐트 2동을 설치했다.

오후 6시가 조금 지나자 해질녘 태양빛이 국사봉 정상을 황금빛으로 물들였고 첩첩이 쌓인 서쪽 산 능선을 더욱 신비롭게 만들었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태양이 서쪽 산 능선으로 모습을 감출 즈음 후배가 한 마디 한다.

"먹는 게 남는 거죠. 하하."

그의 말과 함께 퇴근박의 메인이벤트가 시작됐다. 각자 메고 온 배낭에서 다양한 음식이 쏟아져 나온다. 생고기부터 진공 포장한 수육, 소시지, 견과류, 과일 등 진수성찬이다. 공통점을 찾자면 가스버너를 사용해 조리를 해먹는 방식이 아닌, 3명 모두 불을 사용하지 않는 비화식 음식을 챙겨왔다는 점이다. 수육과 소시지는 데워 먹을 수 있도록 발열팩을 준비해왔다며 후배가 한 마디 툭 던진다. "삼겹살 구워 먹는 맛이 그립긴 하지만 자연을 보호해야죠."

시원한 산바람과 함께 음식을 즐기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하늘엔 구름 사이로 별이 총총 떴다. 낙동강 너머론 예천군 풍양면 쪽 마을 불빛이 별빛처럼 반짝였다.

후배의 친구가 한 마디 거든다. "찰리 채플린의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란 명언을 빌리자면 '가까이서 보면 일상, 멀리서 보면 별'이 되는 풍경이네요. 퇴근하고 집 대신 산으로 오길 정말 잘한 것 같습니다."

지난달 20일 오후 경북 상주 국사봉 정상에서 백패커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고 있다. 김도훈 기자
지난달 20일 오후 경북 상주 국사봉 정상에서 백패커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고 있다. 김도훈 기자

◆산행이 필요하다면…군위 아미산

산행의 기쁨이 없어 국사봉 퇴근박을 망설이는 이들에겐 대구 군위 아미산을 추천한다. 아미산은 산행 시작 10분이면, 과장을 조금 보태 설악산 공룡능선 한가운데 선 것 같은 경치가 드러난다. 그래서 별명도 '미니 설악산', '작은 공룡능선'이다.

산 전체를 보면 육산이지만 산 입구부터 1㎞에 걸쳐 이어진 바위 연봉은 공룡능선을 보는 듯하다.

아미산 주차장에서 산행을 시작해 암릉구간과 큰작사골 삼거리를 지나 무시봉(667m)에 올랐다가 큰작사골 삼거리~전망대~대곡지로 되돌아 내려오는 5.5㎞ 코스가 일반적이다. 무시봉에서 1㎞를 더 가면 정상에 닿지만 조망이 되지않는 숲 속이라 생략하는 이들이 많다.

긴 코스를 원할 경우 방가산을 거쳐 장곡자연휴양림으로 하산하는 10㎞ 코스가 있다. 방가산 정상 역시 열린 경치는 없다. 초반 암릉구간은 계단과 난간이 잘 되어 있어 어렵지 않다. 산행 시작 후 1㎞에 암릉미가 집약돼 있다.

초입에 만나는 송곳바위는 아미산의 수문장 같은 곳이다. 특히, 발아래 펼쳐지는 풍광은 가히 압권이다. 2봉을 지나 만나는 앵기랑바위는 위태로운 모습으로 우뚝 서 등산객들을 압도한다. 보는 각에 따라 코끼리바위, 왕암바위로도 불리지만 정식 이름은 아기 동자승의 모습을 닮았다 해서 앵기랑바위다. 6·25전쟁 때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하산 길 전망대에 서면 송곳바위에서 앵기랑바위로 이어지는 긴 암릉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미산에 '미니 설악산'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퇴근박을 즐겨하는 백패커들은 일반적인 산행 순서가 아닌 전망대 쪽으로 올라 전망대에서 1박을 한 뒤 다음날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해 암릉구간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한다. 주차장에서 전망대까지는 30~40분정도 걸린다. 운이 좋다면 암릉에 걸친 운해도 만날 수 있다.

대구 군위 아미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암릉 구간. 김도훈 기자
대구 군위 아미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암릉 구간. 김도훈 기자
경남 합천 대암산 정상에서 바라본 합천 초계·적중 분지. 김도훈 기자
경남 합천 대암산 정상에서 바라본 합천 초계·적중 분지. 김도훈 기자

◆운석충돌로 만들어진 마을 조망…합천 대암산

경남 합천군 초계면·적중면 일대는 높이 200~600m 봉우리에 둘러싸여 왕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합천 초계·적중 분지'다. 이곳은 동서로 약 8㎞, 남북으로 약 5㎞ 규모의 '운석충돌구'다. 학계에 따르면 이곳은 5만 년 전 직경 최소 200m에 달하는 운석이 떨어졌고 그 여파로 땅이 움푹 파여 분지가 됐다.

이곳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대암산(591m) 정상이다. 대암산 정상에는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있어 승용차로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네비게이션에 '대암산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을 치고 가면 된다. 초계면사무소 기준 차로 20분 정도가 걸린다. 구불구불 임도를 따라 가다보면 서서히 고도가 높아지고 나무 사이로 분지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정상 근처에는 넓은 주차장도 마련돼 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임도를 따라 10~15분 정도 오르면 정상에 다다를 수 있다.

정상에 서면 완벽한 타원형 분지 지형이 더 확실하게 느껴진다. 최고봉인 천황산(687m), 미타산(662m), 봉산(564m), 태백산(578m) 그리고 초계면쪽 야트막한 단봉산(201m) 능선이 굽이굽이 이어져 동그랗게 감싸 안은 품에 집과 논밭이 들어앉은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수 년 전부터 '일출과 별 맛집'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알음알음 아마추어 천체사진가나 백패커 등이 찾고 있다.

지난달 21일 오전 경북 상주 국사봉 정상에서 백패커들이 일출을 기다리고 있다. 이곳은 사방이 트여 있어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백패커들 사이에서 명소로 꼽힌다. 김도훈 기자
지난달 21일 오전 경북 상주 국사봉 정상에서 백패커들이 일출을 기다리고 있다. 이곳은 사방이 트여 있어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백패커들 사이에서 명소로 꼽힌다. 김도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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