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으리 살으리랏다 청산에 살으리랏다 멀위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으리랏다 얄리 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고려가요 <청산별곡>이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푸르른 자연을 의미하는 '청산'(靑山)에 살고 싶다는 바람은 고려시대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치솟는 집값과 물가에 시달리면서도 자가(自家) 아파트 소유 서울시민들에게는 청산이 명절에 한 번 가는 고향집 정도겠지만 '인구소멸위험'지역으로 낙인찍힌 지역에 사는 지방민에게는 대대손손 살아 온 삶의 터전이다. '산 좋고 물 좋고 사람 좋고 인심 좋다'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는 더 이상 지방에 사는 이들의 자부심을 충족시킬 순 없다.
그래도 우리는 오늘도 서울시민들은 절대로 가질 수 없고 누릴 수 없는 늘 푸른 '청산'에 살고 있다.
봄이면 진달래와 더불어 샛노란 산수유 꽃들이 만발하는 사곡에서부터 여름이면 얼음처럼 차고 시원한 냉기가 솟구치는 빙계(氷溪)계곡을 찾아 나서고 양반동네로 이름난 사촌마을 가로숲과 산운마을을 거쳐 천년고찰 '고운사'와 조문국사적지를 찾아 역사의 향기를 음미할 수 있는 의성을 어디 삭막한 아파트 숲에서 숨 쉴 공간 조차 찾기 힘든 서울과 감히 비교할 수는 없다.
◆인구소멸위기 의성의 도전
비록 '20~39세의 가임 여성 인구'를 '65세 이상 고령 인구'로 나눈 수치인 '인구소멸위험지수'로 따져 인구소멸이 우려되는 위기지역으로 소문난 지 꽤나 됐지만 의성은 이제 청년이 돌아와서 머무르는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출생률이 저조해서 '산부인과' 마저 없던 불모의 땅에 외래산부인과와 소아과가 개원했고 전국의 20~30대 청년들이 <이웃사촌시범마을>사업(2018~2022)에 주목, '시골에 가서 한 번 살아보자'는 용기를 내어 대거 유입된 인구소멸위험지역이었다. 청년 정주 인프라는 걸음마 단계지만 의성의 인구소멸위기에 대한 대응은 사라질 운명에 처한 우리들의 고향에 화두를 던졌다.
의성의 오랜 역사를 대변하는 금성 '조문국사적지'도 황금빛 가을이 절정이다.
경주의 천년신라의 고분군처럼 의성의 영광도 조문국 사적지로 증명된다. 사적지와 인접한 금성면 구련리 논에서는 마늘파종이 한창이다. 의성특산 6쪽 한지마늘 파종 막바지인 요즘 금성과 사곡 등 마늘주산지마다 흔히 보는 풍경이다. 의성한지마늘은 지금 심어서 내년 6월 수확한다. 남도 등 다른 지역보다 유난히 추운 의성의 겨울 한파를 이겨낸 결실이 의성마늘이다.가을햇살에 그을릴까 모자를 눌러 쓴 일꾼들은 대부분 70대 이상 어르신들이었다. 젊은 일꾼들은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었다. 전국 최고수준의 '초고령사회'로 이름난 의성의 현실이다.
1965년 의성 인구는 21만45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박정희 시대 경제개발계획이 본격화되고 산업화, 도시화가 급속도로 추진되면서 농촌인구는 급속하게 인근의 구미나 대구, 서울 등 대도시로 유출됐다. 노동력이 있는 청년층의 대거 도시이동이 의성같은 농촌을 공동화시킨 것이다. 2010년대에 들어서 6만여 명 수준을 유지하던 의성인구는 계속 감소, 47,933명(2025년 10월)까지 떨어졌다. 인구감소에 대한 정부는 물론 의성군의 대응이 무력화됐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같은 시기 인근의 안동의 경우 20여만 명에서 2025년 현재 16만여 명으로 의성에 비해서는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경북도청이 안동으로 이전했고 국립대학교 등 교육기능도 활발, 경북 북부지역 교육행정기능이 이곳에 집중돼있기 때문일 것이다.
구미의 경우 구미국가산업단지 건설 이전인 1960년대 중반 구미를 포함한 선산군 전체 인구가 6만여 명에 불과했으나 2,3,4단지 등 국가산업단지가 확장되면서 43만여 명에 이르렀다. 우리의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가 의성과 같은 전형적인 농촌지역을 피폐·황폐화시키고 도시만 살렸다.
다시 의성에 예전처럼 20여만 명에 이르는 인구가 북적대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의성은 인구소멸에 정주여건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청년이 돌아와 머무르기 좋은 도시로 만들기 위한 인프라 확충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마련했고, 농촌형 스마트팜 산업 등 미래형 청년농업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주력했다. 늘어나는 노령인구에 대한 건강과 복지혜택을 대폭 개선시키는 정책도 추진했다. 복지와 의료·건강· 돌봄에 세심한 배려정책을 마련하는 동시에 신공항 건설에 따른 신공항배후단지 조성 및 미래첨단산업인 안티드론산업을 유치했고 세포배양산업도 주도하기 시작했다.
이제 의성을 과거의 잣대로 케케묵은 두메산골,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의 농촌으로 보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하는 '안계'와 '금성'같은 생소한 시골에 작은 도서관과 영화관은 물론 비정기적으로 전시회를 여는 '작은 미술관'까지 생기면서 대도시에서만 누리던 문화생활이 일상화됐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에서만 개봉하던 헐리웃 블록버스터영화를 한국에서 동시개봉하게 되면서 우리나라의 달라진 국제적 위상과 국격을 실감했듯이 이젠 대도시가 아닌 전원마을에 살면서 호사(?)를 누리게 될 정도로 의성의 '정주'(定住)여건과 삶의 질이 크게 향상됐다.
◆의성의 청년 프로젝트 실험
의성이 시도한 청년정책은 아직도 도전하고 있는 실험이다. 의성은 2018넌 부터 2022년까지 경상북도와 함께 <이웃사촌시범마을>사업을 진행한 바 있다. 청년들의 일자리와 주거 및 보육과 문화·교육 등 정주여건 개선을 목표로 한 인구소멸 지방소멸대책이다. 의성에서 창업하는 청년들에게 창업지원비를 지원하고 주거 및 교육혜택을 주고 이를 총괄 지원하는 창업지원센터 및 창업 공간 지원, 청년 복합문화센터 등 청년기반의 인프라 12개소 구축을 통해 인프라완성했다.
특히 스마트팜 등 창농(創農) 지원 중심의 미래형 청년농업인 생태계 구축에 주력, 청년친화도시로 발돋움하는 첫걸음을 떼는 데는 성공했다. 물론 아직까지 걸음마 단계다. 청년층 유입이 목표한 만큼 충족되지 않았고 의성에 돌아온 청년층의 이탈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성 관문 '문소루'에 올라 의성읍내를 내려다보니 느낌이 달랐다.
한때 의성경제를 떠받들던 성광성냥공장은 재생사업에 들어가 옛 향수를 불러오고 공장 앞 의성향교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의성을 역사의 무대로 올린 조문국사적지의 고분들은 오늘도 아직 전하지 못한 이야기를 속삭이고 있는 듯 했다. 경덕왕릉을 비롯한 고분들 사이로 느릿느릿 걷다보면 노을이 지는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귓가를 스치는 바람에 조문국 이야기가 하나둘씩 들려왔다. 김알지의 5대 손이자 '미추이사금'의 아버지 구도가 조문국 공주가 결혼을 하면서 조문국 왕실이 신라 왕실에 편입되었다. 조문국 왕실이 이후 대대로 신라왕실과 혼인관계를 맺었다는 야사와 전설이상으로 귀에 들어왔다. 그렇다면 중국의 사라진 대국 서하(西夏)제국처럼 여성천하 '여인국'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들의 고향, 인구소멸위기에 처한 의성의 도생책략(圖生策略)이 눈물겹다. 우리들의 '청산', 우리들의 고향, 의성이 사라져서는 안 된다.
서명수 객원논설위원 didero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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