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을 통틀어 우리나라 최고 난도(難度)의 '킬러 문항'은 단연 '천도책(天道策)'이다. 명종 13년(1558)에 출제된 '천도책'은 모두 몇 문항인지 알기 힘들 정도로 복잡하지만, 28개 내외의 문항, 5개의 카테고리 정도로 분류할 수 있다. 질문은 천문→기상→물성(物性)→철학→정치의 순서로 전개된다. 물론 그 중간에 역사와 문학적 질문도 개입된다.
첫째는 천문 현상으로, 해와 달의 운행 원리, 일식과 월식의 발생 원인, 오성(五星)과 뭇별의 차이점, 상서로운 별의 출현 원인, 불길한 별의 출현 원인, 별의 발생 기원에 관한 문항이다. 둘째는 기상 현상으로, 바람의 발생과 이동, 바람의 강도(强度) 원인, 구름의 발생, 구름의 색과 감응(感應), 구름의 성상(性狀), 안개의 발생, 안개의 색과 징조, 누런 안개의 발생 원인에 관한 문항이다. 셋째는 재해(災害)를 일으키거나 불의(不意)에 발생하는 기상 현상으로, 우레와 벼락의 발생, 낙뢰 피해의 이치, 서리와 이슬의 차이, 기상 이변, 가뭄, 비의 공정성(태평성대에는 비도 공평히 왔나?), 특이 상황의 강우(군대를 일으키거나 옥사<獄事>를 판결할 때 비가 오는 이유)에 관한 문항이다. 넷째는 눈과 우박의 결정(結晶) 구조와 재해로, 눈의 결정(꽃잎은 5개인데, 눈꽃이 유독 6개인 이유), 눈 관련 고사, 우박의 정체, 우박의 피해 사례에 관한 문항이다.
다섯째는 철학 및 정치로, 만물의 기원(천지가 만물에 각각 기운을 준 것인가, 하나의 기운이 흩어져 만들어진 것인가?), 재해의 원인(재해는 하늘의 잘못된 기운 탓인가, 인간의 잘못된 정치 탓인가?), 재해 방지 및 해결책에 관한 문항이며, 이것은 '천도책'의 핵심 결론에 해당한다.
이처럼 명종은 이 한 번의 시험 문제에서 천문학, 기상학, 역사, 기하학, 성리학적 우주론, 철학, 정치학을 망라한 질문을 하였다. 놀랍게도 이이(李珥)는 이 난해한 질문에 대응하여 빠짐없이 논리적 근거를 들어 답하여 장원을 차지하였다. 더욱이 마지막 질문인 해결책에 관하여 "그 모든 것은 임금의 마음 수양에 달려 있다"라고 답하여 임금의 정치적 결단을 촉구하는 내용으로 마무리하였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질문은 대부분 자연과학 분야이지만 이이의 답변은 모두 인문과학적 이론에 기반하였다는 점도 경이롭다.
시험관이었던 정사룡, 양응정 등은 2천500여 자에 달하는 이이의 책문을 보고 "우리가 여러 날 애써서 생각한 끝에 비로소 이 문제를 만들어 냈는데, 이이가 짧은 시간에 쓴 답안이 이와 같으니, 참으로 천재로다!"라고 감탄했다.
이이는 생원시의 초시와 회시에 모두 일등으로 뽑히고 문과(文科)에서도 초시, 회시, 전시 세 차례 시험에서 일등으로 뽑혀 1년 사이에 아홉 번이나 일등으로 합격하였기에, 당시 그는 '구도장원(九度壯元)'으로 불렸다.
난제를 꿰뚫은 이이의 통찰은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산적한 국가적 난제는 기술이나 제도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 문제를 대하는 사회 구성원, 특히 리더들의 책임 있는 자세와 올바른 마음가짐이 선행되어야 한다.
해가 바뀌는 시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를 탓하는 소모적 논쟁이 아니라,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하겠다는 명확한 의지이다. 율곡이 난해한 질문에 명쾌한 해법을 제시했듯, 이제 우리도 혼란을 걷어내고 상생과 통합이라는 지혜의 답안을 작성해야 할 때이다. 비록 문제는 '킬러 문항'일지라도, 우리의 응답은 '명품 답안'이 되기를 소망한다.
강민구 경북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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