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을 지켜보려 애썼는데 인생 종착점이 요양병원입니다…"
지난 5일 찾은 대구 한 요양병원. 병실 창가에 누워 있던 최희준(84·가명) 씨가 힘겹게 꺼낸 첫 마디다. 지난 2년간 요양원에서 지낸 희준 씨는 최근 치매 중증도가 심해져 요양병원으로 옮겨졌다.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오는 아들이 그의 유일한 삶의 낙이다. 하지만 중증 치매 환자인 희준씨에게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의미가 없다. 아들이 병실 문을 나서는 순간, 언제 다시 자식 얼굴을 보게 될지 인지조차 할 수 없어서다.
희준 씨는 음식도 제대로 삼키지 못한다. 이빨이 없는 데다 씹는 방법을 잊어버리게 되면서 죽을 먹다가도 체하는 일이 반복된다.
희준 씨 병실에는 여느 중증 환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족사진 한 장이 없다. 한평생 가족을 위해 일했고 우여곡절이 있을 때마다 가정을 지키려 애썼지만, 잊혀져 가는 기억을 붙들 추억조차 없는 것이다.
◆ 잦은 외도에 '돈'만 좇았던 아내들
희준 씨가 세상에 첫 울음을 냈던 곳은 일본이다. 아버지가 일본에서 공장을 운영했으나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이후 가족은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돈 한 푼 챙기지 못한 채 귀국한 가족의 삶은 곧바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5살 어린 나이에 희준 씨는 경북 구미 일대를 떠돌며 밥을 구걸하며 목숨을 부지했다. 12살이 돼서야 대구 달성공원에 있는 식당에서 일을 배웠다. 설거지와 허드렛일부터 시작했지만 요리 감각이 누구보다 빼어났다.
군대에서도 취사병으로 배치됐고, 전역 이후 미군부대에서 돈가스와 초밥, 양식 요리를 익혔다. "맞아가면서도 배웠어요. 살아야 하니까." 요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구타가 이어지던 시절이었음에도 이를 악물고 버텼다.
대구 중구의 한 가게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던 그는 옆집 가게에서 일하던 여성과 인연을 맺었다. 서로 비슷한 처지였던 두 사람은 결혼을 결심했다. 이후 힘을 모아 대구탕과 초밥, 냉면을 파는 경양식 식당을 열었다. 장사는 잘 됐고, 인생 처음으로 '내 집'도 마련했다.
애석하게도 평온한 삶은 오래가지 못했다. 결혼 생활 10년도 채 되지 않아 아내의 외도가 드러났다. 이혼 과정에서 그는 3천만원에 달하는 위자료를 건넸다. 당시 집 한 채 값이 400만~500만원 수준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전 재산에 가까운 돈을 내준 셈이었다.
결혼을 실패한 상처를 안고 살던 그는 자신의 가게에서 일하던 종업원과 두번째 결혼을 했다. 두 사람은 남구 봉덕동에서 포장마차를 열어 떡볶이를 팔며 다시 생계를 꾸려 나갔다.
손맛이 좋았던 희준 씨 덕에 집안 형편은 안정을 찾아가는 듯했다. 집 두 채를 마련할 정도로 생활이 안정됐으나 아내는 점차 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첫 번째 아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을 '배 다른 자식'이라며 괴롭히기까지 했다. 곰팡이가 핀 음식을 먹이거나 집에서 내쫓는 일도 잦았다.
장사를 하느라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았던 희준 씨는 아내에게 매일 돈을 바치듯 건넸지만, 아내는 아들을 구박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어느 날은 처가 식구들까지 찾아와 "젊은 아내와 살려면 돈이라도 줘야 한다"고 압박했다. 그는 끝내 못 이겨 2천만원가량을 내줘야 했다.
그렇다고 또다시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을 수는 없었다. 두 번이나 결혼에 실패했다는 낙인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문드러져 가는 마음을 억지로 붙잡은 채 버텨야 했다.
◆ 속상함에 찾아온 중증 질병들
오랜 스트레스를 온몸으로 견뎌내온 결과일까. 희준 씨의 몸은 결국 무너졌다. 뇌졸중과 뇌경색을 잇달아 겪으며 병원에서도 '가망이 없을 것'이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이야기를 꺼냈다.
건강이 급격히 나빠진 상황에서도 아내는 돈을 요구했다. 2010년대 서구 평리동 일대 재개발이 추진되면서 보유 중이던 집에 3억6천만원 상당의 보상금이 나오면서 아내의 채근은 심해졌다. 아내는 보상금 절반 이상을 주면 간호하겠다고 했고, 의지할 곳이 없었던 희준 씨는 이를 받아들였다.
몇 개월 뒤 아내는 이혼을 요구했다. 또 한 번의 충격을 받은 그는 이후 치매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해, 현재는 중증도가 크게 악화된 상태다. 그 사이 첫 번째 결혼에서 낳은 자식들과의 관계도 멀어졌다. 간간이 찾아오는 아들은 있지만, 그마저도 부신암을 앓으며 근로 능력을 잃은 상황이다.
현재 희준 씨의 병원비와 기저귀 비용 등을 합치면 매달 80만원이 든다. 나라에서 받는 기초연금 등 공적 급여를 합쳐도 모자라다. 부족한 금액은 아들이 감당할 수밖에 없지만 아들 또한 기초생활수급자인데다 암 치료를 위해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경제적 여력이 없다.
식사조차 어려운 희준 씨. 치아가 없어 음식물을 제대로 삼키기 어려워도 틀니를 맞출 돈이 없다. 먹는 법도, 씹는 법도 잊은 채 80대 중반에 접어든 그가 남은 시간을 조금이라도 편안히 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아들 돈을 어떻게 쓸 수 있겠어요. 그 아이도 병이 있어요"라며 "제가 만약 세상을 떠난다면 장례 치를 돈이라도 남아 있을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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