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전쟁으로 원유 수급 불안이 증폭되고 있는 와중에, 해외 기업이 울산 석유비축기지에 보관 중이던 90만 배럴 규모의 국제공동비축 원유를 해외로 판매한 사실이 밝혀졌다. 국제공동비축 사업은 해외 기업의 원유를 석유공사의 유휴 비축시설에 저장하고, 비상시 우선 구매권을 행사해 국내 수급 안정을 도모하는 제도이다. 원유 수급 비상 사태가 발생한 현재, 우리 국민이 사용해야 할 원유를 정부 당국이 우선 구매권(優先購買券)을 행사하지 않아 해외로 유출되게 한 셈이다.
한국석유공사는 "지난 8일 해당 물량을 국내 정유사가 구매하는 협의가 진행 중인 점을 확인해 별도 조치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다음 날 해외 정유사로 판매를 추진하면서 공사는 우선 구매권을 행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손주석 석유공사 사장은 지난 6일 취임하자마자 울산 석유비축기지를 찾아 "비축유 방출 무결점 대응"을 선언했지만 말뿐이었다. 산업통상부 역시 "감사 결과 규정 위반 등이 확인될 경우 엄중히 문책할 예정"이라며 석유공사 측에 책임을 떠넘기기 바쁜 모양새이다. '4월 에너지 대란설'이 현실로 다가오는 비상시국에 청와대와 정부는 '국내에 보관된 원유마저 지키지 못하면서 대체 뭘 하고 있나'라는 비판이 쏟아질 만하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 정부는 20일 밤 입장문을 내고 '이란군이 호르무즈 해협을 사실상 봉쇄한 것을 가장 강력한 표현으로 규탄한다'는 국제 공동성명(共同聲明)에 동참한다고 밝혔다. 늦었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사안의 전개를 돌이켜 보면 과연 이런 방식으로 국익(國益)을 지킬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당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군함 파견을 공식 요청했던 국가 중에서 미국의 동맹·우방이 아닌 중국을 제외하면 한국만 유일하게 성명에서 빠졌었다. 이후 캐나다마저 동참하자 뒤늦게 한국도 헐레벌떡 마지못해 참여한 모양이 되고 말았다. 국가의 명운(命運)이 달린 비상 상황인 만큼 정부의 위기관리·대처 능력을 재점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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