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사건 이후 많은 제주도민들이 일본 오사카에 정착한 것은 알려진 사실이고, 대체로 역사적 사건들을 모티브로 한 작품들도 적지 않다. 시기적으로 가까운 작품은 제주극단 세이레에서 공연된 〈오사카에서 온 편지〉로, 제주 4·3 사건 당시 아들과 남편, 손녀를 잃고 며느리마저 사건의 후유증으로 오사카로 떠나 살아온 극중 인물 며느리(고정자)와 시어머니(노모)를 중심으로 60년 세월을 역주행하며 역사적 비극의 장면들을 통해 4·3의 애도 방식을 실제 인물을 통해 극화한 작품이다. 또 〈돔박아시〉(작 이미경, 프로덕션 아이디에이)는 제주 4·3 사건 당시 도민 학살을 막고자 했던 고이래의 아버지가 상관을 암살한 간첩으로 몰려 사형선고를 받고, 그 후 유일하게 네 살 때 혼자 살아남아 연좌제로 숨죽여 살아야 했던 제주 해녀, 극중 인물 고이래의 인생사를 담아내는 작품이다. 〈해녀 연심〉(작 김민정, 연출 나옥희(고수희))은 극중 인물 고연심(이혜미 분)이 그날의 사건 당시 남편을 잃고, 다섯 살 된 딸 수자(권지숙 분)는 제주 친정에 남겨둔 채 여덟 살인 큰딸 화자만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에서도 생존을 위해 해녀의 삶을 이어가며 한 남자를 만나 수자와 배다른 기자(김소진 분)를 낳고, 큰딸은 조총련 남자를 만나 북송선을 타고 북으로 가게 되면서, 한평생 오사카에서 기구한 삶을 살아온 제주 해녀 '고연심'의 이야기이다.
◇제주에서 오사카로 이어진 고연심, 한 여성의 4,3 생존서사
무대는 한일의 물길을 가른 듯한 현해탄처럼 해녀의 물질로 건너올 수 없는 바닷길을 연상하게 하면서도,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목판의 길 또한 제주와 오사카를 이어주는 연안선처럼 형상화된 무대 배경과 공간성의 구도는 적절해 보인다. 제주를 연상하게 하는 돌담 뒤편과 좌우의 바닷길 공간은 때로는 제주와 오사카에서 해녀로 살아온 고연심의 과거와 현재의 물질이 교차하는 공간이 되기도 하고, 그 사이를 대형 천으로 감싸 마치 4·3 당시 오사카로 떠난 그 역사적 시간에 기억이 멈추어 있는 듯한 수송선처럼 현해탄 공간 이미지로 형상화한 무대도 간결하다. 고수희 연출은 프롤로그부터 스물일곱 제주 해녀의 물질의 삶을 무용적 리듬으로, 마치 바닷속을 표상하는 이미지들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발광 오브제를 활용해 수중 전조등 처럼 심해의 빛을 환기시키며, 해녀의 물질 공간과 기억의 심연을 동시에 드러내는 상징적 장치로 무대화한다.
4·3 이야기를 다룬 역사극에서는 대체로 그 아픔에 매몰되고 감정을 몰입시키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오히려 그 구조를 벗어나 모든 남자 역을 맡은 배우 박완규를 통해 배우 특유의 희극적인 웃음 포인트를 살려내 감정을 덜어내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고연심을 간호하는 역을 나이 든 남자 간호사(모든 남자)로 전환해 노모와 만난 수자의 첫 장면에서도 웃음을 유지한다. 간호사가 퇴장할 때 오랫동안 고연심을 간호해온 시간처럼 신체적(관절) 쇠약으로 보행이 어려운 장면이나, 노래를 잘 불러 일본에서도 유명한 연예인이 되고 싶었던 화자의 장면에서 '노오란 샤쓰 입은 사나이'로 군무를 형성한 장면, 조총련 소속 통일운동가인 청년 진철(모든 남자)의 사랑 고백 장면 형상화도 적절하다.
해녀연심의 산소통 줄을 잡아주고, 그 매달린 줄을 타고 물질을 하는 연심 사이에 조선인 하리모토(모든 남자)가 나무판자에 떠밀려 오는 연심을 구조해 막내딸 기자를 낳게 된 사연과, 마지막 장면에서 북송선에 올라탄 화자와 경철의 환영식 장면 또한 고연심을 중심으로 한 4·3의 역사적 비극성에 거리를 두며, 뻔한 서사로 흐르지 않게 하기 위한 고수희 연출의 많은 고민이 읽힌다. 박완규의 캐릭터도 부담을 주지 않게 살려냈고, 배우들 또한 극에 무리가 가지 않게 연기로 극을 살려내고 권지숙 배우를 중심으로 제주말 체득도 상당한 연습량을 보여준다. 수자는 엄마 고연심에 대한 그리움과 섭섭함으로 살아온 응어리진 인생사를 때로는 억척스러운 인물로, 그 가슴의 멍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이는 투박함으로 극 중 인물화를 구현하는데, 오히려 '고연심'의 인생사 같다고 할까. 〈해녀 연심〉은 마지막 장면에서 수자를 중심으로 열두 살 때 고연심이 사는 오사카에 온 시절의 장면으로 되 돌아가, 재일 조선인 밀집지역인 치루 하시 인근 히라노가와 다리 위 장면으로 전환된다.
세 자매(화자, 수자, 기자)의 어린 시절 모습들이 재현되는데, 이 장면은 기억을 현재적 시점에서 과거로 전환해 교차하는 연결 방식은 유연한 데 비해,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재현하는 방식은 다소 인위적인 설정처럼 보인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북으로 오지 말라는 화자의 편지와 북으로도 남으로도 두 딸에게 위험할까 봐 갈 수 없었다는 연심의 아픔을 기억하는 기자의 말 뒤로, 4·3으로 인한 이산(離散)의 아픔 속에서 평생을 살아오면서도 하나의 달을 바라보고 살아온 이야기에 자매와 가족들의 응어리진 삶은 화해와 미안함으로 위로된다. 죽은 뒤 비로소 뼛가루가 되어 다시 제주 해녀로 돌아가 제주도 바당(바다)에 뿌려지는 대화의 설정 뒤로 무대 마지막 장면은 다시 '노오란 샤쓰 입은 사나이'로 이어진다.
◇ '모든 남자' 박완규, 서사의 긴장을 완화해 비극성을 웃음으로.
〈해녀 연심〉은 4·3 사건으로 인해 제주에서 일본 오사카 츠루하시(鶴橋)에서도 해녀로 살아온 연심의 삶이 개인의 비극을 넘어 제주 여성들의 디아스포라적 삶과 역사의 기억을 소환하며, 그 삶이 세대와 시간을 건너 어떻게 이어지고 남겨지는지를 보여준다. 〈해녀 연심〉은 4·3 비극의 무게를 서사로 확장해 녹여내기보다, 웃음과 버라이어티한 극중 장면, 연심의 군무, 한일의 역사성을 언어적 소통 방식으로 시간과 기억을 다시 마주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모든 남자 역을 한 배우가 멀티로 소화해 서사와 극 중 장면을 환기하는 방식 또한 그동안 4·3을 모티브로 한 작품 중 역사성과 아픔에 과도하게 몰입되지 않게 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장점이다. 특히 곽지숙 배우는 영락없이 노모와 생이별한 채 억척스럽게 제주에서 물질을 해온 삶과 인생사를 투박할 정도의 캐릭터 연기로 감각시키지만, 아쉬움도 그 지점에 있다. 젊은 시절 고연심(이혜미)은 관능적인 이미지만 부각 된 느낌이다. 삶의 아픔보다는 아름다운 제주 해녀만 보인다는 점은 아쉽다.
4·3을 모티브로 한 작품 중 미학적으로 잘 구현된 작품임에도 창작산실 신작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아쉬움이 있다. 제주 해녀의 서사이지만, 그 역사성을 과감하게 환기하기 위한 서사적 장치가 충분히 전복적으로 구현되지 않았다는 점이고, 고연심과 이 복 세 자매의 가족사 중심으로 확장되면서 역사적 층위가 완화된 것은 장점이면서도 4·3 서사의 동력을 느슨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일부 장면에서는 과거를 재현하는 방식이 인위적인 설정으로 보이며(다리 장면), 서사의 밀도를 떨어뜨린다. 특히 여러 자가 어린 시절로 돌아가 기억을 재현하는 장면은 오사카 시절의 정서를 환기하기 위한 장치로 읽히지만, 극 전체의 흐름을 약화하는 측면도 있다.
북으로 떠난 딸, 제주에 남겨진 수자,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기자. 제주를 떠나 일본 오사카에서도 해녀의 삶을 살아온 고연심 가족의 디아스포라 정체성 문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는 화해와 그리움, 감정적 화해로 결말이 봉합되는 점도 그렇다. 장점이 많은 작품임에도 4·3을 모티브로 한 작품의 선을 과감하게 넘어서지 못한 것은 아쉽다. 김민정 작가는 감각적으로 대중적 서사를 아는 작가이고, 고수희 연출은 배우로 다져진 연극성이 <해녀 연심>을 그려냈다. 다행인 것은 관객들은 웃으면서도 그 아픔으로 100분을 유지하고 〈해녀 연심〉을 꼼짝없이 바라보게 한다는 점이다.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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