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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심강우] 당신의 설산(雪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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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강우 시인·소설가
심강우 시인·소설가

눈처럼 희다고 설산(雪山)이다. 누군가는 지상의 가장 고귀한 왕관이라 하고 또 누군가는 자연의 눈부신 드레스라고 예찬한다.

인도 티베트 네팔 파키스탄 부탄 아프가니스탄 등 여러 국가의 경계에 걸친 히말라야 산맥은 에베레스트를 비롯해 8천미터 이상의 봉우리를 14개 이상 품은 명실공히 '세계의 지붕'이다. 안전 간격의 부족과 난기류 형성의 위험 때문에 항로 설정을 꺼린다는 그 곳은 대표적인 설산이다.

안나푸르나는 히말라야 산맥 중 산악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우리나라에선 2011년 박영석 씨의 실종으로 집중 조명을 받은 바 있다. 해발고도 8091m, 세계에서 열 번째로 높은 산인 안나푸르나는 가뜩이나 험한 지형에다 변화무쌍한 기후와 눈사태로 악명이 높다. 험준하기는 지형뿐만이 아니다. 자료를 찾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간신히 찾은 자료도 케케묵은 것이다. 내가 아는 건 이곳의 사망률이 에베레스트나 K2보다 높다는 것과 현재까지 수습하지 못한 시신이 꽤 많다는 정도이다. 시신이란 말을 곱씹다 보면 설산에 대한 이미지는 급전직하, 거의 잿빛으로 변한다. 안나푸르나를 산스크리트어로 풀이하면 '풍요의 여신'이라고 한다는데 안나푸르나가 기르는 바람과 구름의 시점이라면 모를까 인간의 시점에서는 어불성설이다.

그 것뿐이라면 말을 꺼내지 않았다. 잿빛에 암갈색을 더하는 정보가 또 있다. 사실 산악인들의 실종은 불가항력의 자연재해에 속한 것이므로 설산의 이미지를 깎는 결정적 요인이라고 할 순 없다. 문제는 병, 깡통, 플라스틱 따위의 쓰레기들이다. 그것들은 경관을 해치는 수준을 넘어 자연을 훼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산악인들 스스로가 저지른 '사사로운 일들'중 하나라는 게 충격이다.

언론에서 취재한 자료를 보면 여태도 그것을 '일탈행위'로 인식하지 않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산소통을 메고 악전고투 끝에 정상에 올라 깃발을 꽂는 산악인의 모습은 '인간승리' 혹은 '불굴의 의지'로 표상되기 마련이다. 그런 설정이 사리에 벗어난 것도 아니다. 단지 일부 산악인들의 무분별한 행위로 인해 '의지'의 의미가 훼손되고 깃발의 감흥이 퇴색되는 게 안타깝다는 것이다.

산이 저 지경에 이르도록 몰랐던 것도, 여느 사건보다 더 크게 와 닿았던 것도 결국은 설산의 광휘(光輝) 때문이다. 그런데 눈부신 빛이 설산에만 해당하는 것일까. 누구에게나 설산 같은 대상이 있(었)을 것이다. 마음의 등성이를 오르면 닿는 그 대상은 사람일 수도, 사물일 수도 있다. 이쯤에서 이런 질문을 던져 보는 것이다. 당신은 단지 흠모의 마음으로 거기에 올랐는지, 거기서 뭘 잃어버린 건 없는지, 실은 버린 게 아닌지.

심강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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