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늘 낮은 곳,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길을 걷다 문득 스쳐온 라일락꽃 향기는 눈에 띄지도 손에 잡히는 것도 아니지만 그 향은 오래된 기억을 불러낸다. 어느 오후, 이름조차 희미해진 골목에서 기우는 햇살이 담벼락에 길게 늘어지듯 봄은 그렇게 스윽 다가선다.
시선을 조금만 낮추면 봄은 더 분명해진다. 잔디 사이로 번지는 청보랏빛의 봄까치꽃, 길가에 조용히 줄지어 핀 제비꽃, 바람을 따라 흔들리는 민들레. 이 작은 꽃들은 화려하지 않지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계절을 완성하는 힘이 있다.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더 또렷해지는 색과 결. 봄은 높은 가지 끝이 아니라 발밑에서부터 조용히 차오른다.
대구의 봄도 다르지 않다. 동백이 뚝뚝 떨어지면 목련이 두툼한 꽃잎으로 분지의 온도를 바꾼다. 개나리는 골목과 언덕을 누비고, 진달래는 타오르듯 봄의 깊이를 더한다. 그러나 이 도시의 봄을 지탱하는 것은 따로 있다. 텃밭 가장자리와 골목 귀퉁이, 공원의 빈터에서 자라는 이름 없는 풀들이다. 달래와 머위, 그리고 쉽게 스쳐 지나치는 야생초들이 봄의 대지를 채운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이 작고 여린 생명들이 대구의 봄을 완성한다.
그 봄은 입안으로도 스며든다. 어린 쑥을 뜯어 쌀가루와 함께 버무려 찐 쑥버무리는 오래된 대구의 봄맛이다. 은은한 향과 쌉싸름한 맛은 소박하지만 두텁고 깊다. 한때 그것은 끼니를 잇기 위한 음식이었고, 허기진 봄을 버티기 위한 방식이었다. 김이 오르는 시루에서 퍼지는 쑥 향이 주변을 가득 채우고, 그 향과 쓴맛은 우리 안에 스며들어 끈질긴 생의 기억으로 남는다.
하지만 지금 봄은 다른 것이 되어가고 있다. 봄은 더 이상 생동을 느끼는 계절이 아니라 통과의례처럼 소비되는 무대 위의 한 장면이 되었다. 꽃은 오브제가 되고, 계절은 배경이 된다. 우리는 봄을 누리기보다 기록하고, 경험하기보다 남기기에 바쁘다. 그렇게 우리의 감각은 얇아지고, 계절은 실체로부터 점점 멀어진다. 봄은 변하고 있다.
그럼에도 작은 것들은 여전히 제자리를 지킨다. 라일락의 향기, 들풀의 강인함, 쑥의 쌉싸름한 맛은 변하지 않는다. 바람이 스치고 빛이 낮게 번지는 자리에서 이들은 매년 같은 방식으로 계절을 이어간다. 다만 그것을 감각하는 우리의 시간이 줄어들었을 뿐이다. 달라진 것은 계절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마음이다. 봄은 여전히 곁에 있고 매년 돌아온다. 그러나 우리는 그 앞에서 오래 머물지 못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풍경이 아니다. 발밑에서 시작되는 것들의 작은 외침을 다시 느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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