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백정우의 읽거나 읽히거나]저녁 무렵 책방 풍경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책] 아라비아의 로렌스
스콧 앤더슨 지음/ 글항아리 펴냄

한 동네 책방 모습. 영화평론가 백정우
한 동네 책방 모습. 영화평론가 백정우

반나절을 빈둥대다가 봉두난발로 시내 대형서점에 갔다. 얼마 전 한 층을 없애고 코너를 합치는 리모델링으로 서점 분위기와 다소 멀어진 책방이다. 덩달아 내 마음도 멀어졌다. 매주 한 번은 들르던 곳인데 몇 달 만인지 모르겠다. 온라인서점이 대세이니 이해 못 할 일도 아니지만, 못내 아쉽다. 그럴 때면 종종 동네 책방을 찾는다. 이날도 그랬다.

땅거미가 내려앉으면 작은 문과 더 작은 간판을 둘러싼 네온 불빛이 켜진다. 무언가 재밌는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 오늘은 여행 작가의 특강이 있는 날이다. 다른 때보다 많은 이들이 공간을 채울 것이다. 낯익은 얼굴과 낯선 이가 한데 모여 글자가 피워낸 아름다움에 흠뻑 취할 준비를 마쳤다. 공간을 떠다니는 문장으로 오늘의 기쁨과 내일 살아갈 연료를 보충한다. 이만하면 호화롭고 넉넉하다. 그런데도 한편으론 아쉽다. 더 많은 사람이 참석했더라면. 그러기엔 공간이, 한정된 자리가……. 매번 같은 생각이다.

지역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아담하고 소담한 동네 책방엔 뭔가 다른 것이 있다. 예전 동네 책방 행사가 작가와의 대화나 북 토크(충성 고객과 미래의 단골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알짜배기 프로그램이다.) 수준에 머물렀다면, 지금은 각자 개발한 고유의 콘텐츠로 분투 중이다. 예컨대 시지에는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단계별·장르별 책 읽기 프로그램으로 탄탄하게 자리 잡은 동네 책방이 있고, 예술 관련 서적을 주로 취급하는 달서구 어느 책방은 미학 관련 서적을 함께 읽고 전문가 강의를 들으며, 계절에 따라 인근 습지 탐방 시간도 가진다. 혁신도시와 앞산에는 그림책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책방도 있으며, 수성시장 인근의 서점은 영문 원서 읽는 모임으로 차별화를 꾀했다.

다른 얘기를 해보자. 서점에서 음료와 간단한 먹거리를 파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융합의 시대에 책이라고 예외일 순 없는 노릇. 카페에 책을 얹거나 책방에 커피를 추가하는 건 어느 한쪽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아니다. 어떻게든 수익의 다원화로 지속가능하게 만들려는 자구책일 터. 자투리 공간에 갤러리를 만들고 전시하는 일도 다반사다. 음료와는 별개로 모든 책방은 큼지막한 통유리를 통해 오가는 사람들이 안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암묵적 합의를 이룬 듯하다. 창문에 독서와 관련한 레터링이나 신간 안내 전단 등을 덕지덕지 붙인 서점은 더는 없다. 어느 때보다 개인정보와 보안을 중요하게 여기는 반면, 책 읽는 자신의 모습이 유리창 밖으로 비춰지고 누군가의 피사체가 되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시대. 손님은 기꺼이 인테리어 소품이 되어주며 심지어 그것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불특정 다수를 위해 친밀한 인물들이 자리를 채우는 구조. 누군가가 지속적으로 공간을 점유하여 책과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지금 동네서점의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영화평론가 백정우
영화평론가 백정우

지역민의 사랑방이자 지식과 지혜의 전달자 동네 책방. 따뜻한 공기로 채워진 공간이 주는 아늑하고 친밀한 정서는 대형서점이 흉내 내기 힘든 지점이다. 해거름 무렵 집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책방 풍경, 알전구가 켜진 화사한 공간에서 누군가 열심히 책을 뒤적이는 모습처럼 따뜻하고 안온한 미장센이 또 있을까 싶다.

(추신) 언제부턴가 투명한 비닐봉지에 책을 담아주기 시작했다. 여전히 종이봉투를 사용하는 동네서점이 많지만. 디자인 진보로 볼지, 마케팅 측면으로 볼지, 환경문제 차원으로 볼지는 각자 판단할 일이다. 하긴, 책 한 권이라도 사는 게 어딘가.

mWiz
18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예비후보는 대구 시민들이 자신을 키워줬다고 강조하며, 이번 선거가 자신의 인생 마지막 작품이라고 밝혔다. 그는 ...
이케아가 대구 신세계백화점에 입점해 매장을 조성하기로 하며, 3년여 만에 대구시장 진출을 공식화했다. 이케아는 고객 맞춤형 서비스와 도심형 ...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의 핵심 인물 최서원(전 최순실)의 딸 정유연이 사기 혐의로 구속된 가운데, 자녀 양육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후원금을 요청...
브리핑 데이터를 준비중입니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