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가 우리 가락을 앉아서 듣게 했다면, 소울과 훵크는 우리 가락을 다시 서서 춤추게 했다. 재즈가 화성과 즉흥으로 민요를 번역했다면, 소울과 훵크는 브라스·베이스·드럼이 어우러진 강한 백비트로 민요를 움직이게 했다.
국악은 크게 정악과 민속악으로 나눌 수 있다. 정악이 궁중과 사대부의 품격 있는 음악에 가깝다면, 민속악은 민중의 생활과 놀이, 노동, 굿, 판소리, 잡가, 농악의 세계에 주로 배치된다. 즉, 민속악은 본래 조용히 감상만 하는 음악이 아니었다는 게 중요하다. 떠들썩했고, 통속적이었고, 절로 몸을 움직이게 했다.
그런 점에서 소울과 훵크는 우리 민속악과 절묘한 상성을 보인다. 서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태어났지만 지구촌 시대가 된 덕분에 만나니 찰떡궁합이다. 소울은 목소리의 절절함과 블루지한 창법을 강조하고, 훵크는 리듬 섹션의 반복과 브라스의 찌르는 맛을 살린다. 판소리와 민요가 한과 흥을 오간다면, 소울과 훵크 역시 울음과 춤 사이를 오간다.
◆데블스의 민요 솔훵
우리 가락을 소울과 훵크로 재해석한 국내 밴드로 첫 손에 꼽을 만한 팀은 데블스다. 데블스는 흔히 록 밴드로 기억되지만, 실제 음악의 질감은 소울과 훵크에 훨씬 가까웠다. 브라스 섹션을 품은 구성, 리듬을 전면에 세우는 연주, 무대 위의 에너지 모두 미국 흑인 대중음악의 영향을 강하게 보여준다.
데블스의 '너만 알고 있어/사랑의 무지개'(1977) 앨범에 수록된 '신고산 타령'과 '뱃노래'는 이 글의 주제에 정답처럼 들어맞는 사례다. 민요 선율은 익숙하지만, 편곡은 전혀 얌전하지 않다. 브라스가 치고 들어오고, 드럼과 베이스가 몸을 흔들게 만든다.
이런 음악이 가능했던 배경엔 미8군 무대가 있었다. 1960~70년대 한국의 많은 밴드들이 동경과 선망의 대상인 미8군 무대에 입성해 미국 팝, 록, 재즈, 소울, 훵크를 연주하며 실력을 길렀다. 그들이 대중 앞에 섰을 때 서구 대중음악의 연주법은 이미 손에 붙어 있었다. 문제는 무엇을 연주하느냐였다. 그때 민요는 익숙한 소재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걸 보여줄 수 있는 재료가 됐다.
◆생계형 민요 음반 속 혁신
당시 민요는 지금 생각보다 훨씬 큰 음반 시장을 갖고 있었다. 이미자, 하춘화, 김세레나 같은 인기 가수가 반드시 민요를 불렀고, 관현악단이 민요를 연주했으며, 코미디언과 만담가도 민요 메들리를 만들었다. 민요는 고급 예술만도 아니고, 순수한 전통만도 아니었다. 대중 레코드 시장의 중요한 상품이었다.
소울과 훵크 밴드들도 이 흐름과 무관하지 않은 행보를 보였다. 생계를 위해 민요 음반 반주를 맡는 경우도 있었고, 그 과정에서 민요를 자기 방식으로 바꿔 연주하기도 했다. 영화 '고고70'(2008)이 데블스를 모티브로 삼아 보여준 민요 녹음 장면은 그때의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자존심을 접고 반주하러 들어간 밴드가, 막상 연주를 시작하자 민요 안에서 새로운 그루브를 찾아내는 장면이다
◆신중현 사단의 한국적 그루브
신중현 사단은 민요조 선율감과 한국어의 장단을 록·소울·사이키델릭 문법 안에 녹여냈다. 신중현의 '미인'(1974)이 대표적이다. 특정 민요를 편곡한 게 아니라 좀 더 나아가 한국적 선율감과 사이키델릭 록 및 훵크적 리듬감을 비벼냈다.
김추자와 김정미도 이 흐름에서 중요하다. 신중현이 만든 곡을 불렀던 이들의 목소리에는 한국 가요의 창법과 소울적 질감이 함께 존재한다. 특히 김추자의 보컬은 한국 대중가요가 흑인음악적 창법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서구의 소울을 흉내 낸 게 아니라, 한국어의 억양과 리듬을 살려 소울풀한 표현을 구현했다.
사랑과 평화, 히식스, 키보이스, 검은 나비, 함중아와 양키스, 김트리오, 나미와 머슴아들 같은 밴드들도 동시대의 그루브를 공유했다. 안치행이 이끈 안타프로덕션도 록과 트로트를 결합한 '락뽕'으로 유사한 맥락의 접근을 시도했다. 이들 모두 명시적으로 우리 가락과 흑인음악의 결합을 표방하지는 않았지만, 연주법과 리듬, 창법, 무대 감각 안에 소울과 훵크의 흔적이 들어 있었다. 여기에 자연스럽게 우리의 선율과 말이 얹히니 독특한 질감이 생겼다.
◆민요는 원래 움직이는 음악
하나 짚고 넘어갈 점은 민요와 민속악을 너무 경건하게만 보지 않는 것이다. 민요는 본래 민중이 불렀고, 민속악은 본래 마당에서 울렸으며, 농악과 굿은 몸을 움직이게 하는 게 본질이었다. 그러니 소울과 훵크, 디스코와 록, 재즈와 힙합을 만났다고 해서 우리 가락이 갑자기 불순해지는 것은 아니다. 원래 갖고 있던 움직임을 다른 시대의 리듬을 통해 살려내는 일에 가깝다.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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