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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매일시니어문학상] 수필 수상작-몽매/ 길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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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매일시니어문학상 수필 부문 당선자 길영숙 님.
2026 매일시니어문학상 수필 부문 당선자 길영숙 님.

살벌하다. 눈알을 희번덕이며 날 춤을 춘다. 허공에서 휘두른 쟁기가 적의 심장에 꽂힌다. 생사의 경계선도 뛰어넘는 질긴 놈이다. 마당과 집 둘레에 잡(雜)스럽게 무성한 초록이 눈엣가시다. 특별한 능력을 알기 전까진 무지하여 전쟁을 선포하고 만다.

하찮게 생각한 적들이 짧게 깎인 잔디 사이사이에 숨어든다. 주인인 양 초록 융단 속에서 세를 불린다. 낯익은 토끼풀, 민들레, 제비꽃이 주를 이루지만 이름 모를 풀도 많다. 한여름 태양 빛이 키워낸 침입자를 매서운 겨울이 잠재워주기만 기다린다. 스스로 후퇴하는 계절이 되어서야 숨통이 트였다.

흙냄새만 나면 뒤덮는 무법자들은 시골 어디에서든 골칫덩이다. 로망이었던 전원생활이 현실의 무게로 짓눌러온다. 고달픔을 벗어나기 위해 화생방전을 고려하지 않은 건 아니다. 제초제 "바스타"가 살포되어 누렇게 뜬 마당은 내 목이 타는 듯하다. 참패를 거듭하다 도시로 되돌아가기를 고려하던 차에 마지막이라 명명한 일격을 꾀한다. '적벽대전'이라도 치를 기세로 하늘의 기운을 읽는다. 바람은 거세지 않아야 하고 비가 오지 않는 날로 점지 된다.

선전포고도 없이 시골 마당에 디딤돌과 시멘트 포대가 쌓인다. 제갈공명도 울고 갈 전쟁을 시작할 참이다. 꽃밭 경계석 틈새와 잡초 반인 잔디는 반쯤 없애기로 한다. 화산석을 깔고 그 틈새엔 시멘트 가루를 비벼 부어버릴 작정이다. 눈이 덜 가는 뒤쪽 담장 둘레론 두껍게 붓기로 한다. 기습당한 그들은 암모나이트처럼 화석이 되리라.

괭이질하던 손을 멈춘다. 눈에 들어온 잔디 뿌리가 이상하다. 모양새가 다른 뿌리가 보인다. 땅 밑으로 이어진 뿌리의 모습은 경악스럽다. 수년 묽은 도라지 같기도 한 것이 예리한 커트 칼날에도 끄떡없다. 신화 속 갑옷이라도 두른 듯하다. 호기심 반 의구심 반, 전지가위로 잘게 잘라 캐낸다. 그들의 질긴 삶이 길게 딸려 나온다.

잎이 잔디와 흡사하여 잔디 대접을 받아왔다. 유독 키가 크고 튼튼했던 이전 모습이 떠오른다. 그것들의 충성심을 철석같이 믿었다. 스파이 같은 위장술이 뿌리를 드러내며 허를 찌른다. 우매했던 눈빛이 흔들린다. 정체가 궁금해 이리저리 수소문해봤다. 갯잔디일 가능성이 컸다. 초록은 동색일 거로 생각한 무지가 들통나며 패배의 쓴맛을 본다.

적(敵)을 알아야 하듯 들풀을 알아간다. 인터넷을 뒤져 잡초라 불리는 그들의 정체를 수소문한다. 마당의 것들과 맞추어, 낯선 이름을 추적하는 눈과 손이 바쁘다. 꽃 다지, 뽀리뱅이, 괭이밥이, 명아주, 개여뀌, 달개비, 별꽃, 깨풀 등등, 미워하기엔 이름들이 왠지 정겹고 낯익다.

강원도 산기슭, 동네 아이들이 갖고 놀던 흔한 풀들이다. 풀피리가 되기도 하고 화관을 만들어 머리에 쓰곤 했다. 한 소쿠리 뜯어 싸라기 쑥떡이나 반찬에 보태기도 하지 않았든가. 어릴 적 소꿉친구처럼 다가온다. 빈곤한 봄날을 같이 보냈던 새싹이 떠오른다. 쑥, 냉이, 고들빼기, 고마리는 집 앞 도랑 따라 지천으로 널렸다. 농사일로 바쁜 어른들이 방목하는 심심한 아이들에겐 자연 놀잇감이다. 그들을 까맣게 잊고 살았다.

전쟁을 멈춘다. 손엔 농촌진흥청이 발간한 "잡초 관리 길잡이", "전략가, 잡초"란 책이 들려있다. 맹목적인 싸움을 하며 연전연패를 한 이유를 깨닫는다. 그들은 잡초성과 휴면 성질을 바탕으로 놀라울 정도로 진화한 식물이다. 꽃의 색에도 다 의미가 있다. 봄철의 노란 꽃들은 "꽃등에"를 불러 꽃가루를 옮기게 한다. 광대나물꽃의 보라색은 밀 표로 "꿀벌"을 부른다. 생존을 위한 과학적 진화이다. 잡초 생태학이 이렇게 흥미를 끌 줄 몰랐다. 시골살이의 묘미가 되어 하루하루가 새롭다.

"잡"이란 의미를 되뇌어본다. 조잡, 번잡, 잡일, 잡음, 잡동사니, 우리가 흔하게 쓰는 말들이다. 자질구레하면서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잡초는 중요하지는 않지만, 많이 있는 풀이라는 뜻이다. 나쁜 풀이란 의미는 내포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아직 그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식물이라 한다.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그들의 노고는 다양하다. 가치를 아는 이는 시(詩)를 짓기도 한다. 인정받지 못한, 거칠고 험난한 삶을 위로해주듯이.

이전엔 잡초였다는 잔디는 보드라운 살 속에 찾아드는 무엇이든 품어준다. 꽃이든 잡초이든 가리지 않는다. 자신의 영역을 조여오는 침입자 일지라도 받아들인다. 혹여 자신이 사라지는 꼴이 되리란 것을 잔디가 모를 리 없다. 마당의 식물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과도 닮았다.

누구는 환삼덩굴처럼 까칠하게 기어올라 싫고, 누구는 땅 빈대처럼 들러붙어 멀리하고, 누구는 강아지풀처럼 간들거리는 간사함이 싫다며 이유를 잡다하게 붙인다. 어울리지 못하는 편협함이 자주 고립을 만들곤 한다. 내면 깊게 얽힌 뿌리가 갯잔디처럼 태양 빛에 드러난다. 녹색은 항상 이로움이어야 한다고 믿었던 편견과 독선이 설득력을 잃고 만다. 사람의 다양한 색깔에서 느껴왔던 불편한 심기들을 마당잔디처럼 풀어버린다.

**악장제거무비초(惡將除去無非草), 호취간래총시화(好取看來總是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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