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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매일시니어문학상] 논픽션 수상작-전시를 안내하는 시간/ 이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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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매일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부문 당선자 이재용 님.
2026 매일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부문 당선자 이재용 님.

프롤로그 〈전시를 안내하는 시간〉

도슨트 해설 시간 10분 전이었다. 나는 목에 마이크를 걸고 얼굴에 투명 테이프로 장비를 고정한 뒤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복장을 다시 한번 가다듬고 거울을 쳐다보았다. 익숙해졌다고는 하지만, 해설을 앞둔 시간이면 늘 긴장이 찾아왔다. 오후 2시 해설은 관람객이 가장 많은 시간대다. 전시장 입구로 들어서자 이미 몇몇 관람객이 해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을 보는 순간 마음속에 다시 설렘이 피어올랐다.

도슨트는 단순히 작품에 대하여 해설하는 역할에 머무르지 않는다. 작품과 관람객 사이에 이해의 다리를 놓는 스토리텔러이다. 관람객들은 앞으로 내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림 한 점 뒤에는 한 사람의 삶이 있고, 기법이 있고, 한 시대의 역사와 고뇌가 숨어 있다는 것을.

전시 해설 일정이 있을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퇴직한 이후에도 새로운 것을 배워 가면서, 새로운 역할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렇지만 내가 처음부터 도슨트였던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은 한 통의 문자메시지에서 시작되었다.

〈시민도슨트로 활동하기까지〉

1. 새로운 문을 열다.

2024년 9월 20일이었다. 휴대전화에 한 통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경주예술의전당 알천미술관 도슨트 양성교육 수강생 모집'

그 무렵 나는 새로운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2021년 2월 영어교사로 정년퇴직한 뒤에도 나는 배움을 멈추지 않았다. 경주 토함산 자락에 있는 동리기념관에서 운영하는 동리목월문예창작대학에 다니며 시와 수필, 소설 쓰는 법을 공부했다. 문우들과 함께 글을 쓰고 토론하며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했다. 그런 문예대학이 2024년 문을 닫게 되었다. 익숙했던 배움의 공간이 사라지면서 마음 한편이 허전했다. 무엇인가를 해야 했다.

봄과 여름 동안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치매예방인지놀이지도자 자격증도 땄다. 위덕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타로상담사 과정을 수료해 1급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배움은 즐거웠지만 어딘가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배운다는 수동적인 위치에서 벗어나 내가 평생 해온 일과 연결되면서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었다. 길을 걸으면서 현수막을 유심히 살펴보기도 하였다. 혹시 나와 인연이 닿을만한 일이 있을까 싶었다. 그때 찾아온 것이 바로 도슨트 양성교육 안내 문자였다.

'도슨트.' 낯선 단어였다. 나는 곧바로 인터넷 검색창을 열었다.

"도슨트는 라틴어 'docere(가르치다)'에서 유래한 말로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관람객에게 전시품을 설명하는 안내인을 말한다."

설명을 읽는 순간 여러 기억이 떠올랐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방문하면서 해설사의 설명을 들은 적이 있었다. 작품만 보았다면 지나쳤을 것들을 해설사는 생생한 이야기로 되살려냈다. 그럴 때마다 그들의 해박한 지식과 전달력에 감탄했었다.

나는 그들을 부러워했다. 어떻게 저런 지식을 쌓았을까. 어떻게 저렇게 자연스럽게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 세계가 내 것이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기회가 온 것이다.

교육 기간은 10월 24일부터 12월 5일까지. 모집 인원은 단 30명. 그리고 '선착순'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순간 긴장했다. 경주예술의 전당 공연 티켓은 몇 분 만에 매진되는 경우가 많았다. 도슨트 양성교육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신청은 10월1일 오전 10시부터 시작이었다.

2. 선착순 1분의 승부

공연이나 강연을 신청해 본 사람이라면 안다.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마감된다는 것을. 특히 경주예술의 전당에서 진행하는 문화 행사는 늘 사람들의 관심도가 높다.

'이 교육도 금방 마감되겠구나.'

나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자기소개서를 미리 작성해 두었다. 메시지에는 없지만 신청서에 분명 간단한 자기소개와 지원 동기를 적는 항목이 있을 것 같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준비가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자기소개서에는 서울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포항에서 영어 교사로 재직하다 정년퇴직한 이야기, 문학과 미술을 향한 관심, 책 출간 경험, 그리고 언젠가 도슨트가 되어 보고 싶었던 마음을 정리해 두었다. 전날까지 몇 번이나 읽어보며 수정했다.

신청 당일. 나는 오전 10시가 되기 10분 전부터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홈페이지 로그인도 미리 해 두었다. 시계만 바라보며 시간을 기다렸다. 10시가 되자 신청 페이지가 열렸다. 나는 준비해 둔 내용을 빠르게 입력했다. 이름, 연락처. 기본 정보. 그리고 자기소개서. 복사해 둔 내용을 붙여 넣었다. 순간 짧은 망설임이 찾아왔다. '제대로 붙여졌는지 다시 한번 읽어볼까?' 1초. 2초. 그러나 나는 그대로 신청 버튼을 눌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선택이 맞았다. 잠시 후 신청 페이지는 마감되었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나는 한동안 모니터를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성공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는 만족감 때문이었을까.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묘한 성취감이 일었다. 준비해 두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정보를 놓치지 않았고, 기회를 발견했고, 미리 대비했다. 결정적인 순간에 망설이지 않았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기회는 잘 찾아오지 않는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사람에게만 보이고, 준비한 사람만이 잡을 수 있다.

그날 나는 그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나중에 딸에게 내가 선정된 과정을 이야기했더니 웃으며 말했다.

"아빠, 그것도 실력이거든요."

3. 도슨트 양성교육 첫날

2024년 10월 24일. 드디어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강당에 들어서자 먼저 출석 확인이 있었다. 연구사가 나누어 준 프린트물 하나를 받아 들고 나는 뒤쪽 자리에 앉았다. 강당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도슨트 양성교육 참가자뿐 아니라 기존 미술사 강좌 수강생들까지 함께 수업을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략 50명은 되어 보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대부분이 여성 수강생이었다. 도슨트 양성과정 참가자 가운데 남성은 사실상 나 혼자였다. 익숙한 경험이었기에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글쓰기, 독서, 그림, 노래처럼 내가 좋아하는 활동들은 늘 여성 참가자가 훨씬 많았다. 문예대학에서 공부할 때도, 위덕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자격증 과정을 수강할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보다는 나는 배움을 위해 모인 이들과 함께 하게 되었다는 것으로 기뻤다. 이들에게는 무언가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 특유의 진지함과 열정이 있었다. 나이를 떠나 성장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수강생들의 연령대는 다양했다. 40대부터 60대까지.

첫날에는 분위기를 살피기 위해 뒤쪽에 앉았다가 다음 수업부터는 가장 앞쪽 중앙 자리를 선택했다. 집중해서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 경주문화재단 대표이사이자 알천미술관 관장이 인사말을 했다. 그는 이번 교육의 취지를 설명하며 말했다.

"무엇보다도 저는 자신이 하는 일에 열정을 가진 사람을 응원합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하나의 단어가 강하게 남았다. 열정.

돌이켜보면 그 단어는 이 교육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기도 했다. 아무도 억지로 오라고 한 사람이 없었다. 모두가 스스로 선택해서 이 자리에 왔다. 배우고 싶어서.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어서. 그 마음이 바로 열정이었다. 곧이어 첫 강의가 시작되었다. 프린트물 첫 장에는 낯선 단어가 적혀 있었다.

'초현실주의.'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앞으로 이 단어가 내 삶에 얼마나 깊이 들어오게 될지 전혀 알지 못했다.

4. 초현실주의와의 만남

수업이 시작되었다. 나는 낯선 문장으로 가득 찬 프린트물을 다시 보았다.

"초현실주의. 순수한 심리적 자동기술(Automatism)로서, 이를 통해 말로든, 글로든, 혹은 그 밖의 어떤 방식으로든 사유의 실제 작용을 표현하는 것."

"이미지는 정신의 순수한 창조물이다…… 병치된 두 현실의 관계가 멀고도 정확할수록, 이미지는 보다 강력해질 것이며- 정서적으로 더 강한 힘과 시적 현실성을 얻게 될 것이다."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자동기술법? 사유의 실제 작용? 이성의 통제가 없는 상태? 병치된 두 현실? 단어 하나하나가 낯설었다. 그때 강단에 선 사람이 경주예술의전당 예술아카데미에서 「클래식 서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는 박파랑 교수였다. 큐레이터이기도 한 그녀는 강의가 시작되자마자 청중을 초현실주의의 세계로 이끌었다. 박 교수의 강의는 열정적이었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녀의 설명을 듣다 보니 초현실주의는 단순한 미술 양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시대정신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사람들은 기존의 가치와 이성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이성과 문명이 전쟁을 막지 못했다는 사실은 예술가들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그 충격 속에서 등장한 것이 다다이즘이었고, 그 연장선에서 초현실주의가 탄생했다.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은 인간 정신의 심층을 탐구하고 미지의 영역을 형상화했다. 이를 통해 기묘하고도 불편할 정도로 생동감 넘치는 이미지를 창조했다. 이를 초현실주의 운동의 주창자인 앙드레 브르통은 '발작적 아름다움'이라 표현했다. 초현실주의는 현실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너머의 세계를 탐구하려 했다.

꿈. 무의식. 상상력. 인간 내면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욕망.

이런 것들이 그들의 관심사였다. 흥미로운 것은 초현실주의가 처음부터 미술운동으로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 초현실주의 주창자인 앙드레 브르통을 비릇한 핵심 인물들 대부분이 시인과 문학가들이었다. 그 사실은 문학을 공부해 온 내게 묘한 친근감을 주었다. 강의를 들으며 나는 막연하게 느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초현실주의는 무의식과 꿈의 세계를 캔버스에 옮긴 것이었다. 박 교수는 앙드레 브르통의 자동기술법에 대하여 설명했다. 그것은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영향을 받아 무의식의 흐름을 검열 없이 기록하는 방식이었다.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적는다. 논리도 구성도 없다. 의식적인 통제도 없다. 그렇게 기록된 무의식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예술적 가능성을 발견하려 했다. 그 설명을 듣는 순간 나는 문학 창작 시간에 배웠던 의식의 흐름이나 자유연상 기법이 떠올랐다. 예술은 분야가 달라도 결국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해가 되는 것과 익숙해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강의가 계속될수록 낯선 이름들이 쏟아져 나왔다.

피에르 르베르디, 조르조 데 키리코. 막스 에른스트. 만 레이. 앙드레 마송. 장 아르프. 이브 탕기. 르네 마그리트. 호안 미로. 피카소.

이중 호안 미로와 피카소만 익숙한 이름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처음 듣는 화가들이었다. 작품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풍경. 꿈속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이미지. 이해하기 어려운 상징들. 솔직히 혼란스러움의 연속이었다. '도대체 이 그림들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기법 역시 생소했다.

자동기술법. 콜라주. 프로타주. 데칼코마니. 그라타주. 데페이즈망. 오브제

수업 시간에는 이해한 것 같았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금세 희미해지고 막연했다. 도슨트가 되려면 이런 용어들과 화가들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3주 동안 이어진 강의는 나에게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어 주었다. 동시에 내가 얼마나 모르는 것이 많은지도 알려 주었다. 수업이 끝날 무렵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강의를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스스로 공부해야 했다.

5. 낯선 세계를 공부하다

며칠 뒤 나는 위덕대학교 도서관을 찾았다. 초현실주의와 관련된 책들을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책장을 뒤적이며 관련 서적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 포항시립미술관 1층에 있는 작은 도서실을 알게 되었다. 그곳은 내게 보물창고와 같았다. 서가마다 미술 관련 서적이 가득했다.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를 소개하는책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며칠에 걸쳐 몇 시간씩을 보내곤 했다. 읽고, 메모하고, 읽고, 메모하고, 다시 읽고, 또 메모했다. 이해가 되지 않는 용어는 반복해서 찾아보았다. 집으로 돌아오면 유튜브를 통해 화가들의 삶을 공부했다. 헬스장에서도 러닝머신 위에 올라 영상을 틀어 놓았다. 화가들의 삶은 놀라울 정도로 극적이었다.

전쟁. 사랑. 가난. 광기. 상실. 그리고 창작

그들의 인생은 한 편의 소설 같았다. 어느 순간부터 작품보다 화가의 삶이 먼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사람이 어떤 시대를 살았는지. 무엇을 사랑했고 무엇을 두려워했는지. 그것을 알게 되면 작품도 달리 보였다. 도슨트는 결국 작품만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다. 작품 뒤에 숨어 있는 인간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를 계속할수록 머릿속에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조금씩 연결되기 시작했다. 초현실주의가 무엇인지. 왜 그런 그림을 그렸는지. 그들이 무엇을 표현하려 했는지.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퇴직 후에도 나는 여러 가지를 배워 왔다. 하지만 이렇게 몰입해 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서 열리고 있었다. 얼마 뒤 나는 그 세계로 더 깊이 들어가게 되었다. 실습 작품 한 점이 나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6. 레오노라 캐링턴을 만나다

도슨트 양성교육이 중반에 접어들면서 실습 일정이 공지되었다. 6주 차에는 각자 한 작품을 맡아 도슨트 시연을 해야 했다. 수강생들은 모두 긴장하고 있었다. 강의를 듣는 것과 실제로 사람들 앞에 서서 설명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실습 작품은 4주 차 수업 시간에 배정되었다. 연구사가 안내 사항을 설명하는 동안 보조 진행요원들이 수강생들 책상 위에 컬러로 인쇄된 작품 한 점씩을 올려놓았다. 모든 사람이 서로 다른 작품을 받았다. 내 앞에 놓인 작품은 르네 마그리트의 「세기의 전설」이었다. 수업 시간에 이미 한 차례 설명을 들었던 작품이었다. 낯설기는 했지만 어디서부터 준비해야 할지 전혀 감이 없는 상태는 아니었다. 그때 옆에 앉아 있던 지인이 내 그림을 힐끗 바라보더니말했다.

"이거 저하고 바꾸실래요?"

그러고는 내 대답을 기다리기도 전에 책상 위의 내 그림을 가져가고 자기 작품을 내 쪽으로 밀어 놓았다. 순간 약간 당황스러웠다. 왜 바꾸려는지 이유는 묻지 않았다. 어차피 어떤 작품이든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세요."

그렇게 해서 내 앞에 놓인 작품이 바뀌었다. 새로 내게 주어진 작품은 레오노라 캐링턴의 「막스 에른스트의 초상」이었다. 그 순간만 해도 나는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게 될지 전혀 알지 못했다. 수업 시간에 자세히 다루지 않았던 작품이었다. 작가 역시 낯설었다. 솔직히 말하면 상대방의 지나친 행동에 불쾌감도 약간 있었다. 이미 설명을 들었던 작품이 훨씬 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그 작품 교체는 내게 뜻밖의 선물이 되었다.

7. 작품 속으로 들어가다

집으로 돌아와서 나는 작품을 다시 바라보았다. 처음 본 인상은 당혹스러움이었다. 털로 덮인 꼬리가 달린 빨간 코트를 걸친 기이한 인물. 그 뒤의 얼어붙은 하얀 말. 황량한 배경.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상징들. 무엇을 말하려는 그림인지 쉽게 알 수 없었다. 도슨트가 되려면 작품을 설명해야 하는데 정작 나 자신부터 그림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스코틀랜드 미술관 홈페이지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곳에는 작품 설명과 작가 정보가 정리되어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또 하나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많은 미술관이 소장 작품과 해설 자료를 온라인으로 공개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후 나는 국내외 미술관 홈페이지를 자주 활용하게 되었다. 도슨트 공부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작가를 알아야 했다. 그리고 곧 깨달았다. 이 작품은 레오노라 캐링턴과 막스 에른스트의 관계를 알지 못하면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두 사람의 삶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1937년 런던. 스무 살의 여성 조각가이자 화가. 레오노라 캐링턴은 마흔여섯 살의 초현실주의 기수인 막스 에른스트를 만난다. 나이 차이가 무려 스물여섯 살이었다. 게다가 에른스트는 이미 결혼한 상태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즉각 서로에게 강하게 끌렸고 곧 연인이 되었다. 그들은 파리에서 함께 생활하며 초현실주의 예술가들과 교류했다. 둘은 서로의 예술 세계에 깊은 영향을 주고받았다.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에른스트는 독일인이라는 이유로 프랑스 당국에 의해 수용소에 갇혔다. 캐링턴은 프랑스를 떠나야 했다. 연인과 갑작스러운 이별은 그녀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극심한 정신적 고통 속에서 정신병원에 수용되기도 했다. 이후 그녀는 멕시코로 건너가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나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점점 작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처음에는 알 수 없던 상징들이 조금씩 의미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에른스트가 들고 있는 작은 등불. 그 안에 들어 있는 말. 황량한 풍경. 붉은 의상. 모든 것이 우연히 배치된 게 아니었다. 그림은 단순한 초상화가 아니라 한 여성의 사랑과 상실. 자유와 불안을 자신의 무의식 속에서 다시 그려낸 기록이었다. 그제야 초현실주의가 말하는 무의식의 세계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8. 우연이 준 선물

공부를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작품이 바뀐 것을 아쉬워했다. 거절하지 못한 나의 나약함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생각이 달라졌다. 만약 처음 배정받았던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을 그대로 맡았다면 어땠을까. 물론 조금 더 편하게 준비했을 것이다. 그러나 레오노라 캐링턴이라는 화가를 이렇게 깊이 공부하게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막스 에른스트의 삶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사랑과 예술. 그리고 전쟁이 남긴 상처까지. 나는 이 작품 하나를 통해 초현실주의를 훨씬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이후 다른 작가들도 더 깊이 알려고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인생에는 그런 순간이 있다. 처음에는 손해라고 생각했던 일이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더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 당시에는 몰랐지만, 시연 작품이 바뀐 사건은 내게 그런 경험 가운데 하나였다.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그날 내가 "바꾸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지금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내게 주어진 작품은 「막스 에른스트의 초상」이었고, 나는 그 작품 덕분에 초현실주의 세계를 훨씬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9. 첫 발표, 그리고 "아, 망해 버렸다"

실습 발표일이 다가왔다. 그 무렵 오래전부터 계획된 아내와의 해외여행이 있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발표까지 남은 시간은 겨우 이틀이었다. 자료를 찾고 작가를 공부하며 작품을 이해하려 노력했으나 머리에 모든 내용이 완전히 자리 잡힌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어떻게든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발표 당일.

강의실에 들어서자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평소 함께 수업을 듣던 수강생들이었지만, 이날만큼은 모두가 평가를 받는 시간이었다. 연구사가 실습 진행 방법과 순서를 이야기했다. 발표 시간은 5분. 실제 도슨트처럼 작품을 소개하고 해설하면 되었다. 내 차례가 오기 전 세 명의 수강생이 먼저 발표했다. 그들은 작은 메모지를 들고 있거나 휴대전화를 참고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실습 안내문에도 간단한 메모는 보고 해도 허용된다고 적혀 있었다. 나는 주머니 속 메모지를 만지작했다. 가져갈까. 그냥 나갈까. 순간 망설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무것도 들지 않고 나가야 할 것 같았다. 교사 생활을 하며 학생들 앞에 수없이 서 보지 않았던가. 내 이름이 불렸다. 결국 나는 메모지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빈손으로 앞으로 걸어 나가 마이크를 잡았다. 갑자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아직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제야 몸이 먼저 알아차린 것 같았다. 나는 스크린에 올려진 작품 앞에 섰다. 그리고 인사를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시민도슨트 이재용입니다."

처음은 무난했다. 작가 소개도 했다. 막스 에른스트와 레오노라 개링턴의 관계도 설명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머릿속에 저장해 두었던 단어들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프로타주. 그라타주. 데칼코마니. 무의식. 초현실주의.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던 용어들이 갑자기 낯선 얼굴로 나타났다. 기억을 더듬어야 했다. 말과 말 사이에 아주 짧은 공백이 생겼다. 머릿속에서 필사적으로 다음 문장을 찾고 있었다. 한 문장을 말하면 다음 문장이 떠오르지 않는다. 간신히 문장을 떠올리면 이어지는 문장이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안간힘을 써서 기억을 끌어올렸다. 보는 이들이 눈치챘을 것 같았다. 어떻게든 끝까지 가야 했다. 다행히 발표는 중단되지 않았다. 준비한 내용은 모두 말했다. 시간도 맞췄다. 하지만 내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발표가 끝나자 박수 소리가 들렸다. 연구사도 수고하셨다고 말했다. 수강생들도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순간 내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어오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생각만 맴돌고 있었다.

'망쳤다.'

나는 내가 준비한 만큼 보여주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작품도 이해했고 자료도 충분히 조사했다. 그런데 정작 사람들 앞에서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전달하지 못했다. 준비한 것을 제대로 꺼내지 못한 것이다. 부끄러웠다. 발표가 끝난 뒤 강의실 밖으로 나왔다. 복도를 걸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 망쳐 버렸다."

그 말은 누구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스스로에 대한 실망이었다. 작품이 바뀌었던 일도 떠올랐다. 준비 시간이 부족했던 것도 생각났다. 메모지를 들고 나가지 않은 것도 후회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조금씩 다른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발표를 망친 이유는 작품 때문이 아니었다. 준비 시간이 부족해서도 아니었다. 메모지가 문제가 아니었다. 암기의 문제가 아니라 체화의 문제였다. 결국은 내 자신의 문제였다.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감만 믿고 나간 것이다. 진짜 아는 것은 긴장해도 나오지만, 덜 익은 지식은 긴장 앞에서 숨어버린다. 그날 나는 그것을 뼈저리게 배웠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실패가 훗날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 실습 발표 이후 실제 시민도슨트로 활동하게 되었을 때 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작품 하나를 설명하기 위해 수십 번, 수백 번 스크립트를 읽었다. 작가의 생애를 공부했고 시대적 배경을 찾아보았다. 용어 하나도 모호하게 넘기지 않았다. 실습 발표 날의 부끄러움이 나를 공부하게 만들고, 결국 관람객들 앞에서 자신감 있게 설 수 있게 해 주었다. 돌이켜보면 그날의 실패는 실패가 아니었다. 도슨트가 되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였다. 그리고 나는 그날 깨달았다. 아는 것과 설명하고 전달하는 것은 전혀 다른 능력이라는 사실을.

10. 뜻밖의 선정 통보

7주간의 교육과 실습은 12월 5일 끝났다. 며칠 동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발표 장면이 자꾸 떠올랐다. 좀 더 준비할 수 있었는 데. 메모지만 들고 나갔어도 됐는데. 왜 괜한 자신감을 부렸을까. 생각은 늘 같은 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실망한 채 일상으로 돌아왔다. 도슨트 활동은 아마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을 접고 있었다. 실습 발표에서 내가 보여준 모습은 스스로 만족할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이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알천 미술관에서 보내온 메일이었다. 메일을 열어본 순간 나는 잠시 눈을 의심했다. 초현실주의 특별전 안내와 함께 시민도슨트 활동 일정이 담겨 있었다. 그 아래에는 전시작품 목록과 활동 안내가 첨부되어 있었다. 한동안 화면을 바라보았다. 잘못 온 메일인가 싶었다. 다시 읽어봤다. 분명히 시민도슨트 인력풀 선정 안내였다. 순간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환호했다. 포기하고 있었던 기회가 뜻밖에 찾아온 것이다. 실습 발표를 마친 날의 부끄러움이 한순간에 떠올랐다.

"아, 망쳐 버렸다."

강의실을 나오며 했던 그 말이 생각났다. 그런데 나는 버린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시작점에 서 있었다. 연구사는 신분증 사본과 통장 사본, 근무 가능 일정을 보내 달라고 했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정말 도슨트로 활동하게 된 것이다. 한동안 기분이 묘했다. 누군가가 내 가능성을 인정해 준 것 같았다. 부족함만 보았던 나와 달리, 그들은 나의 열정과 성실함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나는 바로 답장을 작성하여 감사한 마음을 표현했다.

"연구사님, 안녕하세요. 이재용입니다. 알천 미술관 시민도슨트 인력풀에 선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발표 때는 제 자신이 만족하지 못할 정도로 부족함이 많아 부끄러운 마음이 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기회를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작품을 더욱 철저히 공부하고 자기 관리에도 최선을 다하여 관람객들에게 도움이 되는 시민도슨트가 되겠습니다."

11. 새로운 시작

12월 초 경주예술의전당 알천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 일정이 공개되었다.

『초현실주의, 100년의 환상;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 특별전』 거장들의 대형 원화 특별전 단독개최. 전시일정은 2024년 12월 24일부터 2025년 5월 11일까지

미술관에서는 배출된 시민도슨트들이 입구에서 출구까지 작품 해설을 위한 동선을 예상하고 스탠딩 포인트를 잡을 수 있도록 현장 투어를 한 번 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전시장 내부와 전시된 모든 작품을 관람객들보다 먼저 보고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의 첫 활동일은 2025년 1월 4일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실제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을 만나는 일이었다.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스크립트를 작성하고 제출하는 일이었다. 연구사는 활동 시작 3일 전까지 스크립트를 제출해 달라고 했다. 기준은 30분 해설이었다. 수업 시간에 다루었던 초현실주의 작품 가운데 대표 작가를 선별해서 주요 작품 12점에서 15점까지를 설명하면 되었다. 나는 자료를 다시 펼쳤다. 실습 발표 때 공부했던 내용에 새로운 자료들을 덧붙였다. 작가의 생애를 정리하고 작품의 기법과 작품이 탄생한 배경을 조사했다. 작품 하나를 이해하기 위해 작가의 인생 전체를 들여다보는 일도 많았다. 그 과정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마치 새로운 세상을 탐험하는 느낌이었다. 며칠 동안 집중해서 선정한 작품 해설 순서에 따라 스크립트를 완성하여 이메일로 원고를 제출했다. 연구사의 답장을 받았다.

"선생님, 정성껏 써 주신 스크립트 잘 읽어보았습니다. 너무 고생하셨네요. 이대로 해 주시면 부족함이 없을 것 같습니다."

짧은 글이었지만 큰 힘이 되었다. 실습 발표 이후 조금 흔들렸던 자신감이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한 가지뿐이었다. 전시장에 서는 일. 관객들 앞에서 내가 공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본격적으로 연습을 시작했다. 실습 발표 때의 아쉬움을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작품 하나하나를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스크립트를 읽고 또 읽었다. 이 반복된 연습은 훗날 관람객들 앞에서 자유롭게 작품을 해설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12. 첫 시민도슨트 활동

2025년 1월 4일. 도슨트 해설 시간이 되기 10분 전. 나는 목에 마이크를 걸고 투명 테이프로 헤드셋을 고정했다. 준비해 온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복장을 다시 정리하고 거울 앞에 섰다. 자켓은 단정한가. 명찰은 잘 보이는가. 마이크 상태는 괜찮은가. 하나씩 확인한 뒤 전시장 안으로 향했다. 그동안 수없이 연습했다. 작품을 외우고 또 외웠다. 집의 거실에서 방의 벽까지 작품 사진을 나란히 붙여 놓고 실제 전시장처럼 걸어 다니며 연습하기도 했다. 다른 미술관의 도슨트를 찾아다니며 배웠고, 카페에서 지인들을 상대로 연습도 했다. 그런데도 막상 그 순간이 오자 긴장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전시장 입구에는 이미 몇 명의 관람객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지 기대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묘한 설렘이 밀려왔다. 이제 내가 그들을 안내해야 한다. 그동안 공부한 모든 것들이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다. 해설 시간이 다가오면서 다양한 연령대의 관람객들이 공간을 꽉 채웠다. 그들은 가족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고, 연인일 수도 있었다. 1,2분 정도 스몰 토킹을 주고받다가 시간이 되자 정식으로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시민도슨트 이재용입니다."

관람객들의 박수 소리에 미소로 답한 뒤 이번 전시기획 의도를 간단히 이야기하였다. 이어 준비했던 초현실주의 등장 배경을 설명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예술가들이 무엇을 고민했는지. 그들이 왜 무의식과 꿈의 세계에 주목하게 되었는지. 관람객들은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내 설명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했다. 혹시 지루해하지 않을까. 너무 어렵지는 않을까. 하지만 작품 앞에서 이야기가 시작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관람객들은 호기심에 가득 찬 표정으로 나의 해설을 들었다. 레오노라 캐링턴과 막스 에른스트의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관람객들의 집중도는 한층 높아졌다. 전쟁으로 인해 헤어져야 했던 연인의 이야기에 공감했다, 기이한 초현실주의 작품 속 상징 장치를 설명하면 고개를 끄덕였다. 호안 미로의 '모성'이라는 추상화를 해설할 때는 관람객이 반응할 수 있는 질문을 주고받기도 하였다. 어떤 작품 앞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하였다. 자코메티와 호안 미로의 조각품 앞에서는 모두가 작품을 더 자세히 살펴보기도 하였다.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도슨트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작품과 관람객 사이를 연결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작가가 작품에 담아 놓은 생각과 감정을 관람객에게 전해 주는 역할이라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관람객과 나의 일체감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빛은 낯선 그림으로만 보였던 작품들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한 듯했다. 어떤 관람객은 메모를 하기도 하고, 어떤 관람객은 질문을 하기도 하였다. 도슨트 해설이 끝난 뒤 한 관람객이 다가와 말했다.

"너무 재미있었어요.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그 한마디가 내 마음에 오래 남았다. 몇 달 동안 공부하고 연습했던 시간이 떠올랐다. 실습 발표를 마치고 강의실을 나오며 했던 말도 생각났다. 그때는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경험이 있었기에 더 철저히 준비할 수 있었다. 첫 시민도슨트 활동은 무사히 잘 끝났다. 전시장을 나서는 관람객들이 로비에 있는 나를 보고 감사하다며 인사를 했다. 나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잘 감상하셨어요?" 그리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바로 이것이었구나.' 작품을 보고 이해하게 하는 일, 누군가에게 새로운 시선을 선물하는 일. 사람들이 미술 전시장을 찾으면서 삶을 보다 풍요롭게 느끼도록 하는 일. 그것이 내가 도슨트 활동을 하며 느끼게 된 가장 큰 보람이었다. 첫 해설이 끝났지만 오히려 그 순간부터 진짜 도슨트 생활은 시작되고 있었다.

13. 예상치 못한 상황

도슨트 활동을 하면서 가장 큰 즐거움은 작품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관람객들의 반응은 늘 달랐다. 어떤 사람은 작품 앞에서 조용히 듣기만 했다. 어떤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또 어떤 사람은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역사적 배경을 묻는 사람도 있었고, 화가의 삶에 대해 더 궁금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창작 기법에 관심을 가진 이들도 있었다. 세상에는 다양한 시선이 있으며, 같은 작품이라도 관람객들의 관심은 다양하게 뻗었다. 그럴 때면 나 역시 긴장했다. 준비한 해설보다 더 깊은 이야기를 간단하게 설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질문은 늘 반가웠다. 그만큼 전시 작품을 잘 감상하고 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관람객들의 눈빛은 저마다 다른 것 같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새로운 것을 알고 싶어하는 호기심이었다. 나는 관람객들의 그 호기심을놓치지않으려고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위기가 한 번 있었다. 그날은 조금 특별한 날이었다. 내가 취미활동으로 하는 어반스케치 동아리 회원들이 전시를 보러 오기로 되어 있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온다는 사실에 은근히 긴장되었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내 소개를 하고 해설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한 일이 생겼다. 갑자기 입안이 바짝 말라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잠시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혀가 입천장에 달라붙는 느낌이 들었다. 말이 부자연스러워졌다. 발음도 조금씩 꼬이는 것 같았다. 순간 당황했다. 도슨트에게 목소리는 가장 중요한 전달 도구다. 이 도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설명을 잠시 멈추고 관람객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바로 옆 입구 쪽에 있는 물을 급히 마셨다. 천천히 숨을 고르고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다행히 조금씩 목소리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중간에 한 번 더 비슷한 증상이 있었지만 해설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관람객들은 끝까지 집중해서 들어 주었다. 큰 문제가 된 것은 아니었지만 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특히 나를 보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았다. 해설을 마친 뒤 로비로 나왔다. 스스로에게 약간 화가 나 있었다. 왜 그런 일이 생겼을까. 왜 하필 오늘이었을까.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동아리 회원들이 전시장에서 나왔다. 모두 수고했다며 덕분에 좋은 구경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나는 갑자기 혀가 말라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꺼냈다. 그러자 한 회원이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너무 긴장해서 그런 것 아니에요? 우리를 보고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문득 깨달았다. 긴장. 맞는 말이었다. 그날은 평소와 달랐다. 전시장 안에는 내가 잘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단순한 관람객이 아니었다. 나를 응원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어쩌면 나는 무의식적으로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실수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긴장이 입안을 말려 버린 것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원인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이후부터는 해설 시작 전 반드시 충분한 물을 마셨다. 입안이 건조한 상태가 되지 않도록 목 상태를 확인하고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작은 습관이었지만 큰 도움이 되었다. 신기하게도 이후에는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날의 위기는 꼭 필요한 경험이었다.

도슨트는 작품만 공부해서 되는 일이 아니었다. 깔끔한 복장과 단정한 외모도 중요하고, 자기의 몸 상태를 잘 관리하는 것도 필수 조건이었다. 발성은 괜찮은지. 목 상태는 어떤지. 호흡은 안정적인지. 관람객의 반응은 어떤지. 이 모든 것이 해설의 일부였다. 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할 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수업은 교과서만 안다고 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의 반응을 읽어야 하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도 대응해야 한다. 도슨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위기는 나를 더 준비하게 해 주었다. 더 나은 도슨트가 되도록 가르쳐 주었다. 그날 이후 내 자신의 건강과 목소리를 잘 관리하며서 관람객들과 함께 작품을 바라보고, 함께 호흡하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도슨트가 되려고 노력했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이었는지도 모른다.

14. 관람객이 남긴 선물

도슨트 활동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그림이 아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오래 남은 것은 관람객들이었다. 전시장에는 혼자 온 사람도 있었고, 연인이나 친구와 함께 온 사람도 있었다. 방문 이유는 다르겠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었다. 나는 그들의 호기심에 응답하고 싶었다. 그래서 정해진 해설 시간 외에도 가능한 한 질문에 답하려고 노력했다. 어느 날 오전 해설을 마친 뒤 한 관람객이 다가와 말했다.

"해설 시간을 놓쳤는데 작품 설명을 들을 수 있을까요?"

내 일정은 이미 끝난 상태였다. 그러나 작품을 이해하고 싶어 하는 진심이 느껴졌다. 나는 그 한 사람을 위해 다시 작품 앞에 섰다. 전시장을 함께 걸으며 주요 작품들을 설명했다. 약 20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 오히려 한 사람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어 특별한 즐거움이 있었다. 설명이 끝나자 그는 환한 미소로 감사 인사를 했다. 그 모습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연인이나 소규모 모임이 따로 설명을 부탁하는 경우도 있었다. 공식 해설 시간이 아니면 명찰을 잠시 빼고 함께 작품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시장을 거닐며 자연스럽게 작품과 작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관람객들은 전시장을 떠나며 진심 어린 감사의 말을 남겼다. 그럴 때마다 생각했다. 도슨트는 단순히 작품을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존재가 아닐까. 예술을 매개로 낯선 이들과 짧지만 깊은 여운을 남기는 그런 관계가 아닐까. 가장 기억에 남은 순간은 관람객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였다. 전시장을 나와 1층으로 내려가는 짧은 시간, 여러 사람이 타고 있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 관람객이 나에게 엄지척하고 말했다.

"오늘 정말 최고였습니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울림은 컸다.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감사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하지만 그들이 떠난 뒤에도 그 말은 오래도록 귓가에 남아 있었다. 마치 세상을 다 얻은 듯한 충만감이 밀려왔다. 교사 시절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수업을 들은 학생들이 재미있었다고 말해 줄 때의 기쁨이었다. 내가 공부한 것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내가 전한 이야기가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는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큰 행복이었다. 관람객들은 내 입을 바라보며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그 눈빛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더욱 마음을 가다듬었다. 도슨트는 작품의 의미와 작가의 삶, 시대의 이야기를 전하지만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기억하는 것은 정보만이 아니었다. 그날의 분위기와 감동, 작품 앞에서 얻게 되는 작은 깨달음이었다. 나는 그것을 선물하고 싶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더 큰 선물을 받은 사람은 관람객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호기심 어린 눈빛, 집중하는 모습, 감사의 인사, 그리고 "최고였습니다"라는 한마디. 그것들이 내가 받은 가장 값진 보상이었다. 도슨트 활동은 작품을 해설하는 가운데,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예술을 경험하는 일이었다. 관람객들은 전시장을 떠났지만, 그들이 남긴 따뜻한 말과 표정은 지금도 내 마음속에 오래 머물러 있다.

에필로그 〈도슨트 활동이 내게 가르쳐 준 것〉

시민도슨트 활동을 하면서 나는 미술보다 더 중요한 것을 배웠다. 처음에는 도슨트로 활동하기 위해 초현실주의를 공부하면서 시작했다. 낯선 화가들의 이름을 외우고, 작품의 기법과 의미를 이해하며, 작가가 살았던 시대를 공부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 수록 내가 배우고 있었던 것은 미술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삶을 대하는 태도였다. 돌이켜보면 도슨트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선착순 모집에 신청하기 위해 긴장했던 순간, 생소한 초현실주의를 공부하던 시간, 외워도 쉽게 기억되지 않는 화가들의 이름, 실습 발표 때의 아쉬움, 그리고 첫 해설을 앞두고 반복했던 수많은 연습. 그 모든 과정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했다. 사람은 배우기를 멈추지 않는 한 살아 있다는 것이다. 나는 교사로 정년퇴직했다. 많은 사람이 퇴직을 인생의 마침표처럼 생각하지만, 내게 퇴직은 새로운 시작이었다. 학교를 떠났을 뿐 배움은 끝나지 않았다. 시와 수필, 소설 작법을 공부했고 그림을 배웠다. 여러 가지 자격증 시험에도 도전했다. 그러다가 도슨트 활동을 통해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 나는 다시 학생이 되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모르는 것을 알아가며, 호기심을 가지고 움직이는 사람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사람을 성장시키는 힘은 재능보다 호기심에 가까운 것 같다. 궁금하므로 찾아보고 공부한다. 궁금하므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에 도전한다. 호기심은 사람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다. 그리고 그 호기심을 지속시키는 힘은 열정이다. 도슨트 활동을 하며 만난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나이와 하는 일은 달랐지만 모두 배우고자 하는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전시장을 찾고, 강의를 듣고, 질문하고, 스스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모습은 아름다웠다.

작품은 작가가 만들지만 관람객과 만날 때 비로소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도슨트도 마찬가지다. 관람객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나는 또한 관람객들의 눈빛을 통해 배우고, 질문을 통해 공부하고, 반응을 통해 성장했다. 어쩌면 내가 관람객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를 성장시켜 준 것인지도 모른다. 경주예술의전당 알천미술관에서 도슨트로 활동한 시간은 모두 내게 특별한 선물이었다. 예술을 매개로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는 일은 퇴직 이후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 무엇보다 나는 삶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배움에는 정년이 없다. 호기심에도 나이 제한은 없다. 새로운 세계를 향해 걸어가는 사람은 언제나 젊다. 이제 나는 안다. 우리의 삶을 건강하게 지탱해 주는 것은 호기심과 열정, 그리고 목적의식이라는 것을.

오늘보다 조금 더 배우고, 어제보다 조금 더 성장하며,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 그 마음이 있는 한 사람은 늙지 않는다. 도슨트 활동은 내게 미술을 가르쳐 준 것이 아니다. 삶을 대하는 자세를 다시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새로운 전시를 찾아가고, 새로운 책을 펼치고, 새로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배우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퇴직 이후 내가 발견한 가장 값진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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