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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매일시니어문학상] 논픽션 수상작-천상으로의 비행/ 박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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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매일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부문 당선자 박희곤 님.
2026 매일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부문 당선자 박희곤 님.

1. 프롤로그

인간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궤도를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다.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 이치는 누구도 비켜 갈 수 없는 생사의 질서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승에서 살다 천상으로 갈 때는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다는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는 말이 인생에 진리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재물이나 명예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고, 베풀며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가 직접 체험한 바에 의하면 사람이 죽어서 천상인 저승으로 갈 때는 유형의 재산은 가져갈 수 없지만, 무형의 재산은 가져갈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 체험하게 되었다.

그 일은 내가 B대학교병원 흉부외과에서 심장 수술업무를 36년간 근무하다 정년 퇴임을 한 뒤, 전원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다.

퇴임 후, 노년에 삶은 치열한 경쟁에서 벗어나 나만의 목가적인 삶을 누리고 싶었다. 솔직한 심정은 무엇보다 피를 말리는 수술의 긴장에서부터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텃밭에 채소나 키우며, 책도 읽고 등산도 하며 내 인생을 관조하며 생활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목가적인 전원생활을 이어 가던 중 어느 날이었다. 평소, 당뇨라는 지병이 있었지만, 지속적인 기침과 전신 피로감이 찾아왔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집 근처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았다. 단순한 감기일 것이라 짐작했지만, 예상과 달리 간암이란 진단이 내려졌다.

내가 암이라니 믿을 수 없었다. 암은 갑자기 예고도 없이 찾아와 내 영혼에 집을 부수고 들어와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지금까지 지탱해 온 내 인생이 산산조각이 나는 느낌이었다.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평생, 다른 사람의 질병을 치료하고 환자를 돌보던 나였다. 그런 내가 암에 걸려 치료의 대상이 되고, 내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실로 견디기 어려운 공포였다.

나는 직업적으로 수많은 죽음을 보아 왔다. 내가 치료하던 환자에게 사망 선고를 내렸던 일도 다반사였다. 그럼에도 정작,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아이러니했고 말문이 막혔다. 하늘이 빙글빙글 돌았다. 두려움과 공포가 내 머리를 내려쳤다.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갈까. 미국으로 갈까. 아니면 친구들이 많이 있는 일본으로 가서 수술받을까.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수많은 갈등과 혼돈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내가 가지고 있던 의학적 지식과 직업적 경험은 그 순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우선 내가 근무했던 B 대학병원으로 가서 정밀검사를 받았다. 초음파 검사와 CT 촬영 그리고 피 검사 등 여러 가지 검사를 시행했다. 검사 결과는 B형 간염으로 인한 간암이었다. 간경화도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다. 간암의 형태는 중등도 이상의 악성 종양이 두 개나 발견된 상황이었다.

간암을 확진 판정을 받고 나니 내 정신상태는 공황에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불안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두려움은 마치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두려움은 텅 빈 머릿속을 허허둥둥 떠다니며 어찌 할 바를 몰랐다.

간 내과 담당 교수와 소식을 들은 동료들은 다행히 간 이식까지는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특히, 36년 동안 함께 동고동락했던 병원장은 우리 병원의 간 수술 실적은 어느 병원에도 뒤지지 않는다며, 이곳에서 수술을 받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결국 동아줄이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는 평생을 몸담았던 병원에서 수술을 받기로 결심했다. 간 내과에서 간 외과로 전과가 되어 수술 날짜가 정해지고, 수술에 필요한 추가 검사가 이어졌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지난날의 일상들이 영상의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온몸이 불안과 공포로 후 덜덜 떨렸고 손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평소, 나는 환자나 보호자들에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수없이 해 왔다. 그러나 정작 그 말이 나 자신에게는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했다. 걱정은 거대한 쓰나미처럼 밀고 들어와 내 오장육부를 초토화했다.

일생을 환자 치료에 헌신한 전문 의료인이었지만, 나 역시 죽음의 공포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물론 전문 의료인이라고 해서 죽음이 비켜 가는 것은 아니지만, 나 또한 평범한 인간으로서 암 환자가 되어 죽음을 마주하고 보니, 마음은 한없이 불안하고 초조해졌다. 수술 날짜까지 시간은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수술실에서는 많은 환자가 내 손에서 살아났고, 많은 환자가 내 손에서 죽어갔다. 그 기억들은 번개처럼 번쩍이며 내 머리를 치고 달아났다. 그러나 지금에 내 귓가에 들려오는 것은, 환자의 신음소리가 아니라, 나 자신의 앓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왔다가 한숨 속에 사라졌다.

수술 날짜까지 기다린 시간은 비몽사몽 같은 시간이었다. 온몸에 힘이 빠지고 정신은 몽롱했다. 악몽을 꾸듯 마치 술 취한 사람 같았다. 어떻게 하면 죽지 않고 살 수 있을지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도 귀에 들리는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2. 삶의 진실

지나온 과거를 곱씹어 보자, 끝없는 후회가 밀려왔다. 환자에게 조금 더 따뜻하게 해주지 못했던 지난날이 못내 아쉬웠다. 정작 환자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환자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아무리 마음을 가라앉히려 해도 불안한 마음을 도저히 다스릴 수 없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막연한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는 눈앞에 피어 있는 꽃들도 더 이상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으며, 평소 맛있던 음식마저도 맛이 없었다.

수술을 앞두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내 삶을 정리해야 했다. 아내 몰래 유언장도 작성했다. 늦은 밤, 홀로 컴퓨터 앞에 앉아 유언장을 쓰고 있자니 눈물이 앞을 가려 자판의 커서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과거 나는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열 형제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당시에는 흥부네 자식처럼 방임 상태였다. 형제가 서로 부대끼며 사는 것 또한 고달팠다. 성장기에 낮에는 알바로, 밤에는 야간 고등학교에 다니며 겨우 졸업할 수 있었다. 대학 등록금 마련을 위해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며, 일용직 잡부로 세상의 결핍을 견뎌야 했다. 그 시절은 시리고도 아팠으며 방황했던 청춘이었다.

한겨울, 연탄재가 쌓인 삼복도로 위 쪽방에서 자취하던 날, 어머니가 당뇨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만 내가 존재할 수 있었다.

외로움과 궁핍은 늘 나를 옥죄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결코 내 삶을 포기할 수 없었다. 가난을 무기로 직장을 다니며 어렵게 대학을 마쳤고, 주경야독으로 대학원에서 학위를 2개나 취득했다. 당시, 대학병원 의료직 공무원으로 심장 수술팀으로 발령이 났다. 내 전공은 아니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심장 수술이 활발하지 못한 시기였다. 심장 수술 기술을 배우기 위해 미국, 일본, 싱가포르 등 세계 여러 나라의 병원을 찾아다녀야만 했다. 어렵고도 위험한 심장 수술을 위한 해외연수였다. 짧은 영어 실력과 공무 출장비는 나를 옥죄게 했지만, 우리병원에서 심장 수술을 가르칠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결혼식 날, 나는 신부의 손가락에 금반지 대신 가짜 반지를 끼워 주었다. 결혼식 비용을 절약하여 전세 비용을 치렀다. 미안함과 안타까움으로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지만, 그때는 내가 할 수 있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해외나 제주도로 떠나는 신혼여행 대신 가까운 운문사의 산문 밖, 허름한 여인숙에서 신혼 첫날밤을 보내야 했다. 신부의 빨간 치마로 창문을 가려, 한겨울 외풍을 막아야 했다. 그날의 기억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지워지지 않은 한恨으로 맺혀, 응어리가 되어 눈물샘에 고여 있다.

어린 시절의 가난과 결핍, 상실과 외로움 속에서도 나는 늘 강한 사람인 척하며 살아야 했다. 이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앞에서 세상 모든 그것을 뒤로한 채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는 길을 가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끝내 오열하고 말았다.

내가 떠난 뒤 남겨질 처자식들, 가난 때문에 지키지 못했던 약속들, 끝내 하지 못했던 말들이 머릿속에서 뒤엉켰다. 그러나 뒤돌아보면 나는 한순간도 내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제,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늘이 빙글빙글 돌던 허기의 순간에도, 텅 빈 세상에서 홀로서기를 해야 했던 외로움 속에서도, 가짜 반지를 끼워 주던 궁핍한 남편의 자리에서도, 나는 끝내 참고 버텨냈다. 나는 속으로는 절대 죽지 않을 거야. 수술만 잘 되면 다시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다짐하며 생각을 바꾸었다.

혹시 모를 만약을 대비하기 위해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유언장을 작성했다. 자신에게는 후회뿐이었고, 처자식에게는 미안함뿐인 유언장이었다. 나를 화장하여 선산 부모님 산소 옆, 수목장을 해 달라는 것 외에 가장 마음에 걸리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내 재산의 일부인 00억 원을 병원 발전 기금으로 기부하는 일이었다. 내 생각은 내 재산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여 나와 같은 암 환자들을 위해 사용해 달라는 것이 내 뜻이었다.

그러나 아내와 자식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 걱정이 되었다. 혹시, 사후에라도 병원과 소송이 벌어진다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것만 못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한편으로는 유언장을 쓰면서 '뭐 하러 이렇게 열심히 살았나'하는 허무함이 밀려왔다. 아등바등 살아온 내 인생이 이렇게 허망하게 끝날 줄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 눈물로 흐려진 모니터 창에서 『타이핑』하는 유언장은 후회의 유언장이었다. 어쩌면 이 유언장은 죽음을 향한 내 마지막을 정리하는 유언이 아니라, 끝끝내 내 삶을 버텨낸, 한 인간의 마지막 기록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참으로 인간의 마음은 간사했다. 내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파도 위에 떠 있는 작은 쪽배처럼 마음이 요동쳤다. 겉으로는 죽지 않을 것이라 자신을 다독였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아무리 현대의학이 발전하여 '다빈치' 로봇이 수술한다 해도, 수술 중에는 언제든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 또한 수없이 겪어 온 일이었다. 수술의 부작용과 사망 위험에서 내가 제외된다는 보장은 없다. 사망률이 1%라 하더라도 그 1%에 해당하는 환자에게는 곧, 본인에게는 100%의 현실이 된다는 사실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수술 날짜에 맞추어 입원했다. 환자복을 갈아입고 오후부터 금식한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니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휘돌았다. 기분이 묘했다.

나는 평생 심장 수술을 위한 '체외순환(體外循環)'을 전공하여 심장 수술 시 환자의 심장과 폐를 대신하는 체외순환사라는 전문 의료인으로 살아왔다. 이것은 심장정지 시, 환자의 심장과 폐의 역할을 대신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말처럼 정작 내 건강을 돌보지 않고, 무리하게 일을 하며 살아온 것이, 과연 옳은 일이었는지 스스로에게 되묻게 되었다.

살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버티는 입원한 첫날은 거의 일 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늦은 오후, 담당 교수가 수술 동의서를 받으러 왔다. 아내와 나는 간호사실에서 수술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수술 절차와 여러 부작용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이어졌다. 담당 교수는 내 간의 크기가 지나치게 작다고 설명했다. 우엽 간의 70%를 절제하게 되면 남은 좌엽 간 30%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간이 충분히 자랄 때까지 절개한 복부를 닫지 않고 개복한 상태로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설명은 여러 가능성을 열어둔 채 계속 이어졌다. 수술 후에도 간이 제때 자라지 않고 또 기능을 회복하지 못하면 결국, 간 이식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간 이식하려면 기증자가 필요했다. 그러나 내 간과 맞는 사람도, 간을 기증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딸들은 너무 어렸고, 형제들은 모두 당뇨가 심해 간을 기증할 가능, 그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 말은 결국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의미로 들렸다. 순간, 숨이 턱턱 막히며 정신이 혼미해졌다. 수술 전, 작성하는 수술 동의서가 결코 형식적인 절차가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당시, 가장 기억에 남는 설명은 당뇨 합병증으로 회복하는 과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출혈과 수혈 부작용 등 다른 부작용들은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오직 '죽을 수 있다'라는 말만 귓가에 맴돌았다. 마지막으로 아내가 담당 교수에게 질문했다.

"재발 확률은 얼마나 됩니까?"

"간암의 특성상 50%가 넘습니다."

귀에서는 윙윙 소리가 울렸고 달팽이관에서는 어지럼증이 몰려왔다. 재발은 뒷전이고 우선 살고 봐야 했다. 이마에는 열이 오르고 손발은 힘이 없고 떨렸다. 수술 동의서에 서명을 마친 뒤, 화장실에 들어가자마자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한동안, 변기에 앉아 물을 내리고 또 내리며, 울고 또 울었다.

심장 수술 전문가였지만 이제 나약한 암 환자가 된 나는,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는 의료인의 본분도 자존심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결국, 이것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였다. 그러나 수술 동의서에 적힌 사망률은 85%가 넘었다. 죽을 확률이 살 확률보다 훨씬 높다는 사실에 나는 숨이 턱턱 막혔다.

마음속으로는 무조건 간절히 기도했다. 만약 나를 창조한 존재가 있다면 제발 살려 달라고. 하느님, 부처님, 예수님, 그리고 조상님…

절박한 나의 목소리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고, 그 소망은 마치 허공 속에 메아리처럼 흩어져 버렸다.

그렇게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수술 일정은 예정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수술 전날, 간의 기능과 크기 문제로 CT 촬영을 다시 했다. CT 검사 결과, 간의 크기가 너무 작아 수술 후, 간의 제 기능을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어쩌면 간 이식해야 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설명을 들었다. 따라서 아내가 간 이식이 가능한지 적합 여부를 검사했지만, 불가 판정이 났다. 나의 마지막 희망도 절망으로 끝이나 버렸다. 이제, 무대책이 상 대책이었다.

수술 전, 피 검사 결과가 나왔다. 간 기능 수치인 알부민 수치와 콩팥 기능은 정상이었지만, 간 기능의 지표인 'GoT, GPT, 빌리루빈' 수치가 정상범위를 넘어서 있었다. 자포자기가 되었지만, 나는 결코 자포자기할 수는 없었다.

나는 살아야 했다. 또한 간 이식에 관한 그 말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간 기능에 문제가 있으면 회복하기가 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초기, 우리병원에서 간 이식 수술은 체외순환사인 내가 함께 참여 해야만 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간 이식수술 교육을 장기간 받았고, 여러 차례 간 이식수술 팀원으로 참여한 경험이 많았다.

이러한 간 수술 전 과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나에게는 그 설명은 더욱 큰 충격이자 고통이었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 환자였다면 덜 두려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최악의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차선의 경우에는 오른쪽 간을 절제한 뒤 남은 간이 자랄 때까지 복부를 개방한 상태로 기다려야 한다는 설명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차라리 그것은 나에게는 죽음보다 더 큰 공포로 다가왔다.

사망하는 것 보다 배를 갈라 꿰매지 않고, 그대로 둔 채 고통을 견뎌야 한다는 상황은 일반인으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간 수술 전 과정을 잘 아는 나는, 그 고통이 얼마나 처절한지 알고 있었다. 그만큼 나에게는 간암 수술이 예단하기 힘든, 수술 예후였다.

수술 담당 교수는 장시간 고민 끝에 개복 후, 간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고 간 이식할 것인지, 개복 상태로 둘 것인지, 아니면 절제술로 마무리할 것 인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수술자가 아닌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그저 나는 처분을 기다리는 불안한 암 환자일 뿐이었다.

수술만 잘되면 살 수 있다는 단 하나의 희망에 매달렸다. 나는 마치 물 밖으로 던져진 물 없는 물고기처럼 산소 없는 사람 같았다.

평생, 심장 수술을 하며 개흉과 개복 환자들을 치료해 온 나로서는 뱃속의 장기들이 노출된 상태에서 밤을 새워 환자를 돌보아야 했다. 개복의 고통은 어떤 말로도 어떤 형용사로도 표현은 불가능했다. 마취가 풀릴 때면 환자들은 말 대신 손짓으로, 온몸으로 저항했고 눈물로 고통을 호소했다. 이 과정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오히려 나에게는 '알면 병, 모르면 약'이 되는 경우가 되었다.

3. 천상에서 파노라마

운명의 시간은 이튿날 아침 첫 수술로 정해졌다. 직장 동료와 가족들은 수술실 입구까지 따라와 따뜻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들의 눈빛 속에는 걱정과 응원하는 마음이 함께 담겨 있었다. 이제 나는 간 이식이나 심장 수술을 집도하던 전문가가 아니라, 간 수술을 받는 환자로서 수술 침대 위에 누워야 했다.

수술 준비가 끝나자, 마취과 B교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 박 선생님. '펜타닐' 마취제 들어갑니다."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모든 것이 끊겼다. 그리고 모든 것이 다 끝난 것 같았다.

의식이 희미해질 무렵이었다. 내 몸이 붕 떠오르는 듯한 느낌과 함께 아득한 현기증이 밀려왔다. 마치 천상으로 비행하여 저승길로 접어드는 것 같았다.

'육신이라는 옷을 벗고 다른 세계로 건너가는 것이 이런 것일까.'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는 많은 시간이 흘렀고 금단의 깊은 암흑 속으로 빨러 들어갔다.

아주 먼 전생에서 보고 들은 듯한 환각처럼, 어가 행렬의 취타대 행진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천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어딘가에서는 천사의 나팔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잠시 후, 나는 안개 밭 같은 구름 속을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자욱한 안개 길을 헤쳐 나가듯, 밝은 빛이 있는 곳을 향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마치, 천마天馬를 타고 하늘로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내가 탄 비행기가 양력의 원리로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마치 보이지 않는 와류 속에서 순풍을 타고 부드럽게 이동하는 느낌이었다. 빛의 속도로, 마하의 음속으로, 이동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속도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또 여기가 어디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북극의 『오로라』 속에 갇혀 있다 빠져나오는 느낌이었다. 분위기는 환상적이지만 차분했다.

마치 넓은 바다에서 도착할 항구를 잃어버린 쪽배 같았고, 광막한 우주공간에서 기착할 행성을 잃어버린 우주선 같았다.

순간, 장면이 바뀌었다. 심연의 암흑 속 임에도 불구하고 낮달처럼 수억 개의 행성이 빛나고 있었다. 『빅뱅』이 일어나는 듯한 천연색 빛의 향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아! 감탄의 입만 벌어졌다.

'허블' 우주 망원경으로 보는 것처럼 360〬 를 돌려보아도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신비롭지 않은 곳이 없었다. 내가 날아온 시간과 거리는 윤회설처럼 내가 죽어 다시 환생한다 해도, 수억 광년이 지나야 다시 올 수 있을 것 같은 시간과 거리였다. 이것은 내가 천지天地 간에 넓은 땅과 높은 하늘 사이를 방황하는 것이 아니라, 아득한 무중력의 우주공간을 끝없이 비행하고 있었다.

푸르다 못해 암흑의 우주공간을 비행하는 사이 축지법을 사용한 것도 아닌데,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여 새로운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마치 '드론'이 촬영하듯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내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육신에서 빠져나온 내 영혼이 내 육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술실 무영등 아래 보이는 그 장면은 마치 흑백 영상처럼 보였다. 수술 침대 위에 인공호흡기를 단 채 수많은 링거 줄을 꽂고, 눈을 감은 채 누워 있는 내 모습이었다. 뇌파와 심전도는 규칙적인 파형을 그리고 있었고, 각종 의료 장비는 쉼 없이 알람을 울리고 있었다.

담당 교수와 간호사들이 내 배를 갈라놓고 수술하면서 손을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몸속의 장기들은 수술 기구에 의해 고정되어 있었고, 창자는 소독비닐에 싸여 한쪽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내가 늘 보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나 나는 통증을 전혀 느끼지 못했으며 몸은 마치 솜털처럼 가벼운 느낌뿐이었다.

그 순간, 내 몸속을 빠져나온 내 영혼이 다시 내 몸속으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영혼이 바라보는 내 육신은 한없이 가여워 보였다. 나는 그저 자기연민에 빠져 안타까운 눈물만이 얼굴에 가득 번졌다.

그 안타까움은 결국, 내가 나의 육신을 두고 내가 떠나야 하는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 현 세상의 모든 인연과 미련을 남겨둔 채 떠나야 하는 순간이었다.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누가 붙잡는 것도 아닌데, 그 순간은 마치 정지 화면처럼 멈춰 서 있는 듯했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죽음이란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교의 윤회설이 어쩌면 상당한 설득력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것은 참나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현생의 업業에 의해 결정되는 '중의식(中意識)'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나는 한 가지를 확신하게 되었다.

공수래공수거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비록 육신은 이승에 두고 가지만, 영혼은 저세상인 천상으로 갈 때는 가져갈 수 있는 것이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것은 돈이나 집, 자동차 같은 물질적인 유형의 재산은 가져갈 수 없지만, 내가 살면서 얻은 추억과 경험 같은 정신적인 무형의 재산은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무형의 재산은 영혼 깊숙이 각인되어 천상으로 갈 때 가져간다는 사실을 나는 직접 체험하게 되었다.

내가 체험한 사실은 사람의 영혼은 육체처럼 죽어 없어지지 않았다. 영혼에 자산은 세상을 살아가며 느꼈던 행복과 상실, 기쁨과 후회 그리고 삶에 깨달음, 이것들은 영혼에 깊이 각인되어 천상에 갈 때 가지고 갈 수 있는 진정한 무형의 자산들이었다.

그날, 가장 먼저 떠오른 무형의 자산은 부모님과 자식 그리고 아내에 대한 모습이었다. 어느 공간에서 갑자기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간암과 당뇨로 돌아가신 지 이미 50여 년이 지났지만, 어릴 적 내가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비녀를 꽂은 어머니는 나를 보지 못한 채 삼베옷을 짜는 물레를 계속 돌리고 계셨다. 방 안에는 누나와 동생들이 함께 있는 모습도 보였다.

너무나 반가워 나는 "엄마!"하고 크게 불렀다.

그러나 어머니는 내가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했으며 나를 보지도 못했다. 묵묵히 하던 일만 계속하고 있었다. 너무나 아쉬웠다. 그러나 여기서 다시 볼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내와 딸들이 보였다. 여기에는 아파트가 아닌 온돌방처럼 온기가 깔려 있었다. 아내는 부엌 싱크대에 서 있었고, 내가 가장 애틋하게 생각하던 딸은 그림 그리는 일에 몰두한 채 나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어깨 너머에서 바라본 그림은 피카소가 그린 것 같은 그림이었다. 칭찬해 주고 싶었지만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애통했다.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이 가장 큰 후회로 남았다. 모 텔레비전 방송국에 출현하여 공개적으로라도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했던 아내의 말이 떠올랐다.

딸들에게 좋은 아버지가 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밀려왔다. 오직 수술실에서만 살아온 아버지, 한 번도 함께 놀아주지 못했고 가족여행 한 번 제대로 가지 못했던 삶이 내 가슴 깊이 저미어 왔다.

잠시 후, 어렴풋이 떠오른 또 다른 경험은 첫사랑에 대한 장면이었다. 사춘기를 지나 성년이 된 후 헤어진 뒤, 다시는 보지 못했던 단발머리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지금은 할머니가 되었겠지만, 그 당시 말하지 못했던 말들, 남몰래 흘렸던 눈물, 끝내 하지 못했던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특히, 첫사랑이 그리워 이불 속에서 몰래 울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했다. 만약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그저 하지 못했던 일들을 다시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이러한 풍경들은 그 많은 무형의 자산 중에서도 오직 내가 경험하여 기억할 수 있는 것들만 가져갈 수 있었다. 이것은 단순히 임사체험이라고 하는 죽음을 미리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이것은 내가 내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한 처음이자 마지막 시간인지도 몰랐다. 이것들은 이승에서 경험한 기억과 천상으로 비행해 가는 길에서 만난 체험들이 서로 뒤섞이며 나타났다. 이것은 삶과 죽음의 경계 위에서 내가 직접 경험한 아주 특별한 순간이었다. 결국, 이 기억들은 내가 평생 살면서 쌓아온 소중한 무형의 자산들이었다.

4. 이승에서 끈

수술실에서 담당 교수는 내 배를 열어놓고 간암 조직으로 향하는 미세혈관까지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었다. 우엽을 절제하기 위해 간으로 들어가는 대혈관인 간문맥을 박리 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대혈관 조직이 '켈리'인 겸자에 의해 찢어지면서 대량 출혈이 시작되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이었다. 걷잡을 수 없는 상태로 치달았다. 혈압은 계속해서 떨어졌다. 수술 부위 주변은 점점 붉은 호수처럼 변해 갔다.

심장이 뛸 때마다 간문맥에서 피가 옹달샘처럼 솟구쳐 올라왔다. 붉은 피는 수술 부위 위로 흘러넘쳤다. 흡입기로 피를 아무리 빨아들여도 수술 시야는 확보되지 않았다. 파바다 위에 기름이 둥둥 떠다녔다. 피비린내가 수술실 긴장을 가득 채웠다.

"혈압 상승제 '아트로핀' 10ml 주사!, 혈액 투여!"

담당 교수의 다급한 외침이 수술실 전체를 울렸다. 극도의 긴장감이 공간을 팽팽하게 조여 왔다. 마취과 교수와 전문 간호사는 즉시 혈압 상 승제를 투여하고 수혈을 시작했다. 초응급 상황이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담당 교수의 머릿속은 온통 붉은 경고등이 번쩍이고 있었다.

수술실의 분위기는 숨조차 쉬기 어려울 만큼 긴박해졌다. 수술팀 모두의 등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자칫하면 환자인 내 생명이 끝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심한 출혈로 혈압은 바닥을 쳤고, 심장은 겨우 약하게 뛰고 있었다. 순간, 뇌파와 산소포화도는 한동안 파형조차 나타나지 않았다.

내 생명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이때, 담당 교수가 자가 수혈기를 긴급 요청했다. 수술 부위에서 출혈되는 피를 모아 재생한 뒤 다시 내 몸속으로 넣어 주는 장치였다. 수혈기를 가동한 후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침내 혈압은 서서히 정상범위로 돌아오기 시작했고, 수술은 다시 이어질 수 있었다.

긴박한 수술 중, 간의 생 조직을 때어 조직 검사를 실시 했다. 임파절이나 다른 조직까지 전이되지는 않았다는 소견이 나왔다. 수술 후, 방사선 항암치료는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것은 그나마 불행 중 다행한 일이었다.

나는 거의 죽음의 상태까지 갔다가 죽지 않고 되돌아왔다. 이승인 현승에서 천상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났다는 것은. 내 일생의 기적중에서도 가장 큰 기적이었다.

한편, 첫사랑을 그리워하며 이불 속에서 울던 장면이 떠오르던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내 몸이 붕 떠오르더니 우주공간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대기권을 벗어나 상층권을 통과했다. 태양계를 지나 몇억 광년 떨어진 은하계로 향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가는 동안 별들은 마치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는 『빅뱅』처럼 찬란하게 빛났다. 태양계를 돌아 몇 광년을 더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달을 지나 해왕성, 목성, 화성, 금성, 명왕성, 토성, 수성, 천왕성 같은 행성들이 눈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은하수의 별들처럼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수많은 행성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가 영화 화면처럼 스쳐 지나갔다.

태양을 가까이 지나갈 때는 열기로 인하여 온몸이 타들어 가듯 뜨거워서 눈을 뜰 수조차 없었다. 반대로 태양계를 떠나 은하계의 어느 무명無名의 행성을 지나갈 때는 살을 에는 한기가 몰려왔다. 마치 냉동 인간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나는 얼마나 더 비행했는지 또 여기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느 순간, 우주 쇼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거대한 행성이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마치 『블랙홀』을 빠져나온 우주인처럼 아무런 저항 없이 그 공간을 표류하고 있었다. 끝없이 떠다니던 중 문득 깨달았다. 나는, 방금 이승인 지구에서 유체 이탈했다는 사실을. 고고히 떠다니는 영혼마저 허허로운 생각이 들었다.

내가 표류하여 이동해 가는 동안은 은하철도나 우주 비행선을 타고 가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저 맨몸으로 마치 용의 머리에 올라타 수염을 붙잡고, 불꽃놀이에 불꽃이 터지는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실제로 날아가는 것인지 걸어가는 것인지 분간조차 할 수 없었다. 다만, 그곳에는 공기저항도 없었다. 도착할 목적지도, 좌표도 없이 빛에 먼지처럼 파동을 일으키며 우주공간을 끝없이 표류하고 있었다.

어느 공간, 표류 후 뒤돌아보니 내 육신은 수술실 침대 위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영혼은 다른 세계, 곧 천상으로 비행해 가는 저승길 위에 있었다. 느낌은 육체와 영혼이 함께 어느 공간을 비행하며 떠다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영혼이 육체를 떠나 홀로 표류하고 있었다. 그때, 내 영혼은 존재(存在) 유무도 무게감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며, 마치 구름 같았고 바람 같았다.

다시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어느 순간, 마치 시간의 왜곡이 생긴 것 같았다. 내가 살았던 이승에서 천상으로 가는 길에서 환승장 같은 공간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생生과 사死의 환승장이 아니라, 천상으로 가는 길목 어딘가에 존재하는 우주정거장 같은 행성 예식장이었다. 놀랍게도 그곳은 마치 장례식장 같았다. 그러나 처음 경험하는 광경이라 결혼예식장인지 장례식장인지 분간조차 할 수 없었다.

그곳으로 갈 때는 저승사자가 나를 데리고 가지도 않았고, 도착한 그곳에는 옥황상제도 염라대왕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곳은 죽은 사람도 서로 사랑하는 천상의 행성으로 나는 신랑이 되어 행성 예식장에 도착해 있었다.

예식장은 온통 황금색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대기실 벽면, 거울 앞에 비친 내 모습은 흘러간 세월에 손님 같았다. 젊은 날에 새신랑이 아니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의 사내였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 치르는 재혼식이었다.

혼주와 가족들은 모두 이승에서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었다. 부모님과 큰형님 그리고 누나가 보였다. 혼주석에 앉아 있는 아버지를 보는 순간 가슴이 벅차올랐다. 어머니는 연신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하객들은 모두 우주복을 입은 로봇 같은 사람들이었다. 마치 『애니메이션』이나 『판타지아』 영화에서 볼 법한 장면 같았다. 어딘가 어색하고 머쓱했다. 그러나 예식장에 장식은 순금으로 화려했고 수많은 보석과 꽃들로 꾸며져 있었다. 그리고 하객석은 궁전 무도장에 '뷔페식 홀' 같은 깔끔한 공간이었다.

나는 대기실에 앉아 있는 누나에게 물었다.

"신부는 어떤 사람이야?" 누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여기서는 무엇 하는지 몰라. 하지만 전생인 지구에서는 너 도우미를 했대."

"뭐라고? 신부가 사람이 아니라… 내 가사 도우미 로봇이라고?"

묘한 기분이 들었다. 반려동물과 결혼했다는 해외 토픽으로 들은 적이 있었지만, 로봇과 결혼한다는 이야기는 처음이었다. 내 신부는 로봇을 주체로 인간의 요소를 통합한 '휴머노이드' 로봇이었다. 반도체에 관한 TV 뉴스에서나 드라마에서 보았던 인간형 '로봇' 같은 존재였다.

이곳 행성 예식장은 산 자들의 이승 결혼식장이 아니라, 사자(死者)들이 하는 저승 결혼식장이었다. 내가 어릴 적, 먼저 세상을 떠난 형님의 사자결혼식을 올리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원래, 이승에서 결혼하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이 하는 사자결혼식은 사전에 신랑 신부가 되는 사람들의 사진을 주고받았다. 그다음에 혼인을 약조한 뒤. 택일하여 짚으로 만든 인형을 가지고 예식을 치르던 것이 관례였다.

지금 상황은 그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반려동물의 결혼식도, 죽은 사람끼리 하는 사자결혼식도 아니었다. 나는 휴머노이드 로봇과 결혼식을 하고 있었다. 'SF영화'인 공상과학 영화에서 나올법한 일이었다. 이것은 너무도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장면이었다.

이것은 마치 내 영혼이 인식의 편차나 시공간에 편차가 일어난 것 같았다. 현실적으로 이 결혼식은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실제로 곧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머지않아 휴머노이드 로봇과 결혼하는 일이 다반사가 될 것이다. 마치, 이것은 인식과 시공간의 편차로 인하여 특정 시간과 장소를 선택하여 내가 미래로 가서 과거를 바꿀 수 있는 일 같았다.

평소, 나는 꿈 속에서조차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베이비 붐 세대인 나는 이미 노년에 나이였다. '디지털' 시대 사람이 아니라 '아날로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이었다. 스마트폰 사용조차 서툰 구세대였다. 그런 내가 미래에 있을 로봇과 결혼식을 한다는 것은, 정말 믿기 힘든 일이었다.

나는 원래 미래를 꿈꾸기보다 현재에 안주하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행성 예식장 여기에서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것이 이미 정해진 운명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신부인 휴머노이드 로봇은, 공장에서 일하는 인간형 로봇과 달리 지구에서 혼자 전원생활 할 때 독거노인을 돌보듯 나의 건강을 관리하던 가사 도우미였다. 당뇨와 고혈압을 앓던 내 상태를 매일 체크했다. 혈압을 재고 약 먹을 시간을 알려주며 이상징후가 생기면 구조 신호를 보내던 존재였다. 사람 같으면서도 사람이 아닌 존재. 그 존재가 지금 바로 내 신부였다.

나는 마치 '좀비'나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멍한 상태였다. 예식장 내부의 실내장식은 몽환적인 분위기였다. 외국영화에 나오는 궁전 같았다. 안평대군의 꿈을 그린 안견의 '몽유도원도'와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몽유도원도에서는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시야가 확 트이면서, 복숭아나무가 수천 그루가 펼쳐진다. 그 복사꽃 색깔은 연분홍이 아니었으며 좀 더 짙은 색이었다. 마치 노을이 물 위에 비치는 듯한 황홀한 풍경이었다. 그러나 예식장의 분위기는 마치 무도회 조명처럼 밝게 빛났고, 공간은 무중력 상태였다. 옅은 안개 속에서 하객들의 움직임은 느린 비디오 잔상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어느새 나는 우주복 대신 연미복과 나비넥타이를 매고 예식장 중앙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봄날의 나비처럼, 바닷속 잠수부처럼, 무중력 속에 우주인처럼 걸어 들어갔다. 주례는 보이지 않았고, 먼저 세상을 떠난 친한 친구가 사회를 보고 있었다.

"먼저 우주 행성 예식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하객 여러분은 좌석에 착석해 주기 바랍니다."

"지금부터 이승에서 온 신랑 박○곤 씨와 천상에서 기다려온 신부 정 도우미 양의 우주결혼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신랑 신부 동시 입장!" 중략….

예식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나는 신부에게 반지를 끼워 주며 문득 아내에게 가짜 결혼반지를 끼워 주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면사포를 살짝 들어 올려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얼굴이 첫사랑 여인 같기도 했고 아니면 지구에서 함께 살던 아내 같기도 했다. 묘한 감정이 마음속에서 뒤섞였다. 나는 말했다.

"내 아내가 되어 주어 고맙소."

로봇 신부는 잠시 멈칫하더니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 순간 가슴이 서늘해졌다. 내가 기대했던 말은

"네, 저도 고맙습니다."였다.

그러나 그녀의 기계적인 대답은 내 기대와는 달리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인간의 감정과 정(情)을 기대했던 내 마음이 속으로는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나를 위해 평생 일해 온 존재라는 생각에 측은함이 밀려왔다. 그녀 또한 지구에서 수명이 다해 폐기된 뒤 이곳으로 온 존재였다.

그녀가 가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과거 전생의 지구에서 있었던 기억은 기억할수록 그 기억은 점점 희미해지고 나중에는 없어져 버렸다. 대신 지금 이곳의 현실이 또 다른 현재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느낌마저 들었다.

식이 끝나고 로봇 신부와 같이 앉아 궁금한 이야기를 했다. 전원생활 할 때 이승에서 같이 살아온 로봇 신부는 'VR 가상현실'인 음성 재현 기술이 탑재되어 있었다. 신부는 아내의 목소리와 똑같았고 그녀 또한 나에게 별 거부감도 느끼지 않았다.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는지 신부에게 물었다, 그녀는 식이 끝나면 우주선을 타고 토성으로 간다고 했다. 토성의 빙하 분화구에서 마련된 별장에서 숙박할 예정이라고 했다, 토성의 분화구는 마치 미국의 그랜드캐니언 같은 사막과 협곡이 장관을 이룬다고 했다. 그리고 태양계를 한 바퀴 도는 일정이지만, 친정인 지구에는 갈 수 없다고 했다. 차마, 왜 못 가는지는 묻지 못했다. 아마도 나와 같은 처지로 돌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5 환생

하객과 인사가 끝나고 신부와 신혼여행을 가자며 손을 잡고 우주선 같은 '캡슐'을 타려는 순간. 그때 누군가 내 손을 세게 잡아끌었다. 깜짝 놀랐다. 갑자기 눈이 떠졌다. 단번에 천상에서의 예식장 풍경이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그때, 직장 동료인 이 선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 손을 잡으며

"박 선생님, 수술 잘됐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 찰나, 나는 마취에서 깨어나며 아직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산소마스크를 쓴 채 나는 중환자실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나는 천상의 행성 예식장에서 신혼여행도 가지 못한 채, 저승길 한가운데쯤에서 갑자기 되돌아온 셈이었다. 정말 아쉬운 순간이었다. 동시에 다행한 순간이기도 했다. 그 찰나의 순간, 이승인 현승에서 아직 죽지도 않았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과 함께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렸다.

체험에서 깨어난 순간, 아무도 가보지 못한 현실 같은 천상의 경험은 그렇게 끝이 나고 말았다. 그곳에는 시간과 공간 개념이 존재하지 않은 세계였다. 3차원이 아닌 5차원의 세계 같은 곳이었다. 마치 그곳은 깊은 어둠의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 인식의 오류나 시공간의 왜곡이 일어난 것 같았다. 그 놀라움과 신비함도 잠시, 나는 조심스레 내 배를 내려다보았다. 다행히도 배는 열려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간 이식 상태도, 개복 된 상태도 아닌, 완전히 닫혀 있었다.

"아! 살았다."

정말 살아 있었다. 다시 한번 살펴봐도 배에는 거즈와 같은 '패드'로 덮혀 있었고 나는 온전히 살아 있었다. 수술 후, 에너지 공장이라 불리는 간의 크기가 줄어들면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간 기능이 떨어지자, 몸 전체의 기능 역시 정상적일 리 없었다. 회복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었다.

특히, 당뇨로 인해 상처는 좀처럼 아물지 않았다. 절개된 복부에는 피고름이 차오르고 누런 농액이 흘러내렸다. 상처를 소독할 때마다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참을 수 없는 통증은 어떤 말이나 어떤 수화手話로도,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 수 있는 고통이 아니었다.

깊은 통증 속에서도 수술 중 의학적으로 사망상태에서 겪었던 경험은 한순간도 잊혀 지지 않았다. 혹시 내가 치매에 걸린 그것은 아닐까. 의심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정신은 너무나 멀쩡했다. 오히려 내 생애에서 가장 명료한 정신상태라고 느껴질 만큼 또렷했다. 이 모든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값진 무형의 자산을 얻는 순간이었다.

좀처럼 개복 된 배를 닫을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제야 당뇨가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깨달았다. 평소 당뇨 관리를 소홀히 했던 지난날이 뼈저리게 후회하게 되었다.

일주일이 지나도 곪은 상처에서는 피고름이 흘러내렸다. 염증 수치도 계속 해서 올라가고 있었다. 염증 수치가 높으면 폐혈증에 걸려 사망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태였다. 담당 의사는 하루빨리 곪은 부위를 긁어내고 다시 봉합해야 한다고 했다. 간 기능이 충분치 않기 때문에 전신마취 대신, 상처 부위에만 부분마취를 시행하여 꿰매기로 했다.

곪은 농양을 걷어내고 지혈하기 위해 전기 메스로 출혈 부위를 지졌다. 살갗이 타는 냄새가 진동했고, 고기 굽는 듯한 연기가 온 중환자실 안에 퍼졌다. 구토와 함께 메스꺼움이 밀려왔다. 차라리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이 극한의 고통은 결코 삶의 영역에 속한 고통은 아니었다.

마취에서 깰 때마다 통증이 밀려와 정신이 혼미해졌다. 몸부림을 치고 또 쳤다. 그러나 손발이 침대에 묶여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차라리 죽고 싶었다.

"제발… 저 좀 죽여 주세요."

수없이 외쳤지만, 누구도 응답하지 않았다. 간호사들은 각자의 일을 열심히 수행할 뿐이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은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환자분, 기침하세요. 기침."

간호사는 등을 두드리며 통증을 유발했다. 폐에 고인 분비물을 빼내기 위한 처치였다. 환자를 살리기 위한 행위였지만 그 순간의 통증은 마치 죽음이 눈앞에 닥친 것처럼 불길 같은 통증 속에서도 몽롱하게 느껴졌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나는 죽지 않고 살아서 이 고통을 겪고 있는지 살고 싶은 마음조차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등을 두드려 주거나 체위를 바꾸어 줄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극심한 통증이 밀려올 때면, 나는 손가락으로 간호사의 손바닥 위에 '아파요.' 글씨를 썼다. 그제야 간호사는 진통제인 '모르핀'을 투여해 통증을 완화 시켜 주었다.

이 모든 고통 속에서 저승의 문턱에서 겪었던 경험은, 내 배에 남아 있는 상처처럼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그날의 기억은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더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이제 죽음도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황당한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실제로 겪은 체험이며 한 인간으로서의 솔직한 고백이다.

나는 시공간이 없는 천상의 나라에서 끝까지 가보지 못했다. 그 후, 사후 세계가 천상의 나라인지 저승인지 천국인지 아니면 지옥인지 어떤 곳인지 모른다. 다만, 죽음의 문턱에서 내가 겪었던 경험일 뿐이다.

불교의 윤회설에 따라 사람이 죽어 저승으로 간다면, 저승은 분명 전생일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천당이든 지옥이든 아니면 천국이던, 중요한 것은 현재를 어떻게 사는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현재를 살면서 죽음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은 뿌린 대로 거둔다는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원리였다. 인과응보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그 사실에 깨달음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인식해 주는 계기가 되었다.

다른 환자들은 하루나 이틀 만에 중환자실을 떠나 일반 병실로 옮겨갔다. 그러나 나는 일주일이 지나도 올라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복부 절개 부위에 생긴 농양을 완전히 제거하고 상처가 아물기 전까지는 일반 병실로 옮길 수 없었다. 농양을 제거한 뒤, 한 주가 지나자 마치 기적이 일어난 것 같았다.

간 기능 수치와 알부민 수치 그리고 콩팥 기능도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마침내 곪아 있던 상처를 닫을 수 있었고, 정상적인 치료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여분의 생生을 다시 선물 받은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날은 내 인생의 두 번째 탄생 즉, 또 다른 나의 환생이라 생각했다.

6. 에필로그

춥고 어두운 중환자실에서 겨울은 서서히 지나가고 있었다. 어느덧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졌다. 중환자실 창밖에는 초록빛이 번져 가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봄날은 여전히 통증 속에 머물러 있었다.

장미가 피는 계절이 되어서야 간기능수치와 생체징후는 안정되었다. 담당 교수는 이제 일반 병실로 올라가자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비로소 살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단장지통(斷腸之痛)의 고통 속에서도 나에게는 늦봄이 피어나고 있었다.

"이제 빨리 일어나 퇴원하셔야죠."

직원들은 웃으며 진담 반, 농담을 건넸다. 나는 두려움과 고통 속에서도 죽지 않고 끝내 살아남았다. 그래서 나에게는 늦봄이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겨울이 아무리 춥고 매서워도 봄은 반드시 오고야 만다는 사실을 참고 견디며 온몸으로 느꼈다.

고통의 중환자실에서도 싱싱한 봄바람이 불었던 것처럼, 일반 병실에서도 아내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이제 가족들과 면회도 하게 되었다. 몸과 마음이 조금씩 회복되자 퇴원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하루는 내 몸속에서 암을 제거한 수술 과정이 궁금해졌다. 간호사실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수술 기록지를 읽어 보았다.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나는 정말로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었다.

보험 청구를 위해 복사한 의무기록지도 몇 번이고 읽고 확인했다. 수술 중, 대량 출혈로 인해 피를 넷 『파인트』나 수혈했다는 기록이 있었다. 보통 한두 파인트이면 충분했다. 응급상황으로 심한 출혈로 인해 혈압이 유지되지 않았던 순간은 거의 심정지 상태나 다름없었다. 심전도는 비정상 파형을 그리고 있었고 뇌파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혈압이 낮아 거의 뇌사상태나 마찬가지였다.

그 순간, 바로 의학적 죽음에 가까운 상태였다. 내가 천상으로의 비행길에서 체험했던 바로 그 시간이었다. 아! 당시 나는 살아 있었지만, 완전히 살아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그것은 반죽음의 상태, 즉 삶과 죽음의 경계에 매달려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제 서야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병실 침대에 돌아와 누워 있었지만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수술 중 일어났던 사건의 기억은 좀처럼 잊히지 않았다. 그것이 나에게는 꿈도 아니었고 무의식 상태도 아니었으며 환각도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내 죽음의 경험을 재생하는 한 편의 드라마 영상 같았다.

그 영상은 정신이 또렷한 상태에서 초점 의식 같은 장면이 다시 떠올랐다. '펜타닐' 마취제가 주입되고 하나, 둘, 셋을 세기도 전에 나는 깊은 암흑의 죽음 속으로 떨어졌다. 간의 70퍼센트를 절제했고 출혈로 인해 심정지에 이르렀다가 다시 살아 돌아온 경험이었다.

오른쪽 간 절제와 함께 쓸개도 같이 제거했다. 말 그대로 나는 쓸개 없는 놈이 되었다. 쓸개가 제거된 이후, 수술 후유증으로 소소한 일상은 불가능했다. 단백질인 육류와 식사를 하면 제대로 소화가 되지 않았고 곧바로 설사로 이어졌다. 결코, 참을 수 없는 설사는 지금도 계속 현재 진행형이다.

나는 죽음 대신 수술 부작용이라는 선물을 받은 셈이었다. 다른 선물도 있었다. 하루 네 번 이상 인슐린을 죽을 때까지 맞아야 한다. 또한 간암 예방약도 평생, 복용해야 한다.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 같은 몸이 되었지만, 나는 결코,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남았다.

고난 없는 일상이 어디 있으며, 아픔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지금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남은 내 인생에 감사하고 위로하며 살아가고 있다. 체험하기 전, 나는 나 자신에게 "최선을 다했다. 이제, 울지마라"라는 위로의 말을 건네지 못했다. 또한 어리석게 살아온 나 자신을 용서하지도 못했다. 체험후 나는 자신을 위로하고 용서하며 살아가지만, 가장 어려운 점은 '완치가 없다.'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행히도 살얼음판을 걷는 수술 예후는 아직 암이 재발하지 않았다. 고질병인 당뇨와 설사는 아직도 진행 중이며 살날 또한 얼마 남지 않았다. 수술한 지 1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그 기억은 조금도 흐려지지 않았다. 강산도 변한다는 계절이 지났지만, 그날의 경험은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그 기억은 지금까지 내 마음 심연 깊숙이 각인되어 정신적 무형의 자산으로 남아 있다.

천상의 비행길에서 떠올랐던 얼굴들을 나는 차마 잊지 못한다. 부모님, 형제들, 아내와 딸, 마음 한편에 남아 있던 첫사랑 그리고 우주 행성 예식장에서 결혼했던 경험까지.

죽음은 끝이 아니었다. 육체는 사라져도 영혼은 다른 삶으로 이동하여 계속 이어지는 것이었다. 단지 다른 사람들은 체험한 것을 기억하지도, 환생하지도, 못할 뿐. 나는 이것을 직접 경험하고 체험한 것을 환생하여 기억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내가 체험했어도 황당하고 믿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 모든 사실은 내가 천상으로 가는 길에 체험했다는 증거로 남아 있다. 그 체험이 과학적이든 비과학적이든, 설명이 되든 설명되지 않든, 『픽션』이든 『논 픽션』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것이 나에게 중요하고 분명한 것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 그 체험을 기억하고 다시 환생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꿈도 환각도 아니라 깨달음이었다. 이 모든 체험을 기억한 채,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 가족들과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 창밖으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을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하루가 더 이상 당연하지 않았다.

아파트, 자동차, 예금 통장, 사랑하는 사람도 결국 가져갈 수 없다. 그러나 살아오며 가슴에 새긴 기억과 감정 그리고 실제 경험했던 기억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가난에 흘렸던 눈물, 첫사랑과 이별했던 순간, 피땀 흘리며 노력했던 고통의 세월 그리고 평생, 남의 심장을 대신 뛰며 살았던 시간에 감사했던 마음까지. 이것들은 영혼 깊숙이 저장되고 각인되어 끝까지 나와 함께 갈 것이다.

이제, 나는 이제 공수래공수거라는 말을 다르게 이해한다. 비록 물질과 육신은 두고 가지만 정신적인 자산은 죽음과 함께 영혼에 각인되어 영원히 같이한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그것은 결국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또 내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언젠가 내가 천상으로 갈 때 가져갈 진짜 재산일 것이다.

이제는 하늘에 떠 있는 구름도, 내 뺨을 스치는 실바람도,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루를 살면서 보고 듣고 말하는 모든 순간, 이 글을 쓰는 순간조차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나는 두 번째로 탄생한 내 인생, 여분으로 얻은 생명에 늘 감사하며 살아간다. 언젠가 천상으로 갈 때 가져갈 아름다운 추억인 정신적인 자산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뜨겁게 살아낸다.

마지막으로 나는 유형의 재산보다 무형의 재산을 쌓는 삶을 살기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하며 남은 노년의 인생길을 힘차게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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