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가장 찬란하게 쏟아지는 시간, 그림자는 짙어지고 사물과 공간의 형태는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평면의 캔버스는 어디까지 깊어질 수 있을까. 이세명 작가는 작품 '글로우 타임(Grow Time)'을 통해 정해진 캔버스 틀 안에서 빛과 그림자를 갖고 공간감을 극대화한다.
공간감의 출발은 야경에서부터였다. 어두운 밤, 가로등 아래 그림자로 공간감을 표현한 작업을 10년 가량 이어왔다. 작업은 의외의 방향으로 튀었다. 아름답고 반짝이는 도시의 야경을 그렸다고 생각했는데 관람객마다 소감이 달랐다.
"심지어 작품이 무섭다고 얘기하는 분도 있었죠. 내가 이렇게 보일 것이라고 의도하고 그려도 관객의 경험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겁니다. 각자의 주관적인 개념에서 공통적인 객관을 끌어내려면 기능적인 측면으로 접근해야겠다 싶었습니다. 평면 안에서 평면의 확장을 보여주는데, 보편적으로 편안하다고 느끼는 것들을 중심으로 그려내려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실내 공간과 정물로 나아갔습니다."
숨 쉬듯이 해오던 그림을 통해 보는 사람이 공간 안에 쏙 빠져들게끔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전시장에서는 야경부터 정물, 최근작인 소파 시리즈까지 모두 감상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익숙한 시선을 벗고 스스로의 감각을 다시 일깨울 수 있도록 한다.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극사실주의와는 분명 다른 느낌이다. 꿈 속에서 본 듯 어딘가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존재한다.
"사실은 그림 속에 말이 안되는 부분들이 조금씩 들어가있어요. 바닥이 뒤틀려있거나, 일반 사람의 시점을 벗어나거나, 블라인드 방향이 반대로 돼있거나. 구조적으로 안 맞지만 정물이 앞에 있어서 잘 알아채지 못해요. 분명 현실과 다른데, 관람객들이 이질감 없게 느끼는 데서 매력을 느낍니다."
이질감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색이다. 검정색과 어두운 색은 다르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어둡다고 새까맣게 칠하면 앞으로 더 툭 튀어나와보인다"며 "공간, 그리고 수많은 색의 스펙트럼 안에서 느끼는 착각, 나 혼자만의 주관이지만 그 안에서 전달되는 객관. 이렇게 세 가지를 관람객들이 느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요소는 정해진 답이 없다. 각자의 주관이 펼쳐질 수 있도록 열어둔다. 소파가 등장하는 작품 역시 마찬가지다. 작가는 소파가 아니라 천을 그린 것이라고 얘기한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 발견한 캐시미어 목도리를 소파에 걸쳐놓고, 햇살이 들어오던 어느 날 그 풍경을 그림으로 그렸다. 목도리는 천으로 확장됐고, 그 천은 곧 작가에게 어머니를 상징하는 소재가 됐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경험이고, 소파라고 느낀다면 소파가 맞아요. 빛이 쏟아져들어오는 작품 속 시간적 배경 역시 새벽일 수도, 저녁일 수도 있어요. 누군가는 작품에 식물이 등장한다고 하지만, 저는 식물을 그린 적이 없어요.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다수의 주관이 모여 객관화되는 게 흥미로워요."
올 초 시작한 새로운 소파 연작은 대부분 판매가 됐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하지만 그가 갑자기 반짝 나타난 작가는 아니다. 미술교사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박차고 나와 전업작가로 살아온 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어린 시절부터 20년 넘게 그림을 배웠지만 첫 전시 이후 6~7년간의 슬럼프를 겪으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앞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지난한 나날 속에도 부지런히 내디딘 걸음 걸음은 지금의 그를 만든 탄탄한 바탕이 됐다.
그는 "앞으로 그릴 작품을 위해, 사진만 8천600장 찍어놨다"며 "그 중 몇 개만을 꺼내 선보이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흔들의자나 테이블 등이 등장할 수도 있고 작품의 확장성이 무한하기에, 앞으로 더 공부하며 성실한 태도로 작업에 임할 것"이라고 했다.
그의 작품은 갤러리모나(대구 중구 명덕로 35길 68)에서 오는 30일까지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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