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연재소설-춤추는 숲(79)

허록은 잠시 끊었던 말을 조금뒤 다시 이었다. 그의 여자 이야기란 자체부터동유의 귀를 번쩍 뜨이게 하였다.[나는 그제서야 그녀에게서 사랑이 아니라 개인적인 욕망을 읽을수가 있었다.그 즈음 내가 연주자 세계에서 매몰차게 배척당했던 몇가지 사건까지 포함하여, 비로소 나는 순수 음악예술에 대해서 본질적으로 의심하기 시작했다.이를테면 예술이 정신의 산물이라면 순수예술의 자폐성(자폐성)역시 개인을개인으로 차폐(차폐)하게끔 만들지 않는가라고. 그 같은 의심은 차차, 그러면열려있는 음악이란 어떤 것일까, 타인과 더불어 살아있는 음악이란 어떤 것일까 하는 쪽으로 더듬게 되었지. 물론 아주 단순화시킨 한 말에 불과해서 내음악론의 뿌리가 반드시 여기에 있다고 단정하는데는 무리가 많지만 말이다.하여튼 도식화(도식화)시키면 이렇게 되겠지. 그들을 용서하는 대신 그들의성격을 형성하는데 한몫을 했을 성싶은 그들의 음악을 공격하게 되었다고 할까]

헛침을 삼키고 허록은 몇마디를 덧붙였다.

[거대한 성좌를 이루고 있는 많은 위대한 예술가들이 여자의 기운을 빨아들여 예술작품을 토해낸 예는 무수히 많지. 노발리스, 피카소, 슈만.반면에 그러지 못할 때 패인지경에 이른 작가들도 많고. 여자란 동물이 무슨 효과좋은아편같은 역할을 했구나. 물론 생각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좋은 응수들이 준비될수 있겠지만 나는 한없이 비꼬고 싶다. 개인끼리 속삭거림은 자신들의 일기장갈피속이나 나중에 제 묘지 속으로나 기념으로 가지고 들어갈 일이지 왜그딴 걸 남에게 떠들고 야단이야...]

거기서 허록은 동유가 듣지 않고 잠을 잔다고 여겼을까, 아니면 스스로의 격한 감정탓일까. 찬찬히 끌어가려던 논조를 단숨에 엎어버리고 단죄를 해버리는게 아닌가. 지겨워서인지도 모른다. 전개의 과정보다 아주 뻔하고 단순한결론이 자리하고 있는 논리이므로.

동유는 자는척 여전히 숨소리를 고르게 하였다. 그 장황한 말들의 화살이 목표삼는 과녁은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동유는 한쪽 어깨를 세우며 가만히 돌아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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